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L1AZH의 교신일지 (12)

                             이은주 (HL1AZH  ejlee@plaza.snu.ac.kr)

 

 

 

 

 

        1980년 몇 월 호인가 KARL지 실린 내용이 생각난다. 그 해는 태양흑점수가 정점에 달한 시기이라 DX 교신이 잘 이루어진다면서 그 예로 국내 어느 아마추어 무선사가 10와트 무전기(아마 Hentron 무전기 같았음)로 7 MHz에서 아르헨티나 코르도바에 사는 햄과 교신을 했다는 내용이 실려 있었다. 꿈 같은 이야기였다. 출력 10와트 무전기에 나즈막하게 친 다이폴 안테나로 지구 반대편에 사는 햄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니….  

그때 나는 연맹의 준회원으로서 KARL를 받아 읽어보는 것이 햄에 대한 아쉬움을 달랠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 햄 자격증을 취득하지 못했고 공부하는 학생 신분이라 감히 부모님께 무전기를 사달라고 할 수도 없는 처지였다. 하기야 그때만 해도 동네 근처에 햄을 하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 서울에 사는 다른 준회원에게 부탁해서 교신을 녹음한 테입을 반복해서 듣는 것이 낙이었다. 7 MHz에서 국내국 끼리 교신하는 내용이었는데 무척 신기하게 느꼈다. 그때 그 친구는 무전기를 마련해서 개국을 준비하고 있었다.  

 

        입동이 지난 11월 중순, 밖에는 은행나무가 노란 잎을 하나 둘 잃어가고 있다. 입시 추위가 조금씩 물러가고 따스한 주말 오후, 무전기 앞에 앉아 28 MHz부터 천천히 살펴보았다. 어디 보자, 28 MHz가 다른 때보다 북적북적 하는 것이 아닌가! 특히 극동 러시아쪽 무선국들이 59이상의 신호로 들어오고 있었다. "CQ TEST CQ TEST THIS IS UA9MA UA9MA CQ TEST" "아하 오늘이 JIDX (59 잡지사 주최 Japan Internation DX contest) 컨테스트가 열리는 날이구나!" 하지만 컨테스트는 일본하고만 교신을 해야하는 것이라 별로 매력이 없었다.

어디로 갈까? 생각하다가 컨테스트 때 사용하지 않는 WARC 밴드(10, 18, 24 MHz)로 옮겨 보기로 했다. "흠, 현재 상태가 좋으니 24 MHz에서 뭘 좀 건질 수 있을 것 같은데...." 일단 안테나 튜너를 이용해서 24,900 kHz에 튜닝을 해놓았다. 24,890 kHz에서부터 찬찬히 스캔해 가면서 한 국 한 국 확인해 보았다. 역시 유럽국들과 러시아 국들이 여럿 포진해 있었다. "기다렸다가 불러볼까? 아니면 빈 주파수에서 CQ를 내어 볼까?" 고민하다가 일단은 신호가 좋은 핀랜드 OH9RJ의 CQ에 응답했다. 주파수는 24,907kHz, 신호는 강력한 RST 599. "OH9RJ DE HL1AZH HL1AZH K" "R GM OM TNX FER UR CALL UR RST 579 579 NAME IS TARO …" 기분 좋게 한 국을 건지고 나니 룩셈부르크 LX1MU가 나를 부르는 것이 아닌가!

"PSE 2 DOWN" 하고 친 후 2 kHz 내려가서 주파수를 열어보니 반갑게 LX1MU가 따라 온 것이 아닌가! "TU LX1MU DE HL1AZH GM UR RST 569 569 …" 교신을 끝내기 무섭게 또 한 국이 불러온다. 이번엔 다시 핀랜드 OH5MW이다. OH5MW의 닐스는 핀랜드 라피에 살며 출력 100와트 무전기와 다이폴 안테나를 사용하고 현재 기온이 0도 정도로 춥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약 30분 동안 작은 파일업을 받으며 독일의 DL1AAU, 영국의 G3MBN, 러시아의 RN3AN, 스위스의 HB9AGH, 오스트리아의 OE8DM, 스웨덴의 SM0IBN까지 모두 9개 무선국, 8개 컨트리와의 교신을 마치고 따뜻한 차 한 잔을 마시기 위해 무전기 스위치를 내렸다. 아마 또 다른 국들이 계속해서 불렀다면 무전기 앞을 떠날 수 없을 뻔했다. Hi Hi.

 

        1980년에 마술로만 생각했던 DX 교신을 나는 요즘 매주 즐기고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전파가 내 손끝과 목소리를 통해 무전기와 5미터 높이의 나즈막한  다이폴 안테나를 타고 세계 곳곳에 도달한다는 것은 나에게는 아직 마술이다. 이런 신비한 마술을 질릴 때까지 즐기고 싶다.

 

        11월 초순에는 T2T라는 호출부호를 가진 무선국이 21,020 kHz에 나와서 여러 햄들을 즐겁게 해주었다. 무슨 휴대폰 문자메세지 같은 호출부호는 투발루(Tuvalu)에서 나오는 무선국의 콜싸인인데 처음에는 나와서 많은 파일업을 받다가 내가 교신할 쯤에는 파일업이 약해져서 무사히 교신에 성공할 수 있었다. 딱 두 번 불렀는데 두 번째에 성공했다. T2T와 교신하기 이틀 전에는 남태평양의 Austral 섬의 FO/HG9B가 나와서 한동안 큰 파일업을 일으켰는데 운용 마지막 날이라 여유 있게 교신을 했고 내가 교신한 후에도 별로 부르는 국이 없어서 CQ를 계속 부르고 있었다. Hi Hi.

 

        투발루(Tuvalu). 남태평양 중부 폴리네시아 서쪽에 있는 섬나라. 면적은 25.9 km2에 인구는 1만 명 정도. 역사적으로 1978년 10월 옛 영국령에 속했던 길버트/엘리스 제도 가운데 엘리스 제도 9개 섬이 독립해서 형성되었다. 나라 이름은 '8개 섬의 결합'이란 뜻이라고 한다. 수도는 푸나푸티. 재미있는 것은 9개 섬 중에 가장 큰 섬이 바이투푸섬인데 면적이 5.6 km2에 해발고도는 불과 5 m 정도이며, 가장 작은 섬은 면적이 0.5 km2이라고 한다. 가장 큰 섬의 면적이 여의도 면적의 2/3 정도 밖에 되지 않는 나라이다. 섬 전체가 산호초로 이루어져 있으며 평균 해발고도가 3 m인데 앞으로 예상되는 지구온난화에 따른 해수면 상승으로 큰 피해를 볼 수 있는 국가 중에 하나로 주목을 받고 있다.

 

        지난 달 KARL지에 중국의 아마추어 무선 현황에 대하여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이번 여름에 몇 가지 중국 아마추어 무선 규정에 변화가 생겼다. 첫 번째는 중국을 방문하는 외국 햄들도 중국 호출부호를 받을 수 있으며, 두 번째 제3급 개인 무선국이 이용할 수 있는 주파수대를 대폭 확대했으며, 세 번째 500와트로 제한된 상한 출력이 1000와트로 확대되었다고 한다. 아직 우리 나라 햄들도 중국을 방문해서 개인 호출부호를 받을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다른 외국인의 경우 자격증 사본, 여권 사본, 무선국 운용 신청서와 5달러를 베이징에 있는 Chinese Radio Sports Association에 신청해서 3주 만에 받았다고 한다.

 

        그럼 중국 아마추어 무선사들이 자주 이용하는 주파수는 어디일까? 중국 햄들의 신호를 자주 들을 수 있는 주파수는 21,400 kHz이다. 어떻게 보면 중국 햄들 사이의 21 MHz호출주파수에 해당한다. 왜냐하면 많은 중국 햄들이 가지고 있는 제3급 자격증으로 SSB를 운용할 수 있는 주파수가 21,400-21,450 kHz이기 때문이다. 주로 5 kHz 간격으로 주파수를 사용하는데 21,405, 21,410, 21,415 kHz를 수신해 보면 자주 중국말로 교신하는 것을 들을 수 있다. 또 다른 주파수는 29,600 kHz에서의 FM이다.

우리 나라에서 보면 중국이 비교적 가깝기 때문에 29 MHz 신호가 좋을 때 들어보면 반드시 중국 신호가 들어올 것이다. 그리고 7 MHz에서는 7,050-7,070 kHz에서의 CW와 SSB이다. 나의 경우 어느 날 저녁 7 MHz를 듣다가 아주 강한 CW 신호를 7,060 kHz 근처에서 듣고 어떤 국일까 궁금하게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중국의 제3급 개인 무선국이 CQ를 내고 있었다. 송신 속도가 비교적 느렸기 때문에 100% 수신이 가능했고 친절하게 이름, 주소, 기타 정보를 교환하고 나서 재미있는 교신을 마친 적이 있다.

14 MHz에서는 14,025-14,050 kHz, 21 MHz에서는 21,025-21,050과 21,100-21,150 kHz를 잘 들어보기 바란다. 종종 일본쪽 전신 초보자들도 21,100-21,150 kHz에서 교신을 많이 하기 때문에 초보자들도 마음 편하게 CW 교신을 즐길 수 있는 주파수이기도 하다.

 

        중국과 교신을 즐기다가 보면 낭낭한 목소리의 학생들과 자주 교신을 하게 되는데 그들 대부분은 지역이나 학교 클럽 무선국들을 이용해서 외국어를 배우려고 하는 경우가 많다. 이들은 간단한 시험을 보고 클럽국에서만 운용할 수 있는 자격을 주는데 현재 중국에는 11,000명의 자격자 중에 6,000명이 이러한 클럽국운용 자격증을 가지고 있다. 이들에게는 개인 호출부호는 따로 발행되지 않는다. 이들 학생들의 외국어 실력은 상당한데 우리 나라 학생들도 아마추어 무선을 외국어를 숙달시키는 방법으로 많이 이용했으면 한다.

 

        이제 21세기의 첫 해인 2001년도 한 달이 남았다. 얼마 후면 눈이 내리고 크리스마스도 다가올 것이다. 한 해를 조용히 되돌아보며 다가오는 새해 2002년의 계획을 세워야 할 시간이다. 12월에 되면 아이들이 꼭 만나고 싶어하는 분이 있다. 바로 산타클로스이다. 만약 산타클로스와 교신했다면 믿겠는가? 아마 믿지 않을 사람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아마추어 무선의 마술에는 한계가 없어 보인다. 2000년 12월 27일 오후 5시 51분 28,012 kHz에서 CQ를 내는 산타클로스의 신호를 들었다. 호출부호는 OH9SCL. Santa Claus Land로부터 신호! 무조건 불렀다

"OH9SCL DE HL1AZH HL1AZH …" 교신 때는 잘 몰랐는데 올 해 10월 달에 도착한 교신카드를 받아보니 산타클로스와 그를 도와주는 헬퍼들의 사진이 들어 있었다. 카드 앞면에는 <Greetings from the Arctic circle>, 뒷면에는 OH9SCL이 핀랜드 북극권내 랩랜드에 있는 산타클로스 무선국의 호출부호라고 되어 있다. 또한 OH9, OF9, OG9, OI9 무선국과 교신하면 1점을, 12월 달에 교신하면 3점을, SCL호출부호가 들어 있으면 5점을, 12월달에 만나면 10점을 주는데 우리 나라에서는 10점이면 산타클로스 어워드를 신청할 수 있다고 한다.

딱 한 장의 교신카드로 어워드를 신청할 수 있는 자격을 얻은 셈이다. Hi Hi. 우리 나라가 겨울로 접어드는 12월, 남반구는 여름을 즐기는 계절이 된다. 특히 남극은 가장 따뜻한 시기인데 일본 남극 쇼와기지의 무선국 8J1RL 교신카드에 있는 귀여운 아델리펭귄이 여러분께 인사를 드립니다. "MERRY XMAS ES HAPPY NEW YEAR 2002!"

 

(KARK지 2001년 12월호)

 

 

Copyright ⓒ2001- 2015   Korea DX Club.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