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K COLUMN 

 

 

 명기는 죽지 않는다

                             이남규 (HL1DK, 디지틀조선 편집위원)

 

  다른 모든 분야와 마찬가지로, 아마추어무선에도 명기라는 것이 점점 보기 어렵게 되어 가고 있다. 환상의 명기라던 미국 콜린스사의 S라인이나 KWM-2 계열 장비는 올드 타이머들이나 알아주는 신세가 되어 버렸다. 한 때 일본 사람들이 "목으로 침이 넘어 간다"고 가지고 싶어하던 미국 해머랜드사의 수퍼 프로 같은 덩치 큰 수신기는 이제 이름조차 기억하는 사람이 별로 없을 것이다.

  요즘 일종의 복고풍을 타고, 다시 그런 옛날 명기들이 부활하고 있는 조짐이 있다. 일본 야에스사의 최신  HF 트랜시버 FT-1000MP 트랜시버에 콜린스사 명기의 핵심 부품이었던 메커니컬 필터를 도입한 것이다. 어떻게 보면 마치 장기 이식 수술을 하고 나온 것 같아 꺼림직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수 십년 전에 개발된 명기의 일부가 다시 최신 제품의 일부로 등장한 데 대해서는 박수를 보내고 싶다.

  역시 명기는 시간을 초월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95년 12월 25일자 타임을 보면, 95년의 가장 훌륭했던 10대 상품으로 선정된 것 중에서 제 1호로 일본 쿄세라사에서 만든 고급 카메라 콘택스 G1을 올려놓고 있다. 이 카메라는 그 동안 싱글 리플렉스식에 밀려 찬밥 신세가 되어 있던 렌지 파인더 방식에, 광학기구의 명가 독일 칼 차이스 렌즈를 채택, 형식상으로는 수 십년 전의 명기 라이카처럼 만들어져 있다. 확립된 옛날 기술의 장점에다 첨단기술을 첨가한 것이 이 카메라의 성공 이유라고 한다.

  콜린스사의 메커니컬 필터는 대역이 평탄한 데다가, 중심주파수에서 조금 벗어나면 대역이 벌어지는 수정이나 세라믹 등 다른 필터와는 달리, 불필요한 주파수대를 날카롭게 끊어 내는 특성이 우수해서, SSB 장비에서 최고의 부품으로 환영을 받았다. 값이 비싼 것이 흠이었지만, 옛날 청계천 거리에서는 군용 무전기에서 나온 이 필터가 많이 돌아 다녔고. 초창기의 우리 햄들이 자작 송신기를 만드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 동안 여러 가지 필터가 개발되었지만, 아직도 이 메커니컬 필터보다 나은 것은 없는 모양이다. FT-1000MP 광고 사진을 보면, 여기에 들어 있는 메커니컬 필터는 옛날 흔히 볼 수 있던 원통형 금속 통에 들어 있던 것과는 달리 6면체 모양을 하고 있고, 만든 곳도 멕시코로 되어 있다. 아마 미국의 높은 인건비로는 공이 많이 드는 이런 부품을 만들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야에스의 메커니컬 필터를 의식한 듯, 라이벌인 켄우드사는 그들의 최신 최고급 모델인 TS-870 광고에서 "더 이상 크리스털/메커니컬 필터의 특성에 의존하지 않는 기술"을 강조하고 있다. 이 모델은 디지틀 기술을 대폭 도입하고 있다. 이론상으로는 이런 최신 기술이 재래식 필터보다 더 성능이 좋을 수도 있다고 한다. 어쨌든 이 두 모델은 값은 야에스 쪽이 비싸지만, 모두 일본 돈으로 30만 엔이 넘는 고가품들이다. 대조적인 철학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이 두 모델이 실제 시장 경쟁에서 어떤 결과로 나타날지 지켜 볼만하다.

  나는 심정적으로는 첨단 기술을 활용한 제품을 응원하고 싶다. 일단 새 기술을 도입한 기계가 나오면 우선 사고 싶어한다. 또 그렇게 해야 새 기술이 나오고 발전도 될 것이다. 그러나 너무 앞서 가면 위험이 따른다. 첨단제품을 쫓아가다 보면, 어느 덧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반면에 기본이 확실한 것만 가지고 있으면 어떤 변화에도 어느 정도 대처할 수 있다. 내가 20년 전 카메라를 지금도 전혀 불편 없이 쓰고 있는 이유의 하나도 그것이다.

  요즘 나는 이 첨단기술 때문에 골치를 앓고 있다. 내 최신형 트랜시버가 내 명령보다는 오만하게도, 내장된 CPU 마음대로 동작하는 때가 있기 때문이다. 워낙 많은 기능을 제어하려다 보니 버그가 생기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내 트랜시버 뿐만 아니라, 요즘 일본에서 나오고 있는 값비싼 최신 제품에서 이런 현상이 흔히 일어난다고 한다. 또 실제로 요즘 트랜시버는 너무 기능이 다양하고 복잡해서, 어느 부분에 고장이 있는지도 모르고 사용하고 있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요즘 트랜시버는 사용자가 쉽고 편리하게 쓸 수 있도록 만든다고 한 것이, 여러 가지 기능이 자동화되고 추가됨에 따라, 점점 더 복잡하고 쓰기 어렵게 되어 버렸다. 이제는 사람이 무전기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무전기에게 매달리는 꼴이 되었다.

  명기란 기본이 확실하고 충실한 것이다. 이런 기회에 우리 메이커들이 정말 기본에 충실하고, 주인이 마음대로 쓸 수 있는 명기를 만들어 주었으면 좋겠다.

 

<HL1DK 이남규, 디지털조선 편집위원  namlee@chosun.com  KARL지 1996년 02월호 DK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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