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L1AZH의 교신일지 (17)

                             이은주 (HL1AZH  ejlee@plaza.snu.ac.kr)

 

 

 

 

 

        1월 초순. 며칠 간 추운 날씨로 인해 실내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졌다. 지난 몇 년 동안 높은 수치를 보였던 태양흑점계수가 지난해부터 하향 국면으로 조금씩 떨어지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잘 들리던 DX 신호도 조금씩 약하게 들어온다. 따뜻한 된장찌개로 저녁을 맛있게 먹고 무전기 앞에 앉았다. 밖을 내다보니 벌써 어둠이 깔리고 집집마다 불이 들어와 있다. 아침에 읽다가 둔 신문을 잠시 보다 무전기의 전원 스위치를 올리고 헤드폰을 귀에 맞게 조절했다. 여름에는 귀에 땀이 날 정도로 거북한 헤드폰이지만 추운 겨울에는 마치 털로 만든 귀마개처럼 따뜻하다. 철꺽-. 무전기 앞 주파수 패널의 오렌지 불빛과 함께 헤드폰을 씌고 전파를 따라 미지의 세계로 여행을 시작하는 시간. 오늘은 어느 나라, 어떤 사람들을 만나게 될지 가슴 설레인다.

 

        먼저 1.8MHz부터 들어보았다. 우리나라에서는 1,800-1,825kHz까지 25kHz를 운용할 수 있지만 대부분 1,820-1,825kHz 사이에서 교신이 이루어진다. 이 밴드는 CW 모드만 가능하다. 몇 년 전부터 일본도 1,810-1,825kHz를 운용할 수 있게 되면서부터 교신 상대는 늘어났지만 DX교신을 하기 위해선 또 다시 일본의 벽을 넘어야하는 점도 생겼다. 대개의 경우 3.5MHz 안테나로 수신할 수 있는 1.8 MHz 신호는 우리나라와 일본 정도지만 그래도 밤이 긴 겨울밤에 1.8MHz를 들어보는 재미는 각별하다.

여름에는 심한 전기적인 잡음으로 교신이 불가능하다. 안테나 설치의 어려움으로 1.8MHz에 나오는 국내 무선국은 열 손가락 이내. 그나마 좋은 위치, 제대로 된 안테나, 여유있는 출력을 모두 갖추고 DX교신에 전념하는 국은 거의 없다시피 하다. 국내 햄 중에서 1.8MHz에서 DXCC를 받은 햄은 아직 없다. 나중에 여유가 있으면 한적한 곳에 가서 멋지게 1.8MHz 안테나를 쳐놓고 밤이 늦도록 CQ를 불러보고 싶다. Hi Hi.

 

        습관적으로 1.8MHz의 상태를 둘러보고 3.5MHz로 주파수를 옮겼다. 3,530kHz 근처에서 국내 햄들 간에 정감이 오가는 교신이 진행 중. 7MHz에 비해 나오는 햄들이 많지 않아 더 가족적인 분위기로 운용이 이루어지는 것 같다. 잠시 듣다가 일본의 JJ ENG/  타쿠와 599 신호리포트를 교환하고 10MHz로 옮겼다. 낮 동안에는 10,120-10,135kHz에 일본국이 많이 나오지만 늦은 오후부터 10,100-10,115kHz에 DX 신호가 많이 나온다. 10,100kHz부터 주파수를 살펴보다가 10,108kHz에서 CQ내는 신호가 들렸다. SS로 끝나는 국인데 호출부호를 다 확인하지 못했다.

한번 만 더 …. 잡음을 뚫고 다시 CQ내는 신호가 들렸다. CQ CQ CQ DE VK4SS VK4SS VK4SS AR K. 오 예스! 신호는 549에서 559정도 그런대로 깨끗하게 수신되었다. 오스트렐리아! 10MHz에서 처음 들어본 컨트리! 손이 떨렸다. 벌써 재개국 한 지 4년이 다 되어 가지만 진국만 나오면 손이 떨리고 손바닥엔 땀이 난다. HL1AZH DE VK4SS TNX FER CALL …. 교신은 4분간 이루어졌다. 오스트렐리아 퀸즐랜드 브리즈번에 사는 알랜. 추운 우리나라 반대쪽 브리즈번은 한창 해수욕을 즐길 한여름. 알랜은 에어컨을 시원하게 틀어놓고 교신하는 지도 모르겠다. 밴드 뉴원!

 

        기분 좋게 14MHz로 이동. 다시 내가 좋아하는 14,025kHz부터 탐색 시작. 14,033kHz에 이르자 조금 삐삑거리며 CQ내는 신호가 들렸다. 귀 기울여 들어보니 R9UM. 전에도 한번 교신해 본 적이 있는 시베리아 노보쿠즈네츠크에 사는 닉. 14MHz에 자주 나오는 단골 무선국이다. 신호는 569. 다이폴 안테나와 출력 100와트의 내 신호는 중부시베리아에 579으로 입감이 된다고 한다. 이 친구와 교신하고 아직 QSL카드를 못 받았는데 이번엔 꼭 카드를 보내달라고 해야지.

QSL카드 한쪽에 DEAR NICK, MANY THANKS FOR FB QSO. WISH TO HAVE UR QSL CARD. HAPPY NEW YEAR 2003! LEE. 카드를 정리해 놓고 다시 21MHz로 올라갔다. 시간이 늦어져서 그런지 신호가 그리 많지는 않았다. 그래도 21,022kHz에서 569정도로 가장 양호하게 들리는 신호가 있어 수신해 보니 DF1UQ. 비교적 늦은 시간에도 불구하고 독일 노이스타트에 사는 클라우스 신호는 수신하기 편한 569, 내 신호는 독일에 539으로 입감된다고 한다. 밖이 추운 날씨라 이곳이 춥다고 하니 클라우스도 HR WX ALSO COLD COLD ES TEMP 12 C MINUS … 이라고 타전해 왔다. 이번 주에는 유럽도 춥기는 추운 모양이다. 신문에서는 몇 년만의 한파로 유럽이 고생하고 있다고 했다.

 

        이렇게 재미있는 4국과의 교신을 마치고 일어선 시간은 오후 7시 25분. 저녁을 먹고 무전기 스위치를 넣은 시간이 6시 50분이니 약 35분 간  교신한 셈이다. 떠나기 싫은 무전기의 스위치를 내리니 무전기 패널의 오렌지 불빛이 조용히 사라졌다. 날라 다니는 마법의 양탄자가 사라진 것이다. 헤드폰을 내려놓고 미지로 떠난 여행을 마치고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여행에 걸린 시간은 약 35분, 이웃나라 일본, 한여름의 뜨거운 오스트렐리아, 얼음과 눈의 땅 시베리아와 서유럽 독일까지 거쳐서 돌아왔다. 무전기 앞에서 조금 더 미지의 여행을 즐기고 싶지만 오늘은 4국으로 만족스러운 여행. 조금 아쉬울 때 일어서야 하는 법. 내일 또 다른 여행이 나를 기다리고 있으니 이제는 다른 일을 해야 할 때. 스위치를 내리고 조용히 일어서 방을 나섰다.

 

        2003년 새해에 해보고 싶은 것. 다른 많은 것이 있겠지만 햄 생활에 대해서만 말하면. 첫째, 균형있게 운용하자. 이것은 햄 생활이 취미생활이라는 것에 바탕을 두고 너무 깊이 빠지지 말자는 것이다. 다른 사회적 의무, 가족의 책임, 공부 및 건강 유지 등과 균형을 맞추자는 것이다. 취미생활은 재미있어야 하고 최소한 즐기는 취미생활에서 생활의 활기를 찾고 보람이 있어야 한다. 만약 현재 취미생활이 재미없거나 보람이 없다면 왜 그런가 원인을 찾아보고 재미있는 취미가 되게 만들어야 한다. 지나친 햄 운용은 건강을 해칠 수도 있고 꼭 해야할 다른 의무를 등한시 할 수도 있다.

그래서 특별한 일이 없으면 하루에 한, 두 시간 이상 운용은 자제하려고 한다. 물론 컨테스트와 특별한 경우에는 예외로 한다. 그러나 적어도 한 주에 한 번은 무전기에 스위치를 넣는다. 교신은 하지 않더라도 무전기와 안테나가 잘 작동하는지 전파상태는 어떤지 확인해 보려고 한다. 그리고 KARL지 받은 날은 꼭 교신한다. Hi Hi.

 

        둘째,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노력해서 이루어본다. 값 비싼 고급 무전기, 하늘 높이 서 있는 빔안테나와 타워 설치 같은 꿈은 잠시 잊는다. 지금 큰돈들이지 않고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몇 년째 3급 전화급이면 전신급에 도전해 보라. 전신급이라면 올해 꼭 2급에 도전해 보라. 책값만 있으면 독학도 가능하고 자료는 인터넷 바다에 많다. 나도 3급 전화급 취득 후 10여년 만에 2급을 취득했는데 너무 뿌듯하다.

아파트에 산다면 베란다 공간을 이용해서 간단한 21MHz 다이폴 안테나 또는 2미터 안테나 제작은 어떨까? RTTY는? 아님 현재 운용하고 있지 않은 밴드를 운용해 보자. 간단하다. 현재 7MHz만 운용 중이라면 안테나만 설치하고 허가만 내면 3.5, 21, 24, 28MHz 운용이 가능하다 (현재 3급 전화급으로). 29MHz FM운용은? 요즘 나온 무전기들은 대부분 29MHz FM운용이 가능하다. 아님 단파방송을 청취해 보면 어떨까? 현재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대부분의 무전기는 General Coverage 기능이 있다. 외국에서 방송하는 이국적인 단파방송을 하루종일 들을 수 있다. 자세한 주파수 및 시간표는 홈페이지 http://cafe.daum.net/danpa 에 가면 볼 수 있고 우리나라 말로 방송하는 외국 방송국의 정보도 얻을 수 있다. 일본, 중국, 타이완, 러시아 및 미국에서 방송하는 우리말 단파방송 듣는 재미는 HF장비와 안테나만 있으면 공짜!

 

        셋째, 재미를 더하기 위해 공부하자. 책은 가지고 있는 KARL지도 좋다. 혹시 지금까지 읽지 않은 부분이 있으면 다시 읽어보자. 혹시 DK컬럼은 읽어보았나요? 몇 달 전에 100회가 넘어선 DK컬럼을 다시 읽어보자. 조동현의 햄산책은 흥미로운 골동품 무선장비의 세계의 뒷 이야기를, HL2AVS의 기고문, DX Hunting과 Contest란은 보물창고이다. 내가 좋아하는 KARL 반세기 기사. 한 달에 한번 기사로 성이 차지 않는다면 HL2ASH가 정성스럽게 만든 http://www.hitop.net 으로가서 햄관련종합사이트 클릭하고 60, 70년대 KARL지 자료보기로 가자. 너무 재미있다고 밤세우지 말자. 아쉽게도 70년대 중,후반 및 80년대, 90년대 KARL지 자료가 없다. 혹시 자료있는 분이 스캔해서 올려주신다면 정말 고마움을 표하고 싶다.

 

(KARL지 2003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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