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K COLUMN 

 

 

 우물안 개구리

                             이남규 (HL1DK, 스포츠조선 편집위원)

 

며칠 전 아주 재미있는 외국인 햄을 만났다. 하니 라드란 레바논인인데, 미국 통신회사 LCC 엔지니어로 서울에 파견되어 셀룰러폰 관계 일을 하는 사람이다. 그는 AA3EI 라는 미국 콜사인을 가지고 있었는데, ARRL 시험관일 뿐만 아니라, 흑인과 백인이 따로 놀고 있던 워싱턴지역에서 통합된 재난구조대를 조직, 그 책임자까지 된 사람이다. 나이는 얼마 되지 않지만, 햄 경력은 15년이라고 했다. 12살 때부터, 전쟁 속의 레바논에서 외부세계와의 유일한 통신수단인 아마추어무선을 하고 있던 아버지 수다드 라드씨(OD5YU)로부터 배웠다는 것이다.

그것보다 더 흥미 있는 것은 나와 만나게 된 경위다. 어디를 가든지 아마추어무선으로 사람을 사귀어 온 그는 지난 6월 서울에 오기 전, ARRL에서 한국 사정을 알아보았다. 그는 미국과 한국 사이에 상호운영협정이 없다는 것, 그러나 서울에 HL9이라는 미군 아마추어무선 클럽이 있어, 그곳에 가면 무슨 방법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서울에 온 그는 우선 전화로 HL9 클럽을 찾아보았다. 그러나 몇 번이나 전화를 했어도 사람들을 만날 수 없었다. 그들은 그저 이 사람, 저 사람 미루기만 하더란 것이다. 결국 그는 HL9에 가졌던 기대를 버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어깨가 좀 이상해서 강남 삼성의료원을 찾아갔다. 이 때 탄 택시의 운전기사가 신기하게도 영어를 아주 잘 하더란 것이다. 하니는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가 햄이란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운전기사는 백태현씨(HL1LXX)였다. 한국 아마추어무선연맹에 가면 무슨 수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하니는 그로부터 전화번호를 얻었다. 그리고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회신이 없었고, 결국 아무도 만날 수 없었다고 한다.

지난 11월 5일, 레바논으로부터 아버지 수다드 라드씨가 리츠 칼튼호텔에 묵고 있는 그를 찾아왔다. 하니는 5층에 있는 아버지 방에 갔다가 창 밖을 내다보았다. 그곳에 낯익은 모슬리 7 소자 HF 야기 안테나가 있었다. 하니는 호텔에서 나와 그 안테나가 있는 집을 찾아갔다. 그는 그 집 문 안에 호텔 전화번호와 자기 방번호를 적은 QSL 카드를 넣어 놓았다.

안테나의 주인은 박호선씨(HL1LKG)였다. 이 QSL 카드를 발견한 그는 즉각 하니에게 전화를 걸었고, 그의 집에서 두 사람은 만났다. 그렇게도 햄을 만나고 싶어했던 하니는 자정이 넘게까지 박호선씨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내가 그 이야기를 듣게 된 것이다.

그가 워싱턴으로 돌아가기 하루 전인 11월 19일, 나는 리츠 칼튼호텔로 하니를 찾아갔다. 우리는 한 시간 반 동안이나 이야기를 했다. 그는 그 동안 마치 대화에 굶주렸다는 듯, 끊임없이 말을 쏟아 놓았다. 왜 우리는 좀더 쉽게, 좀더 일찍 만날 수 없었는가.

요즘 다른 나라의 햄들은 여행을 할 때 반드시 2m 핸디를 가지고 간다고 한다. 그것만 있으면, 어디서든지 리피터를 통해 햄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 나라와 미국간에 상호운영협정이 되어 있었더라면, 하니는 틀림없이 2m 핸디를 가지고 왔을 것이고, 쉽게 우리 햄들을 만날 수 있었을 것이다.

상호운영협정만 탓할 것은 아니다. 뉴질란드에서는 본국의 면허만 있으면, 사전 허가 없이도 외국인이 2m FM을 운영할 수 있다고 한다. 우리 나라와 중국 사이에도 상호운영협정은 없다. 그러나 지난번 백두산 운영과 마찬가지로, 우리 햄들도 절차만 밟으면, 사회주의국가라는 중국에서도 아마추어무선을 할 수 있다.

지난 번 베이징에서 열린 95 DX 컨벤션에서, 중국정부는 이 회의 참가자에게 한달 동안 베이징 일원에서 2m 핸디를 운영할 수 있는 허가를 내주었다. 상호운영협정이 안되어 있는 태국에서도, 그곳에 머물고 있는 우리 햄 몇 분이 21Mhz 밴드에서 활발히 나오고 있다.

그런데 우리 나라에서는 상호운영협정이 되어 있는 일본인과 HL9 의 미국인 이외에는 어느 외국인도 아마추어무선을 할 수 없게 되어 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개방사회에 살고 있고, 선진국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우리는 입으로는 세계화니 뭐니 하고 이야기하고 있지만, 구호만 내걸려 있을 뿐, 알맹이는 없다. 다른 나라 사람이 자유롭게 우리 나라에서 아마추어무선을 할 수 있고, 또 우리가 그 나라에 가서 아마추어무선을 할 수 있는 것보다 더 실질적인 세계화가 어디 있단 말인가.

하니는 미국에 돌아가면, 중대한 주권 침해이기도 한 HL9의 폐지와 상호운영협정 추진 등, 두 나라 햄의 교류를 확대할 수 있도록 풀뿌리 차원에서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나도 우리 나라에서 우리 회원들과 함께 햄의 세계화를 위한 운동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세계는 지금 글자 그대로 국경을 초월하는 햄의 시대로 들어가고 있다. 국제운전면허처럼, 어느 나라에서도 햄을 할 수 있는 면허제도도 도입되고 있다. 우리도 하루 빨리 우물안 개구리 세계관에서 벗어나야 한다.

 

<HL1DK 이남규, 스포츠조선 편집위원  namlee@chosun.com  KARL지 1995년 12월호 DK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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