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K COLUMN 

 

 

 채널 2는 찾았지만

                             이남규 (HL1DK, 디지틀조선 편집위원)

 

주한미군방송 AFKN의 서울지역 텔레비전방송이 4월 30일부터 VHF 채널 2에서 UHF 채널 34 로 옮겨갔다. 이날 나는 무언가 의미 있는 행사 같은 것을 기대했는데, 싱겁게도 예정시간인 아침 11 시가 되자, 그저 채널 2 의 송신이 끊어진 것뿐이었다. AFKN은 이미 몇 달 전부터 채널 34 로도 시험방송을 하고 있었다.

주한미군 측에서 보면 채널 이동은 단순히 방송 채널을 옮기는 기술적인 행사에 불과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마치 잃었던 주권을 다시 찾은 것 같은, 단순한 기술적인 행사 이상의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AFKN 이 서울에서 텔레비전 방송을 시작한 것은 57 년 9 월 15일이다. 전쟁이 끝난지 4 년. 아직도 그 참화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우리로서는 텔레비전 같은 것은 꿈도 꿀 수 없었던 시절이었다. 이들이 텔레비전방송의 메인스트리트라고 할 수 있는 VHF 채널을 사용할 수 있었던 것도 그 때문이었을 것이다. 물론 그 때까지 널리 보급되지 못했던 UHF 채널의 기술적인 문제도 있었을 것이다.

AFKN 은 우리 나라의 방송계에서, 적어도 기술적인 측면에서는, 선구자적 역할을 했다. 1977 년, 우리가 사치다 아니다 하고 논란을 벌이고 있을 때, 컬러텔레비전방송을 시작한 것도 이 방송이었다. 이들은 우리보다 먼저 인공위성을 통한 뉴스프로그램을 도입하여, 뉴스와 스포츠를 중계했고, 24 시간 방송체제를 확립했다.   

AFKN의 공과에 대해서는 그 동안 많은 논란이 있었다. 그러나 나는 기본적으로 이 방송의 공이 더 컸다고 생각한다. 이 방송의 폐해를 지적하는 사람은 텔레비전을 타고 들어 온 미국의 저질 대중문화,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문화침략"까지를 이야기했다. 물론 그런 부정적인 측면이 분명히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오히려 우리 수용측의 자세와 문제라고 할 수 있었다. 그보다는 정보원을 다양하게 확대해 줌으로서 우리의 기본적인 알 권리를 충족시켜 준 공이 훨씬 더 큰 것이다.

모든 신문과 방송이 엄격한 통제 밑에 있었던 무렵, AFKN 은 바깥 세계의 움직임을 알 수 있게 해준 중요한 정보원이었다. 이른바 문민정부가 들어서고, 위성방송을 비롯한 다양한 통신수단과 정보전달 체제를 이용할 수 있게 된 다음에도 AFKN 은 그런 역할을 하고 있었다. 바로 지난 4 월 16일, 제주도에서 한미 양국 대통령의 회담이 있었을 때, 이 두 지도자의 합동기자회견을 생중계한 텔레비전은 CNN을 받은 AFKN 뿐이었다. 우리 나라의 세 텔레비전은 정오가 되자 아침 정규방송을 끝냈던 것이다.

우리 정부가 회수한 채널 2 는 "비상통신용"이라고만 되어 있을 뿐, 아직 특별히 용도가 확정되어 있지 않다. 그렇다면 왜 우리 정부는 거의 30 억원이나 되는 이전비용까지 물어 가면서 이 채널을 회수했을까. 바로 체면과 위신 때문이었다. 남의 나라 지상파 텔레비전방송이 우리 안방에 해당하는 곳에 들어와 있는 것을 용인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어느 신문이 이것을 "주권회복"이라고 보도한 것도 무리는 아니다.

우리 햄의 세계에도 안방에 들어와 있는 손님이 있다. 이 역시 우리가 전쟁 때문에 정신이 없었을 무렵, 일방적으로 밀고 들어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주한미군의 아마추어무선국 HL9 이다. 이들은 AFKN 처럼 국내 거주자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온 세계의 햄을 향해서 활동을 하고 있다. 그들의 왕성한 활동은 때로는 우리 나라를 대표하는 존재처럼 착각되기도 한다.

이들은 우리 정보통신부의 관할밖에 있다. 그들 마음대로 콜사인을 부여하고, 허가를 내 준다. 주한미군과 그 군무원에만 내주고, 군기지 안에서만 운영하도록 되어 있는 규정이 재대로 지켜지지 않는 경우도 있다. 다시 말해서 실질적으로 우리 주권밖에 있는 것이다. 그 근거는 전쟁 중에 체결된 한미행정협정에 있다고 한다. 기본적으로 불평등하게 되어 있는 이 협정은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우리 나라의 특수한 여건 때문에 우리가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동안 이 행정협정의 불평등성과 주권 침해가 문제가 되어, 지금 두 나라 사이에 개정협상이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관심의 초점은 주한미군의 범죄에 관련된 사법제도다. 우리에게는 무엇보다도 중요한 주권 침해로 생각되고 있는 HL9 문제는 제기되지 않고 있는 것 같다.       

"우호적"으로 생각하면 HL9 역시 세계 많은 햄 중의 일부다. 그들 하나 하나는 우리 누구와도 다를 것이 없는 좋은 사람들이다. 그렇다고 손님이 주인의 의사를 무시하고 안방을 차지하는 것은 용인할 수 없다. 옛날과는 달리, 지금 우리는 손님들도 충분히 아마추어무선을 즐길 수 있는 여건을 갖추고 있다. 제도적인 문제가 아직 있기는 하지만, 는 의지만 있으면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다.

 주인과 손님은 대등한 관계에서 서로를 인정하고 존경할 할 때 비로소 진정한 우호관계가 성립될 수 있다.

 

<HL1DK 이남규, 디지털조선 편집위원  namlee@chosun.com  KARL지 1996년 06월호 DK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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