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K COLUMN 

 

 

 "한국형" 무전기

                             이남규 (HL1DK, 스포츠조선 편집위원)

 

내가 아마추어무선을 시작했을 때 사용한 송신기는 일본 무선잡지에 난 기사를 보고 만든 아주 조잡스러운 물건이었다. 크리스털로 기본주파수 7MHz를 발진시킨 다음, 차례로 체배를 해서, 절환스위치를 사용하지 않고도 배리컨을 조절하여 7MHz-14MHz-21MHz-28MHz 밴드로 나갈 수 있는 아주 간단한 AM-CW 송신기였다.

수신기는 군용 명칭으로 BC-779라는, 혼자서는 들기도 힘든 미국 해머랜드사 제품이었는데, 폐품으로 방출되어 뼈다귀만 남은 것을 청계천시장에서 모은 부품으로 다시 살린 것이었다. 어쨌든 나는 이 송신기와 수신기를 한동안 애용했는데, 그 때만 해도 공간상태가 좋아서, 이런 조잡한 설비로도 일본이나 동남아지역과는 충분히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특히 BC-779는 상품명으로는 "수퍼 프로"라고 불리웠는데, 일본 사람들은 그 이름만 듣고도 감격을 할만큼 당대의 명기였다.

그러다가 우연한 기회에, 서울에 있던 어느 HL9으로부터 Yaesu FT-101을 인수했다. 출력부만은 진공관을 사용한 이 트랜지스터 트랜시버는 소니의 트랜지스터 레디오처럼, 진공관에서 반도체로 넘어가기 시작한, 당시로서는 혁명적인 송수신기였는데, 미8군 군속이었던 그 HL9에게는 별로 성에 차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전설적인 Collins S 라인에다, 2kw 짜리 리니어 앰프, 그리고 아파트 옥상에 3 소자 야기까지 올려놓고 있었다. 그는 안정도에 좋다고 해서, 하루 종일 송수신기를 켜두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러니 초기의 조잡한 일제 트랜지스터 트랜시버가 마음에 들 리 없었다.

그렇지만 그 Yaesu FT-101가 내게는 꿈같은 존재였다. 음질이나 안정도 같은 면에서 문제가 없던 것은 아니었지만, 나는 Collins나 Drake 같은 미제 트렌시버들이 판을 치고 있는 속에서도, 이 트랜시버로 당당히 어깨를 겨룰 수 있었다. 단 한가지 고민은 장비를 소개할 때, "Yaesu FT-101"라고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때만 해도 일본제품은 저질품의 상징이었다. 사람들은 미제 가 아니면 알아주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그 이래 나는 일본제품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 Yaesu로 시작해서 Trio(Kenwood)로, 그리고 다시 최근 차에 붙일 수 있는 Yaesu FT-900으로 맴돌고 있다. 맥슨의 핸디 트랜시버만이 유일한 예외다. 처음에는 싼 맛에, 그리고는 편리해서, 요즘은 달리 없기 때문에, 별 수 없이 일본제 트랜시버를 사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지만, 그 짧은 기간에 일본인들이 종주국 미국을 물리치고, 세계의 아마추어무선 트랜시버시장을 석권한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다.

지난 3월에 있었던 아마추어무선기사 자격시험 때는 2,800명이 응시했다고 한다. 이대로 나간다면 금년에는 적어도 1만명 이상의 새로운 햄이 탄생할 것이다. 수십 년이 걸렸던 일이 단 한해 동안에 이루어지는 것이다. 얼마나 대견한 일인가. 하지만, 그 많은 사람들이 거의 모두 일본제 트랜시버를 사지 않을 수 없다는 현실을 생각하면, 아무리 "세계화시대"라고는 하지만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다.

지금 세계 어느 나라의 메이커도 일본제 아마추어무선 트랜시버와 맞서 싸워 이길 수는 없다. 저질 아마추어무선기사를 양산한다는 비판을 받으면서도, 법을 바꾸어 수요층을 확대해 놓은 정부, 끊임없는 노력과 창안으로 원조 미국제품을 몰아낸 통신산업계, 그리고 어느 나라 사람보다도 호기심이 많은 일본인들이 공동으로 이룩해 놓은 결과다.

지금 우리가 일본제품과 똑같은 수준에서 대결하려고 한다면 아마도 앞으로 상당한 기간은 승산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과 다른 차원에서 싸우면 이길 수도 있다. 그들이 간과한, 또는 버리고 간 수요를 개척하는 것이다. 요즘 말하는 틈새시장이다. 우월한 상대방과 경쟁하려면, 그들과 전혀 다른 차원과 논리로 싸워야 한다.

그 동안 다른 상품과 마찬가지로, 트랜시버도 엄청나게 기능이 복잡해졌다. 가장 간단해야 할 핸디 트랜시버 조차도, 매뉴얼이 곁에 없으면 소화할 수 없을 만큼 그 기능이 다양해졌다. 치열한 경쟁의 산물이다. 아마 우리는 평상시 그 기능의 5%도 사용하지 않을 것이다.  

가전제품에서는 이미 단순기능 제품으로 돌아가는 움직임이 있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가장 단순한, 그러면서도 기본적인 기능에는 충실한 "한국형" 트랜시버를 값싸게 만들 수는 없을까.

 

<HL1DK 이남규, 스포츠조선 편집위원  namlee@chosun.com  KARL지 1995년 04월호 DK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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