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L1AZH의 교신일지 (19)

                             이은주 (HL1AZH  ejlee@plaza.snu.ac.kr)

 

 

 

 

 

11월 중순. 며칠 간 때늦은 가을비에 그나마 남아있던 노오란 은행나뭇잎이 비바람에 떨어져 검은 아스팔트 위에 굴러다니고 있다. 이제 나무들은 추운 겨울을 날 준비를 마친 셈이다. 며칠 전 추워지기 전에 사용하던 멀티밴드 다이폴 안테나를 손보았다. 전 밴드 조정 작업을 마친 것이다. 나도 이제 안테나 겨울나기를 마친 셈이다.

 

낮 길이도 많이 짧아졌다. 탁상시계를 보니 오후 5시 30분. 컴퓨터를 켜고 연맹 홈페이지(www.karl.or.kr) 정보마당에서 DX정보를 치니 DX 클러스터가 떴다. 어디 보자 어떤 국들이 21MHz에 나왔는지…. 21,012kHz 흔치 않은 중앙아시아 타지키스탄 EY1HQ가 교신 중에 있다. 신호는 569 정도. 흔하지 않은 국이 출현해서 이웃나라 국들은 바쁘게 교신중이다. 한번 불러 볼까 하다가 일단 주파수 전체를 먼저 확인해 보기로 했다.

21,023kHz에는 베트남 3W9HRN이 CQ를 내고 있었다. 신호가 얼마나 강하게 들어오나 들어보니 559. 지난해에 비해서 전파상태가 조금 떨어졌다. 지난해 같으면 579 정도로 들어왔을 터인데…. 잠시 주파수 다이얼을 아래로 맞추어 보니 혼신 속에서 CQ를 내는 소리가 들린다. V…LW? 어느 나라일까? 수신하기 쉽지 않은 호출부호였다. 아무도 응답하는 국이 없었다. 다시 CQ를 내는 소리. 아하! 확인한 호출부호는 4Z5LW! 성스러운 땅 이스라엘에서 나오는 신호였다. 하지만 전파상태가 좋으니 다른 주파수로 고!

 

근래 들어 모처럼 늦은 오후 시간대에 신호가 괜찮았다. 이럴 때는 적극적으로 CQ를 내고 응답을 기다려 보는 것도 짜릿하다. 빈 주파수를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며 쭉 살펴보았다. 여기에도 약한 신호가 있고 저기에도 교신 중이고…, 그러나 21,031kHz에 가니 조용하다. 일단 QRL?하고 주파수가 비어 있는지 확인해 보았다. 아무런 응답도 없어 천천히 CQ를 타전했다. "CQ CQ CQ DE HL1AZH HL1AZH HL1AZH K" 응답이 없어 다시 한번 CQ를 내니 강한 신호로 나를 불러오는 국이 있다.

"HL1AZH DE RV9JE RV9JE K" 감미로운 소리! 응답은 멀리 시베리아 대륙 끝에 있는 러시아 튜멘에 사는 앤디가 불러왔다. 그의 신호는 589. 내 신호는 시베리아 서쪽 끝인 튜멘에 599으로 강하게 입감. 신호 리포트, 위치, 이름을 교환하고 날씨 정보를 교환했다. "HR WX CLOUDY ES TEMP 10C HW ANDY BK" "WX HR COLD ES TEMP 17C MINUS HW? BK" "UR WX VY COLD ES KEEP U WARM BK" "NOW OK WINTER WX HR 40C MINUS HI HI …" 시베리아 튜멘에는 겨울이 일찍 오나보다. 벌써 영하 17 로 추우며 겨울엔 영하 40 까지 내려간다고 한다.

하긴 그렇게 겨울이 길고 추운 곳에서는 따뜻한 실내에서 외부 세계와 대화 나눌 수 있는 아마추어무선이 가장 좋은 취미생활이 될 것 같다. 이른 아침 일어나 추운 실내에서 따끈한 차 한잔을 마시며 담요를 어깨에 걸치고 교신을 하고 있을 시베리아에 사는 앤디 모습이 떠오른다. 멀리 유라시아 끝 해뜨는 동쪽 나라 코리아와의 멋진 교신으로 조금이나마 몸과 마음이 따뜻해졌으면 좋겠다.

 

RV9JE와의 5분간의 교신을 마치고 나니 나를 불러오는 신호가 있었다. "HL1AZH DE LY3BW LY3BW K" 유럽 발트해 연안 리투아니아에 사는 리마스가 불러왔다. 신호는 559. 강하지는 않지만 수신할 만 했다. 신호가 북극 상공을 지나와서 그런지 약간의 페이딩 현상을 동반해서 교신이 이루어졌다. 이런 현상을 플러터(flutter)라고 하는데 춥고 어두운 북극 상공을 통과하면서 신호가 불규칙하게 떨리는 현상이다. 대개 이런 신호는 북유럽이나 북부 러시아에 위치하는 무선국들과 교신할 때 많이 나타난다. 하지만 약한 떨리는 신호를 귀 기우려 수신해 보는 맛도 색다르다.

 

유럽의 북쪽에는 발트해(Baltic Sea)라는 바다가 있고 에스토니아(ES), 라트비아(YL), 리투아니아(LY)는 모두 이 발트해를 접하고 있기 때문에 발트3국이라고 부른다. 한 때는 구소련의 영토 일부로서 자치권을 잃었지만 최근 들어 모두 독립해서 다시 주권을 찾은 나라들이다. 근래 들어 활발하게 신호가 나오고 있으며 특히 컨테스트 때는 막강한 신호의 무선국들이 나오고 있다.

리투아니아 면적은 6만 5301㎢으로 남한 면적의 2/3정도이며, 인구는 347만 명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제2차 세계대전 중인 1940년에는 소련, 1941년부터는 독일의 지배를 받다가 1944년 다시 소련군에 점령되면서 소련을 구성하는 공화국이 되었다가, 1991년 소련에서 독립하였다. 리투아니아는 발트3국 중 가장 낙후했으나 농업의 비중이 크다. 공업은 식품과 경공업이, 농업은 낙농과 양돈이 전문화되었으며, 근년에 기계·화학공업이 발달하고 있다. 수도는 빌뉴스이나 수상운송의 중심은 네무나스강 중류의 카우나스이다. 리마스는 카우나스에 살고 있다.

 

숨 돌릴 틈도 없이 또 다른 국이 불러온다. 이번엔 신호가 더 약하다. 신호는 잘 해야 449 정도. 모처럼 서부 유럽이다. 독일에 사는 DL4MO 로탈. 로탈도 내 신호가 449로 독일에 입감이 된다고 한다. 신호가 약하게 수신되기 때문에 짧게 신호 리포트와 이름만 교환하고 전파상태가 좋을 때 다시 만나기로 얘기하고 73를 타전했다. 일단 한숨을 돌리고 나니 또 다른 신호가 들어온다.

"QRZ?" "HL1AZH DE OH7HXH OH7HXH K" 아하 핀란드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 오케이 "GM DR OM TNX FER UR CALL UR RST 569 569 ES NAME LEE LEE HW? KN" 상대는 스칸디나비아 반도 동쪽에 붙은 핀란드 리에크사에 사는 카리. 카리는 내 신호가 핀란드에 559으로 수신된다고 한다. "R FB DR OM LEE HR MY RIG IS 100W ES ANT IS 2 EL QUAD BT UR 100W ES DP ANT VY FB …" 이렇게 대화를 나누며 7분의 교신 후 서로 교신카드를 교환하기로 하고 헤어졌다. 약 20분간에 걸친 4개 무선국과의 교신. 모처럼 기분이 좋다. 멀리 하얀 눈 내린 시베리아 튜멘, 발트해 연안의 목축 국가 리투아니아, 서부 유럽 독일, 최근 치아 건강을 지켜주는 껌으로 유명한 핀란드와의 교신.

 

아마추어무선을 알게 된 학생 때 생각이 문뜩 난다. 1976년에 학생들이 애독하는 과학잡지에서 아마추어무선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그때까지 외국과의 교신은 꿈만 같은 이야기였고 전파는 나에게 다른 나라로 인도해 주는 마법의 양탄자와 같았다. 안테나를 설치하고 작은 무선기를 가지면 바다 저 멀리 한번도 가보지 못한 외국과 교신할 수 있다니 …. 작은 나의 가슴은 신비한 전율로 떨렸다. 잡지에 그려진 그림을 보니 자작한 송수신기로 현해탄 건너 이웃나라와 교신하는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하지만 한번도 아마추어무선 교신을 실제 들어본 적이 없는 나에게는 그냥 상상의 나래만 달아주었다. 그 당시 자작 기사에는 0-V-1이니 0-V-2 하는 진공관 수신기 제작 기사가 상세히 설명되었고, 이러한 자작수신기에 롱와이어 안테나를 연결해 주면 우리 나라와 이웃 일본, 또 전파상태가 좋으면 저 멀리 필리핀과 하와이 신호까지 들린다고 하였다. 우리 나라와 일본까지는 어떻게 이해가 가는데 태평양 저 건너있는 필리핀과 하와이 신호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집에 가지고 있는 가정용 AM라디오로 늦은 가을밤에 우리 나라 각지의 AM방송과 이웃 일본의 AM방송을 들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내 책상 위에는 여러 가지 버튼이 달린 최신식 트랜시버가 앉아있고 옆에는 언제든지 진국이 나오면 알려주는 인터넷이 연결된 펜티엄 컴퓨터가 있다. 비록 안테나는 주위 여건으로 지향성 안테나를 설치하지는 못했지만 개국해서부터 만족하게 사용하고 있는 나즈막한 다이폴 안테나가 비바람에도 잘 견디고 있다. 다이폴 안테나! 학생시절 때 늘 만들어 보고 싶어했고 안테나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다이폴 안테나. 오늘도 전파를 타고 세계 두루 여행을 다녀온 것이다. 학생 때 늘 꿈꾸어 오던 전파 여행을.

 

올해 들어 전파상태가 많이 떨어졌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손 쉬었던 유럽과 북미와의 교신 빈도가 낮아지고 있다. 11월 평균 태양흑점지수를 보니 2000년 113, 2001년 116, 2002년 85, 올해 11월은 겨우 45이다. 이제는 로우 밴드(1.8, 3.5, 7 & 10MHz) 안테나를 보강해서 로우 밴드 DX를 즐겨야 할 시기가 온 것이다. 길고 긴 겨울밤 무엇인가 지나간 시절이 그리울 때 조동현OM이 지은 '조동현의 RIG 이야기(지성사)'를 읽어보면 어떨까? 스위치를 켜면 쏴아-하는 소리와 함께 주황색으로 빛나던 진공관 수신기 - R-390A, BC-348 …. 읽다보면 긴 겨울밤이 짧게 느껴질 것이다. 벌써 연말연시가 되었다. 교신을 마치며 이렇게 인사해 보자.  "MERRY CHRISTMAS & HAPPY NEW YEAR 2004"

 

(KARL지 2003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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