HL1AZH의 교신일지 (1)

                             이은주 (HL1AZH  ejlee@plaza.snu.ac.kr)

 

 

 

 

 HL1AZH의 교신일지 1

        손바닥에서는 땀이 나고 엘렉 키를 잡은 손가락은 조금씩 떨리고 있었다. 조심스레 빈 주파수를 찾다가 조용해 보이는 21,045 kHz 에서 QRL?를 쳤다.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 다시 용기를 내어서 주춤주춤 CQ를 내었다. CQ CQ DE HL1AZH HL1AZH K  응답이 없었다. 다시 CQ를 내었더니 잡음을 뚫고 응답이 있었다. HL1AZH DE UA4PWD UA4PWD K  첫 전파는 광활한 시베리아와 유럽/아시아를 가로질러 있는 우랄산맥을 넘어서 러시아에 있는 카잔으로부터 응답이 날아왔다. 직선거리로는 약 5,700 km!

   R UA4PWD DE HL1AZH GM OM UR RST 559 HW? BK  

   R GA DR LEE UR RST 569 NAME VADIM ES QTH KAZAN HW?     BK

        십 여 년만에 재개국해서 첫 번 째로 이루어진 뜻깊은 첫 CW교신이었다. 지난 1984년 9월 개국해서 2년 정도 운용하다가 1986년부터 휴국하고 있다가 CW에 대한 애정과 관심으로 재개국을 한 것이었다. 1984년에 처음 개국해서 7/21 MHz에서 SSB로만 국내국들과 비교적 가까운 나라들을 대상으로 교신을 하였다. 그때만 해도 비수교 국가와의 교신을 묵인해 주었기 때문에 비교적 다양한 구 소련국들을 만날 수 있었다. 1985년에 들어서면서 묵인해 주던 관례를 벗어나 까다로운 조건을 달아서 비수교 국가와의 교신을 금지하였다. 그 후 교신 가능한 상대 국가 수가 줄어들었고 애타게 HL을 부르는 구 소련 및 동유럽국의 호출을 외면해야만 했다. 우호적인 관계가 되어야 할 아마추어 무선 세계에 보이지 않는 벽이 생긴 것이다. 갑자기 7/21 MHz에서 교신하는 것이 시들해지고 햄에 대한 관심도 점차 줄어들게 되었다. 그러다가 KARL지에 연재된 CW에 대한 기사들이 햄에 대한 나의 관심을 다시 북돋우어 주었다. 그 중에서도 HL1BM 김홍종OM의 '천상에서 들려오는 소리 CW와 함께 한 33년'이란 기사(KARL지 1995/11)는 과연 진정한 햄생활이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에 답을 주는 것 같았다. "그래 아마추어 무선에서 내가 얻고자 하던 것이 바로 이것이다"라는 생각이 들었고 아마추어 무선의 진정한 매력인 CW에 대한 나의 관심은 하루하루 깊어만 갔다. 그래서 몇 년간의 준비 과정을 거쳐서 마침내 첫 CW교신을 성공적으로 마친 것이다.

        기쁜 마음으로 지도책을 꺼내어서 방금 교신을 마친 카잔을 찾아보았다. 러시아연방 서부 타타르자치공화국의 수도인 카잔은 인구 110만의 도시로 볼가강과 카잔카강이 합류하는 지점에 위치하고 볼가강 중류지역의 경제·교통·문화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역사를 간략하게 살펴보니 13세기 후반 불가르족에 의해 카잔카강의 중류 유역에 건설되었고 1445년 도시가 재건되어 카잔한국의 수도가 되었으며 볼가강 중류지역의 중요한 도시가 되었다. 19세기 초 대학이 들어서고 중엽에는 비누, 피혁, 아마방적 등의 대기업이 자리잡았다. 이후 1920년 5월 타타르자치공화국의 수도가 되었고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서부로부터 공장들이 옮겨오면서 공업발전이 촉진되었다. 주된 산업은 기계·경공업·화학·식품·건설 등이다. 또한 타타르자치공화국 박물관·카말기념 타타르 드라마극장·오페라발레극장·서커스연기장 등의 문화시설이 모여 있고 주민은 주로 러시아인과 타타르인이라고 한다.

        무심코 넘어 갈 수 있는 러시아의 한 도시 카잔의 역사·산업·문화에 대한 지식이 한 번의 교신 이후 더욱 친근하게 가슴에 와 닿았다. 1980년 대 까지 미국과 더불어 세계를 양분해서 호령하던 대국 러시아연방, 요즘은 어려운 경제사정으로 그 위상에 손실을 입었으나 아직 그 군사력과 자연자원은 무시할 수가 없다. 러시아연방(구 소련)은 11개의 시간대를 가지고 있으며 국토의 동서 길이가 약 10,900 km나 되는 거대한 국가이다. 즉 동쪽의 베링해지역과 서쪽의 상트페테르부르크 사이에는 10시간의 시차가 있다. 과거에는 러시아(구 소련)으로부터 QSL카드를 받기가 쉽지 않았다. 나의 경우 지난 1998년 서울지부에 들렀다가 러시아로부터 도착한 한 장의 QSL카드를 받았다. 내용을 읽어보니 1984년 11월 24일 21 MHz에서 SSB로 카잔(나와 인연이 있는 모양이다 Hi Hi)에 사는 알보트와 교신한 것이었다. 교신한 지 14년만에 받은 카드, 가슴이 뭉클하였다. 요즘은 러시아와 교신한 QSL카드의 경우 보통 4개월에서 1년 정도면 도착하는 것 같다. 그리고 QSL 회수률도 다른 동유럽국에 비해 떨어지지 않으니 여러분들도 러시아국과 많은 교신을 하기 바랍니다.

        첫 교신을 무사히 마친 후 며칠 동안 식사시간을 줄여가며 CW교신에 매달렸다. 매력있는 CW교신이 잠시도 나를 리그에서 떠나지 못하게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1월 초순 어느날 저녁 3.5 MHz 밴드를 듣고 있다가 빈 주파수를 발견하고 CQ를 내었다. 21 이나 28 MHz에 비해 밴드 내 잡음이 항상 S미터 6-7 정도 뜨기 때문에 수신하기가 쉽지 않았다. 두 번째 CQ를 내고 수신해보니 HL1AZH DE UA0YM UA0YM K 하고 불러 왔다.

        그 동안 제대로 된 3.5 MHz 안테나가 없어서 교신다운 교신을 못 해 보았다. 처음 개국해서 몇 달 간 일본 D사의 7/21 MHz 겸용 단축 다이폴안테나를 사용하였으나 7 MHz에서 신호가 약하게 나가고 (S미터로 1-2 정도 낮은 수신 리포트 받음) 또한 그 동안 운용 해 보지 못한 3.5, 14, 28 MHz에 대한 기대감을 갖고 국내 B통신의 5밴드용 다이폴안테나를 설치하였다. 안테나선이 하나이기 때문에 설치가 간편하였고 조정도 용이하였다. 나의 경우 5밴드 공진점에서 모두 SWR 1.3이하 (대부분 1.2 이하)의 양호한 특성을 보였다. 2층 옥상에 약 6 미터 높이에 수평으로 설치하였는데 지형적으로 북서쪽(관악산에서 볼 때 여의도쪽)은 비교적 트여 있으나 남동쪽으로는 관악산이 가로막고 있었어 유럽쪽은 신호가 잘 들어 왔으나 오세아니아 쪽은 비교적 약하게 입감되었다. 지난 1월 한 달간 5밴드용 다이폴안테나와 80-100와트 출력(TS-680S)으로 약 60 Entities (컨트리)를 교신할 수 있었다. 제대로 된 다이폴안테나와 CW가 만났을 때 DX교신에 위력을 발휘한다는 것을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UA0YM DE HL1AZH GE OM UR RST 559 ES NAME LEE HW?  BK  

   DR LEE UR ALSO 559 QTH TUVA KYZYL ES NAME  VICTOR HW? BK

        투바공화국 키질에 사는 빅톨과의 교신은 짥게 신호 리포트, 이름, 주소 교환으로 끝났다. 다시 한 번 동네 헌책방에서 몇 천 원 주고 산 지리부도를 살펴보았다. 어디에 투바공화국 키질이 위치하고 있나? 러시아연방에서 보면 아주 작은 투바공화국은 몽고 북서쪽 국경과 접하고 있다. 서울에서 투바공화국 수도 키질까지의 직선거리는 약 2,800 km. 하지만 교통이 불편한 외진 곳에 위치하기 때문에 만약 기차로 간다면 3-4일은 족히 걸릴 것 같다. 신비한 전파의 세계! 키질에 사는 빅톨과 나는 불과 몇 분도 안 걸린 교신으로 서로 친구가 된 것이다. UA0YM 빅톨은 투바공화국에서 가장 좋은 장비를 가지고 있는 친구이다. 요즘도 자주 14 MHz에서 만나 인사를 나누고 있는데 그의 신호는 항상 599이다.

   UA0Y-로 시작하는 무선국은 투바공화국에 속하며 수도는 키질이다. 아시아 대륙의 한가운데 위치한 투바공화국은 면적이 스위스 정도이며 인구는 31만 명 정도이다. 역사적으로 터키, 몽고, 중국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여러 세기 동안 중국의 우리앙가이지역으로 알려진 이 지역은 청나라 멸망 후 한 동안 혼란하다가 1921년 독립을 선언했으나 1944년 구 소련에 병합되었다. 1961년에는 자치공화국으로, 1992년에는 러시아연방 내 투바공화국이 되었다. 재미있는 사실은 위에서 말한 역사적 배경으로 투바공화국이 몽고, 중국 서부지역과 더불어 CQ ZONE 23에 속해 있다는 점이다. 몽고에서의 햄활동이 활발해지기 전까지는 WAZ (Worked All Zones)을 노리던 많은 국들에게 인기가 있던 곳이었다.

   매력적인 CW교신에 관심이 있는 분들에게 좋은 홈페이지를 하나 소개할까한다. DS3CCQ 이민철OM에 의해 운용되는 CW 전문 홈페이지이다. 주소는 http://ds3ccq.qsl.co.kr/ (새 주소: www.koreacwclub.org)이다. 홈페이지에 가면 CW에 관심이 있는 동호인들이 준비하고 있는 Korea Keymen's Club에 대한 소식도 볼 수 있고 국내 CW 관련 사이트도 링크되어 있다.

   오늘도 밴드의 아래쪽에서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헤드폰을 쓰고 다이얼을 21,000 kHz에서부터 조심스레 돌리고 있다. 갑자기 21,004 kHz 부근에서 큰 파일업이 일어났다. 마치 동물원에 들어온 것 같았다. 몇 분 정도 들어보니 노르웨이 북쪽 북극해 상에 있는 스발바드섬에서 운용 중인 JW5UF가 나왔다. 신호는 589. 먼 곳 치고는 신호가 아주 강한 편이었다. 만약 교신에 성공한다면 나에게는 새로운 컨트리가 된다. 하지만 오늘 저녁은 이웃나라의 빔안테나와 KW로 중무장한 수 십 국을 상대로 해야하기 때문에 시간이 좀 걸릴 것 같다. 엘렉 키에 전원을 넣고 바로 호출부호를 보냈다.

다이폴안테나, 너만 믿는다.

  "DE HL1AZH K"

(KARL지 2000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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