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K COLUMN 

 

 

 새해의 기대''' 평양에서 CQ

                             이남규 (HL1DK, 스포츠조선 편집위원)

 

세상일은 정말 알 수 없다. 북한이 우리에게 전기를 보내달라고 간청을 하게 되다니... 바로 그 반대의 경우를 겪었던 사람들에게는 정말 감개무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52년 전, 우리들은 중학교 입학시험 공부를 하느라고 정신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과외공부가 아니라, 그저 우리끼리 몇 사람씩 모여서 학교에 남아 밤늦게까지 자습을 하는 것이 전부였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전기가 끊어지고 야간자습은 더 이상 할 수 없게 되었다. 한국전력의 기록을 찾아보니까 1948년 5월 14일의 일이었다.

  당시 우리나라의 발전시설은 아시아 최대의 압록강 수풍수력발전소를 비롯해서, 90%가량이 북한에 있었다. 그러나 북한은 남북으로 분단된 다음에도 전기는 계속 보내주었기 때문에, 우리는 별 불편 없이 살 수 있었다. 그 대가로 남쪽에서는 기계와 의약품 같은 것을 지불했던 것 같다. 그러다가 대한민국 건국 후 첫 총선거가 실시된 지 나흘 후, 북한은 돌연 전기를 끊어버린 것이다.    

  남쪽의 산업은 일순 거의 마비되었고, 우리도 석유등잔이나 촛불을 키고 공부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미국에서 부랴부랴 발전선을 들여와 인천항에 정박시켜 놓고 전기를 공급했지만 턱없이 모자라 제한송전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저녁이 되면, 레디오에서는 배전소의 실황을 중계방송 했다. 지역 별로 전기 사용량이 일정한 한계에 접근하면, 방송으로 경고를 하고, 그 한계를 넘으면 송전을 중단했다.

  그리고 그 2년 후, 북한은 전쟁을 시작했다. 그나마 우리가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이 파괴되었다. 지금처럼 전기를 쓸 수 있게 된 것은 그 전쟁이 끝난 지 10년이 지난 다음이었다. 전기를 하루 종일 쓸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치 천국에 와 있는 기분이었다. 그러니 우리 세대는 인생의 가장 중요한 시기에 전기의 혜택을 제대로 받지 못한 것이다.

  북한은 지난 12월의 장관급 평양회담에서 전기를 달라고 하면서, 해방 후 남쪽에 전기를 공급했던 일을 상기시켰다고 한다. 그러나 송전을 중단한 사실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전기공급 문제는 쌀이나 비료와는 차원이 다르기 때문에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무엇보다도 가장 큰 걸림돌은 불신감이다. 과연 북한은 진정으로 화해를 원하고, 온 민족의 합의를 바탕으로 한 통일을 바라고 있는 것인가. 지금까지 나타난 현상은 오직 경제적 파탄에서 벗어나기 위한 쌀과 비료, 현금 그리고 전기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럴 때 남북한의 아마추어무선 교류가 실현된다면 그런 인상을 지우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북한은 오로지 정치적인 이유로 그 동안 아마추어무선의 접근이 금지되었다. 그 결과 북한은 햄, 특히 DXCC를 하려는 사람들에게 가장 선호순위가 높은 컨트리가 되었다. 그 동안 북한에서 아마추어무선을 운영해 보려는 노력은 공식 또는 비공식적으로 꾸준히 계속되어왔다. 그 중에는 ARRL의 공인을 받은 것도 있지만, 아직도 정확한 진상은 확인하기 어렵다.

  최근에도 미국과 북한의 관계개선 움직임을 타고 이 금단의 지역에 들어가 보려는 시도가 있었다. "데일리 DX"라는 뉴스레터에 의하면, 지난 10월 하순 미국의 매들린 올브라이트국무장관이 북한을 방문했을 때, 미국인이 중심이 된 일단의 햄이 평양에 가서 아마추어무선을 운영하려는 계획이 있었다고 한다. 이들은 북한당국의 일차적인 허가를 받고, 서울에 모이기까지 했으나, 마지막 순간에 거절당했다는 것이다. 이들은 2001년 1월 7일에 다시 방문할 수 있다는 통보를 받았다고 이 뉴스레터는 전했지만, 빌 클린턴대통령의 평양방문이 무산되었기 때문에 당분간 실현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 동안 남북한 사이에는, 특히 양측 지도자의 평양회담 이후, 이산가족방문이나, 스포츠 또는 공연단체의 교류 등 화해의 표시로 볼 수 있는 일련의 움직임이 있었다. 그러나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반드시 그렇게만 해석할 수 없는 증거도 많이 볼 수 있다.

  아마추어무선의 교류는 서로 위험부담이 없이 선의와 화해를 증명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방법이다. 새해에는 미국이나 일본 햄이 아니라, 우리들이 먼저 평양에 가서 온 세계의 햄을 불러낼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해 본다.

<HL1DK 이남규, 스포츠조선 편집위원  namlee@chosun.com  KARL지 2001년 02월호 DK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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