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K COLUMN 

 

 

 특전사대원들이 햄이었다면

                             이남규 (HL1DK, 디지틀조선 편집위원)

 

워싱턴시, 백악관에서 별로 멀지 않은 풀밭 내셔널 몰에 한국전쟁 기념물이 있다. 전사 54,246명, 부상 103,284명, 실종 7,140명이라는 엄청난 인명피해를 냈으면서도, "잊혀진 전쟁"이 되어가고 있던 한국전쟁의 기념물이 이 곳에 건립된 것은 미국인들이 베트남전쟁의 악몽에서 벗어나기 시작한 다음이다. 먼저 베트남 참전기념비가 이 풀밭에 들어섰고, 95년 여름 그 맞은 편에 한국전 참전기념비가 섰다.

나중에 간단한 동상이 한 쪽에 추가되긴 했지만, 전사자의 이름이 조각된 검은 대리석 벽이 주변보다 낮게, V자형으로 배치되어 있는 베트남전참전비와는 달리, 한국전참전비는 9,000 평방m의 대지에 19 개의 실제인물보다 큰 스테인리스제 동상이 서있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이 동상은 당시 전쟁에 참가했던 각 인종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한다. 판초우의를 입은 병사가 산개해서 걸어가고 있는 모습은 승리와 환희보다는 이 전쟁의 고난을 묘사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그 헐렁한 판초가 당시 준비 없이 뛰어 들었던 미군을 괴롭힌 장마와 더위를 상징하고 있다.

그러나 더 흥미 있는 것은 앞에 선 병사가 안테나가 길게 뻗친 워키토키를 들고 있다는 사실이다. 손가락 크기의 미니추어진공관을 사용한 이 무전기는 지금 보면 무척 큰 덩치이고, 성능도 손바닥 안에 들어가는 요즘 핸디보다 별로 나을 게 없었을 테지만, 당시로서는 전장의 최첨단 통신수단이었을 것이다. 휴전 이후 서울 청계천 고물시장에도 부서진 이 무전기가 많이 쌓여 있었고, 좁은 공간에 가득 찬 부품덩어리는 경탄의 대상이었다.

이 조각을 만든 사람이 왜 이 무전기를 한국전 기념비 상징의 하나로 선택했는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그는 통신이 전장에서 얼마나 중요하다는 것만은 알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요즘 조선일보에서 연재중인 박정희대통령 이야기를 보면 한국전쟁 초기, 국군의 주력부대가 서울 이북에 남아 있는 상황에서 한강다리가 너무 일찍 폭파되어 많은 희생을 낸 것도 통신이 두절되었기 때문이었다. 육군본부는 폭파명령을 뒤늦게 취소했으나, 그 명령이 현장 지휘관에게 전달되지 않았던 것이다.

지난 4월 초 충북 영동군 민지지산에서 일어난 특전사대원 조난사고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문득 이 참전비 생각을 했다. 그리고 우리가 말로는 정보화시대를 이야기하고, 통신의 중요성을 강조하지만, 실제로 그것을 몸으로 실천하는 일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는 것도 다시 한번 깨달았다.

당시 이 지역 산악의 정상부근에서 훈련 중이던 특전사대원들은 강풍과 눈 등, 갑작스러운 기상변화를 만나, 6명이 사망했다. 신문보도에 의하면, 이들은 방한준비가 충분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더 큰 문제는 그런 상황에 대비한 통신장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들이 가지고 있던 것은 단거리교신용 무전기였다고 한다. 그나마 합동조사반의 발표에 의하면, "무전기의 송수화기가 눈보라와 혹한으로 결빙되어 장애가 발생"했다고 되어 있다. 대원들이 쓰러지기 시작했을 때, 통신만 유지되고 있었더라면, 그런 참극은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 이상의 내용은 없었지만, 이 정도의 정보만으로도 대부분의 우리 햄들은 상황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혹한과 눈으로 전지가 얼어 무전기의 기능이 떨어졌을 것이다. 마이크도 습기 많거나 기온이 내려가면 동작하지 않는다. 이 것은 겨울에 핸디를 가지고 등산해 본 햄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지식이고, 또 그에 대한 대책도 알고 있다. 또 햄이라면, 초단파를 사용하는 FM무전기의 통달거리와 지형 또는 기후의 영향 같은 것도 잘 알고 있을 것이므로, 무슨 방법으로든지 구조를 요청할 수 있었을 것이다.

혹시 대원 중에 햄이 있어서, 2m 핸디를 가지고 있었더라면 그 지역의 햄과 연결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겨울 등산에 핸디를 가지고 가는 사람들을 극성스럽다거나, 시끄럽다고 나무란 사람도 있었겠지만, 실로 그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엄청난 능력을 키우고 있던 셈이다.  

정보화란 이런 것이다. 그것은 현수막을 붙이고, 예산을 배정하는 것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남보다 조금만 더 정성을 들이면, 아마추어무선에서도 무한한 잠재력을 발견할 수 있다.

 

<HL1DK 이남규, 디지털조선 편집위원  namlee@chosun.com  KARL지 1998년 06월호 DK컬럼>

 

 

Copyright ⓒ2001- 2015   Korea DX Club.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