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K COLUMN 

 

 

 "국장님"

                             이남규 (HL1DK, 스포츠조선 편집위원)

 

언젠가 아마추어무선에 관심을 가진 사람에게 햄들의 교신을 들려주고 감상을 물은 일이 있었다. 그는 여러 가지 중에서, 서로 "국장님"이라고 부르는 것이 무척 이상하다고 대답했다. 그후 그는 햄이 되었고, 지금은 그 자신이 열심히 "국장님"을 부르고 있다.

"국장님"은 이제 우리 햄들 사이에서 자연스러운 호칭으로 정착되고 있다. 특히 2m 교신을 들어보면 그렇다. 때로는 일본의 햄까지도 우리 햄과 교신하면서 "국장님"을 부른다. 얼마 전에는 용산의 개미시장에 갔다가, 그곳에 모인 CB(생활무선)동호인들도 서로 "국장님"이라고 부른다는 사실을 알았다. 최근에는 "사이드 국장님"까지 등장했다. 남편을 그렇게 부르는 것이다.   

햄들이 서로 깍듯이 "국장님"을 부르며 교신하는 것을 들으면 친근감이 느껴진다. 특히 나이 어린 햄들이 "국장님"을 부르면서 이야기하는 것을 들으면 무척 애교가 있다.

"국장님"은 무척 편리하다. 우리 말에 "국장님"처럼 남녀노소의 벽을 초월하여 두루 사용할 수 있는 호칭은 달리 없다. 상대방의 호출부호나 이름이 생각나지 않을 때, "국장님"이면 충분하다. "귀국"이 있긴 하지만, 성격이 다르고, 일본말을 그대로 번역한 것이라 꺼림직 하다.

우리 나라 햄들이 "국장님"을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꽤 오래 전부터다. 60년대 우리 아마추어무선의 개척자들이 약간의 장난기와, 어느 정도 냉소적인 뜻에서 이 말을 쓰기 시작했던 것이다.

당시는 아마추어무선국이 방송국과 기본적으로는 똑같은 하나의 무선국으로 간주되고 있었다. 지금은 많아 달라졌지만, 그 기본정신은 마찬가지다. 그만큼 아마추어무선이 중시되었다고 할 수도 있었지만, 우리 햄에게는 결코 좋은 일이 되지못했다. 아마추어무선국을 개설하려면, 방송국 하나를 설치하는 것과 거의 같은 종류의 서류를 준비하고, 복잡한 절차를 밟아야 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고달픈 절차를 밟아, 어렵게 만든 무선국이니 자랑스럽기도 하고, 오기도 났을 것이다. 자 이제 나도 어엿한 무선국의 주인이다. 비록 한 사람밖에 없지만, 그 무선국의 최고 책임자이니 "국장님"이 아닌가. (너희들만 "국장님"이냐?)  

이런 사정은 일본도 마찬가지여서--그때나 지금이나 우리 체신부는 일본의 제도를 베꼈으므로--일본의 햄들도 "국장님"을 사용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우리나 그들 모두 어디까지나 장난기로 "국장님"을 사용했을 뿐, 진지한 교신에는 쓰지 않았다. 그때는 "귀국"을 많이 썼고, 이른바 "투콜"시대였으므로, 영문자 두개로 만든 애칭이 유행했다.  

"국장님"이 일반화한 것은 후치부호가 세글자로 된 다음부터인 것 같다. 영문 세 글자로는 너무 길어서 애칭을 만들 수 없다. 그러니 그 기원은 어떻든, 누구에게나 쓸 수 있는 "국장님"이 인기를 얻게 된 것이다.

서양사람들은 통상 대화를 할 때, 상대방의 이름을 많이 사용한다. 햄들이 사용하는 "핸들"은 그 이름을 부르기 쉽게 줄인 것이다. 예를 들어 "Edward"는 "Ed"가 된다. 지위나 나이가 어떻든, 햄의 교신에서는 "핸들"만으로 충분하다. 교신을 시작할 때, 맨 먼저 리포트와 함께 "핸들"을 교환하는 것을 이 때문이다.

우리 언어습관에서는 대화 중에 상대방의 이름을 부르지 않는다. 이름을 사용하려면 꾀까다로운 존칭이나 직함을 붙여야 한다. 영어의 "You"처럼 누구에게나 사용할 수 없는 2인칭 대명사도 없다.

언어는 관습에 의해서도 형성되는 것이므로, 좀 딱딱하고, 관료적인 냄새가 풍기기는 하지만, "국장님"이 우리 햄의 언어생활 속에 정착된다고 해도 나쁠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국장님"의 편리성은 바로 그 단점이 될 수도 있다. 누구에게나 쓸 수 있기 때문에 개성이 없고, 정성이 들어 있지 않다. "국장님" 대신 편리하게 쓸 수 있는 말은 없을까. 이 분야라고 해서 우리 아마추어정신이 적용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HL1DK 이남규, 스포츠조선 편집위원  namlee@chosun.com  KARL지 1994년 09월호 DK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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