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K COLUMN 

 

 

 착한 사람들

                             이남규 (HL1DK, 스포츠조선 편집위원)

 

언젠가, 퇴근길에 있었던 일이다. 세종로에서 남산 3호터널로 가는 길이 막혔기 때문에, 용산 쪽으로 돌아서, 전쟁기념관을 지나 우회전, 반포대교에 올라서고 있었다. 콜링 주파수 145.000Mhz에서 갑자기 도움을 요청하는 소리가 들렸다. 방금 내가 지나 온 어느 지점에서 장애자가 운전하던 승용차가 연료가 떨어져 꼼짝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행하게도 그 옆을 지나가던 햄이 그것을 발견한 모양이었다.

즉각 몇 사람의 햄이 응답했다. 이들은 주파수를 144.300Mhz로 옮겨서 교신을 계속했다. 서울 시내에서 택시를 운전하는 햄들이 주로 사용하는 주파수다. 이 네트의 회장인 듯한 분이 지휘를 맡았다. 용산역 근처에서 한 햄이 현장으로 달려간다는 이야기가 들렸고, 멀리 신촌에서도 출동하겠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그 무렵, 나는 이미 예술의 전당 근처까지 가 있었기 때문에, 그 후의 교신은 들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 이전까지의 교신상황으로 보아, 그 장애자는 이들의 도움으로 무사히 목적지까지 갈 수 있었을 것이 틀림없다. 차를 운전하는 입장에서, 평소에는 마구 끼어드는 택시 운전기사에 대해 별로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은 나였지만, 그 때는 무척 마음이 뿌듯했지는 것을 느꼈다. 차가 빽빽하게 들어 찬 그 러시아워에, 자기 영업시간을 희생하고, 남을 위해 그처럼 봉사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몇 년전 미국에서 장기 베스트셀러가 되었던 로버트 풀검의 수필집 "내가 정말 알 필요가 있는 것은 모두 유치원에서 배웠다"에는 뉴욕시의 택시 운전기사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잡다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뉴욕시의 택시는 악명이 높기로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실제로 내가 아는 한 사람은 미국 초행길에서, 케네디공항에서 뉴욕시까지 규정 요금의 세배를 뜯겼다. 그 뿐이 아니다. 함께 탄 친구도 그와 똑같은 요금을 따로 내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수필 속의 스티븐 브릴이란 사람은 영어를 잘 못하는, 돈 많은 외국인으로 가장하고, 과연 뉴욕시의 택시 운전기사들이 얼마나 승객을 속이는지 알아보았던 것이다. 그 결과 바가지를 씌운 운전기사는 37명 중 한 명뿐이었다고 한다. 다른 사람들은 미터에 나온 대로 요금을 청구했고, 가까운 곳을 가자고 하면, 길을 가르쳐 주면서 그냥 걸어가라고 한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우스운 것은 그러면서도 그 택시 운전기사들이 뉴욕시에는 나쁜 사람들이 우글거리니까 조심하라고 경고를 했다는 사실이다.

사실 이 책의 이야기가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세상에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고 있는 것보다는 의외로 착한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신문에는 밤낮 끔찍한 이야기가 실리고 있는데도, 세상이 그렁저렁 돌아가는 것을 보면, 그래도 악한 사람보다는 착한 사람들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지난 추석날, 나는 성묘를 가면서 더욱 그것을 느꼈다.

우리 집 선산은 의정부에서 포천 쪽으로 넘어 가는 축석령 부근에 있다. 여러 방향의 길이 교차하는 의정부 일대의 교통은 평상시에도 혼잡하지만, 성묘 때가 되면, 그 일대에 많은 묘지 때문에 더욱 상황이 어려워진다.

이 날은 의정부에 사는 햄들이 발벗고 나선 것 같았다. 서비스 주파수를 전해 놓고, 정체가 심한 지점에 차를 파견하여 정보를 수집하는 등, 의정부 일대를 통과하는 햄들에게 활발하게 도로정보를 제공하고 있었다. 이날, 적지 않은 햄들이 이들의 도움으로 의정부의 도로정체를 쉽게 빠져나갈 수 있었을 것이다.

아마도 이날, 다른 곳에서도 많은 햄들이 자기 시간을 희생하면서, 누군 지도 모르는 햄을 위해, 도로 정보를 제공했을 것이다. 경부고속도로와 영동고속도로 주변에는 거의 직업적으로 그런 봉사를 하고 있는 햄들이 많다는 이야기를 듣고 있다. 또 이번에 시골에 성묘를 갔다 온 사람들 이야기에 의하면, 우리 나라 구석구석에 그런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얼마나 흐뭇한 이야긴가.

요즘 햄인구가 부쩍 늘어, 저질화를 걱정하는 소리도 들린다. 사실 교신 중에도 가끔 불유쾌한 이야기가 오고 가는 것을 들을 수 있다. 그런 교신을 잘 들어보면, 대부분의 문제는 오해에서 출발하고 있고, 조금만 이해를 하려고 하면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세상은, 그리고 그 중에서도 우리 햄의 세계에는 아직은 착한 사람들이 훨씬 더 많은 것 같다.

 

<HL1DK 이남규, 스포츠조선 편집위원  namlee@chosun.com  KARL지 1995년 10월호 DK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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