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K COLUMN 

 

 

 OT들의 이야기

                             이남규 (HL1DK, 디지틀조선 편집위원)

 

몇 년 전, "할아버지"란 말을 처음 들었을 때는 정말 충격적이었다. 내가 다니는 테니스코트 코치의 어린 딸이 나를 보더니, 느닷없이 "할아버지"라고 불렀다. 그 무렵 막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한 그 아이에게 눈치코치나, 능청이 있을 리 없었다. 아이는 그저 보이는 대로 나를 불렀을 것이다. 나는 그냥 못 들은 척했지만, 그것은 그 동안 잊고 있고 있었던, 그리고 애써 잊으려고 했던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일깨워준 데서 받은 충격이었던 것이다.  

나이는 인생에서 어떤 시기가 되면, 갑자기 핸디캡으로 작용하기 시작한다. 그래서 성숙된 사회일수록 처음부터 이 핸디캡이 생기지 않도록 하거나,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배려가 마련되어 있다. 물론, "취미의 왕"인 우리 아마추어무선에 그런 배려가 없을 리 없다.

원래 아마추어무선에는 나이라는 개념이 없다. "OM"이라는 호칭도 단순히 남성임을 가리키는 말일뿐, 흔히 이해하고 있는 것처럼 "Old Man(노인)"이라는 의미는 들어있지 않다. 따라서 이 호칭은 어린이로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두루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요즘 흔히 쓰고 있는 "YB"란 호칭은 일본사람들이 만들어낸 것으로, 아마추어무선에서는 공인되어 있지 않은 말이다.

여성을 표시하는 "YL"에도 나이의 개념은 들어있지 않다. 기혼여성임을 표시하는 호칭으로 "XYL"이 있지만, 특수한 경우에만 사용될 뿐이고, 성차별이란 이유로 "Mrs."가 점차 사라지고, "Ms"가 사용되고 있는 것처럼, 언젠가는 없어질지도 모른다.

아마추어무선에서 유일하게 나이에 연결될 수 있는 호칭은 "OT(Old Timer)"라고 할 수도 있지만, 이 역시 나이보다는 "30년 이상"이라는 운영경력에 관련된 말이다. 일찍 아마추어무선을 시작하면, 40대에도 OT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지난 7월 25일, 연맹에서 그 OT를 위해서 마련한 모임이 서울의 교육문화회관에서 있었다. 이 날 초청된 OT는 18명이었는데, 실제로 참석한 사람은 13명이었다. 가서 보니 나는 그 끝자리 근처에 겨우 턱걸이를 한 것으로 되어 있었다. KARL이 발족한 것은 1955년이었고, 내가 아마추어무선을 시작한 것은 1967년이었으므로, 비록 한 자리에 모이긴 했지만, 나와 초기 개척자들 사이에는 실로 10 년 이상의 간격이 있었다.

실로 반세기에 가까운 한국아마추어무선의 역사가 그 곳에 있었다. 콜사인은 가지고 있지 않으면서도 우리나라 아마추어무선의 토대를 만든 연맹 초대회장 이인관씨가 있었다. 이제 우리나라에 다섯 국밖에 남지 않은 두 자리 A 콜에서는 이여은(HL1AK)씨를 제외하고, 요즘도 20m 밴드에서 활발하게 SSTV를 운영하고 있는 박성근(HL1AQ)씨, 불편한 몸에도 불구하고 전혀 변하지 않은 목소리로 나오고 있는 이명선(HL1AV)씨, 독도원정의 개척자 이광수(HL1AS)씨, 그리고 5대양을 누볐던 부산의 조병주(HL5AP)씨 등이 모두 참석했다. 개척자그룹의 일원이었으면서도, 콜사인은 늦게 받은 것을 못내 아쉬워하고 있는 과기처장관 서정욱(HL1BX)씨도 참석했다.

 그 동안 이와 비슷한 모임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모양을 갖춘 행사는 처음이다. 가뜩이나 요즘 "젊은 피"라고 해서, 다시 세대교체의 바람이 불어 주눅이 들어 있는 가운데, 이런 모임을 마련해 준 것은, 초청의 대상이 된 사람의 하나로서 무척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이 번 모임이 단순한 의례적인 행사가 아니라, 그 동안 소외된 느낌을 가지고 있던 세대와 함께 다시 한번 개척기의 정신으로 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기를 바란다.  

55년 4월, 40명으로 시작한 우리 한국아마추어무선연맹은 이제 정회원 11,386명, 준회원 4,961명 등, 16,347명의 회원을 가진 커다란 전국적인 조직으로 발전했다. 분단국이라는 특수한 상황으로 해서 사실상 강력한 규제를 받았던 시기를 제외한 다면, 이처럼 짧은 기간에 이만큼 규모가 커진 것도 세계에 달리 유례가 없을 것이다.    

이제는 그 성장에 따르게 마련인 부작용에 대해서도 관심을 돌릴 때가 된 것 같다. 이 날 모인 OT와, 함께 초청된 전임 이사장들의 공통된 걱정도 그것이었다. 그러나 세대를 넘는 회원들의 협조가 있다면 그런 문제도 어렵지 않게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HL1DK 이남규, 디지털조선 편집위원  namlee@chosun.com  KARL지 1999년 09월호 DK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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