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K COLUMN 

 

 

 KAL 사고와 트랜시버

                             이남규 (HL1DK, 디지틀조선 편집위원)

 

지난 8월, 괌의 아가나공항에 착륙하려던 대한항공 801편 점보기가 추락, 216명의 희생자를 냈다. 현대과학에 대한 맹신이 있었고, 그래도 비행기는 다른 교통수장에 비해 안전하다는 환상도 있었기 때문에, 그 동안 무심히 타고 다녔지만, 곰곰이 생각해 볼 수록 끔찍하다.

오래 전 일이지만, 여객기 조종실에 앉아서 착륙하는 과정을 지켜본 일이 있었는데, 조종사는 거의 손을 놓고 있는데도, 비행기는 마치 살아있는 생물체인 듯 혼자서 길을 찾아 내려가고 있었다. 그래서 별것 아니구나 하고 생각했는데, 이번 사고 보도를 보고 비행기가 내릴 때 수동, 자동 등 여러 가지 복잡한 장치가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차라리 옛날처럼 장치가 단순했더라면, 조종사는 상황이 어려울 때 착륙을 단념해서 참사를 막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조종실에는 천장까지 빽빽하게 복잡한 계기판과 스위치가 붙어 있다. 사람의 능력은 한계가 있는 데, 비록 부조종사의 도움이 있다고는 하지만, 혼자서 그렇게 많은 계기를 확인하면서 조종을 해야 한다면, 사고가 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것이다. 특히 사고가 가장 많이 일어난다는 이륙과 착륙 시 "마의 13분"은 생각만 해도 오싹할 지경이다.

오늘 날 비행기의 조종석은 분명히 인간의 능력을 고려하지 않고, 기능 자체만을 생각해서 설계되어 있는 것 같다. 어설픈 자동화는 오히려 사고의 원인이 된다. 뒤늦게 미공군은 21세기를 위해 개발중인 F-22전투기 조종석의 계기판을 극도로 단순하게 만들고 있다고 한다. 예를 들면 이 전투기에서는 적의 미사일이나 전투기의 위협이 있을 때, 가장 먼저 대처해야 할 것만 표시하게 되어 있다 고한다.

요즘 우리 트랜시버도 똑같은 문제를 가지고 있다. 불후의 명기라는 미국 콜린스사의 KWM-2까지는 햄이 사용하는 트랜시버에 꼭 필요한 기능과 스위치만 달려 있었다. 그러나 일본인의 상술이 세계의 햄기기시장을 휩쓸면서, 트랜시버에는 별로 쓸 일도 없는 기능이 마구 추가되고, 대중용 스테레오기기처럼 온통 스위치와 버튼 투성이가 되어버렸다. 이제는 가장 간단해야 할 핸디조차 매뉴얼이 없으면 제대로 쓸 수 없을 정도다.

나는 수년 전 모빌운용을 해보려고 일본의 한 유명메이커 HF트랜시버를 샀다가 거의 1년 간 골치를 앓은 일이 있다. 앞 패널을 분리할 수 있고 다양한 기능이 들어 있는 이 트랜시버는 사용 중 가끔 전원이 저절로 꺼졌다. 일본 본사에도 물어 보았지만, 그럴 리 없다는 답변뿐이었다. 생각다 못해 그 이야기를 인터넷에 올렸더니, 한 미국햄이 CPU 결함이라고 가르쳐 주었다. 미국에서도 이미 문제가 되어 그 CPU를 교체해주고 있다는 것이다.

이 메일을 팩스로 일본본사에 보냈더니 그제야 결함을 인정하고, 서울에 있는 딜러를 통해 CPU를 바꾸어 주었다. 그 이래 그 트랜시버는 아무런 문제없이 작동하고 있지만, 이 메이커에 대한 환상은 여기서 깨지고 말았다.

이 회사와 쌍벽을 이루고 있는 라이벌사에 대한 환상마저 깨진 것은 최근의 일이다. 이번은 연초에 미국 친구가 사다 준 2m 모빌용 트랜시버였는데, 요즘도 새로운 기능을 열심히 광고를 하고 있는 제품이다. 막상 써보니 그 간판격인 기능은 거의 쓸모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사용중 주파수대가 갑자기 바뀐다던가, 스켈치가 저절로 열린다든가, 오토스캔이 제멋대로 서버리는 현상이 있었다.

이 회사 역시 처음에는 그런 일이 있을 수 없다고 잡아뗐다. 그러나 끈질기게 문제를 제기했더니 그들도 결국 잘못을 인정했다. 이미 미국에서는 암암리에 리콜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비싼 송료를 들여 미국으로 반송해서 교환했는데, 아직도 가끔 그런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역시 CPU 문제라고 한다.    

메이커들의 능력을 벗어난 경쟁으로 골탕을 먹는 것은 우리 소비자뿐이다. 기본적인 성능은 10년이나 20년 전에 비해 별로 달라진 것이 없는데, 기계는 쓸 데 없이 복잡해지고 있다. 그렇다고 이런 일본 메이커들이 세계의 햄기기시장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는 상황에서 달리 대항수단이 없다. 이럴 때 어느 메이커든, 단순하고도 확실한 트랜시버를 개발해서 내 놓았으면 좋겠다.

 

<HL1DK 이남규, 디지털조선 편집위원  namlee@chosun.com  KARL지 1997년 10월호 DK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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