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K COLUMN 

 

 

 재난통신과 비상통신

                             이남규 (HL1DK, 디지틀조선 편집위원)

 

엘니뇨 탓이라고도 하지만, 98년은 유난히도 전 세계적으로 자연재난이 확산되었던 해였다. 게다가 이번에는 우리 나라도 예외는 아니어서, 지역에 따라서는 1년 분 강수량이 며칠 동안에 쏟아지는 변고도 있었다. 이로 인해 근래에 없었던 엄청난 재산피해와 함께 많은 인명손실이 있었다.

서울에도 수십 년만에 처음이라는 비가 이틀에 걸쳐 쏟아졌던 8월 4일 새벽, 나는 느닷없이 울리는 사이렌 소리에 잠을 깼다. 비가 억수처럼 쏟아지고 있었다. 시계를 보니 4시 30분. 바깥은 캄캄했다. 우리 동네는 그 동안 수해를 입은 적이 없었지만, 근처에 한강으로 들어가는 탄천이 흐르고 있었기 때문에 마냥 안심할 수는 없는 곳이었다. 피난하라는 경고일까. 바깥에서 사람들이 나와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텔레비전을 켜 보았지만, AFKN만이 방송을 하고 있었다.

혹시나 하고 2m 트랜시버를 켜 보았다. 간간이 몇 국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어느 햄이 홍수정보와 교통상황을 전해주고 있었다. 그는 특별한 정보소스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곳 저곳에서 다른 햄이 전해주는 도로상황과 피해를 종합해서 알려 주는 정도였지만, 적어도 그 시간에는 그 것이 서울 시내의 상황을 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이럴 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정보인데, 그것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6시가 되자 텔레비전이 방송을 시작, 전반적인 상황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연맹 서울지부와 적십자사 재난통신 교신도 들렸다. 남양주시와 경기도청은 아예 홍수피해 상황실 통신시스템의 일부로 2m를 이용하고 있었다. 나중에 KARL지를 보니까, 이밖에도 많은 햄들이 이번 홍수 때 여러 분야에서 활약했던 것 같다. 그러나 이번에도 햄들의 능력은 그 엄청난 잠재력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그리고 효과적으로 활용된 것 같지는 않다.

평시에는 완벽하게 구성된 것처럼 보이던 통신망도 홍수와 같은 재난이 발생하면 대부분 마비되고 만다. 요즘은 핸드폰과 같은 이동통신이 보급되어서 옛날 같지는 않다고 해도, 이 역시 전원이나 중계시설이 기능을 잃어버리면 쓸모가 없어진다. 이런 사정은 미국도 마찬가지이고, 지난 번 일본 고베대지진 때도 예외는 아니었다. 고베시당국은 이 때의 교훈을 살려서 비상무선통신망을 정비했다고 하지만, 시설은 물론이고 유지나 운영비용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아마추어무선으로 구성되는 비상통신망은 다른 통신수단이 따라 올 수 없는 커다란 이점을 가지고 있다. 우리들의 통신망은 기본적으로 무선통신으로 구성되어 있고, 또 요즘에는 어디서도 운용할 수 있을 만큼 이동성이 향상되었다. 더구나 햄은 이제 전국적으로 고루 분포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은 평상시의 취미활동을 통해 무전기를 효과적으로 다룰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문제는 이 같은 능력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방법이다. 여기에는 대체로 영국처럼 아마추어무선을 국가재난비상통신망의 일부로 포함시켜 조직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방식과, 미국처럼 자발적인 봉사활동에 일임하고 있는 방식이 있다고 한다. 호주 역시 햄의 재난통신제도가 확립되어, 수년 전 산림 대화재 때 위력을 발휘했다. 현재 우리 나라에는 연맹지부를 중심으로 재난통신활동 조직이 있고, 한국적십자사에도 재난구조활동을 돕고 있는 통신지원조직이 있다. 경기도처럼, 비상시에는 사실상 행정통신망의 일부로 아마추어무선을 이용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

몇 년 전 미국 워싱턴시의 재난구조비상통신망을 창설한 햄으로부터 이야기를 들은 일이 있다. 그 한 일은 비상사태가 발생했을 때 봉사할 수 있는 햄의 명단을 확보하고, 그 연락망을 유지하는 것뿐이었다. 이 비상통신조직은 방사능누출로 어느 지역 주민을 긴급히 대피시킬 때 효과가 증명되었다고 한다. 이 때 키스테이션의 역할을 맡아 가장 공헌이 컸던 것은 몸이 불편해서 항상 집에 머물러 있어야 했던 햄이었다는 것이다.

재난은 예고 없이 일어난다. 일이 생기면 즉각 우리들의 능력을 최대한으로 활용할 수 있는 실질적이고도 효과적인 시스템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

<HL1DK 이남규, 디지털조선 편집위원  namlee@chosun.com  KARL지 1998년 12월호 DK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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