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K COLUMN 

 

 

 이라크 회상

                             이남규 (HL1DK, 디지틀조선 편집위원)

 

  이라크가 또 전쟁에 휘말렸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시점에서는 예상했던 단기결전보다는 미영연합군이 의외로 강력한 이라크군의 저항으로 고전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어쨌든 전쟁이 일어나면 어느 쪽으로 결론이 나든 전투원은 물론, 무고한 사람들도 많이 희생되게 마련이다. 이번 전쟁에서는 정밀무기가 대량으로 도입되고 있다지만, 미군의 표현으로는 “부차적(collateral)” 피해, 다시 말해서 민간인의 피해는 피할 수 없다. 6-25라는 대참사를 겪은 나로서는 더욱 그 무고한 희생자들의 고통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이라크와 나와는 약간의 인연이 있다. 이란-이라크전쟁이 교착상태에 빠졌던 1988년, 나는 취재를 위해 이 나라를 방문했다. 원래 계획은 교전 양쪽을 다 들어가 볼 생각이었지만, 당시 우리나라는 이라크와 외교관계가 없어 입국허가를 얻을 수 없었다. 그래서 이란에 들어가기 위해 바레인에 들렀는데, 여기서 우리 대사관의 도움으로 생각지도 않던 이라크비자를 얻었던 것이다. 그래서 흔히 하는 말로 이라크에 들어간 “한국 최초의 신문기자”가 되었다.

  그 무렵 우리 건설업계는 중동 여러 곳에 진출하고 있었다. 현장마다 우리 건설 노동자들은 밤에도 불을 켜놓고 공사를 하고 있었다. 나는 그 전쟁 중에도 이라크에서 공사를 계속하고 있던 현대건설의 차를 얻어 타고 쿠웨이트에서 지금 미영연합군이 진격하고 있는 그 육로로 바그다드에 들어갔다.

  아라비안타이트에 나옴직한 화려한 사원과 떠들썩한 시장, 헐렁한 바지에 터번을 쓴 사람들이 거기 있었다. 이라크는 이슬람국가이면서도 술이 허용되는 등 상당히 세속화되어 있었고 활기가 있었다. 주말에는 쿠웨이트 사람들이 술을 마시러 왔다. 전쟁의 흔적은 등화관제를 위해 자동차 헤드라이트가 가려져 있는 것뿐이고, 한국전쟁 때와 같은 긴장감은 없었다. 나는 북부의 모술, 바빌론의 유적지,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이란군과 대치하고 있는 남부의 바스라 같은 곳을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 있었다.

  어디를 가나 사담 후세인의 그림이 걸려 있었고, 텔레비전에는 그를 찬양하는 프로그램이 방송되고 있었다. 그는 이라크의 절대자였다. 사람들은 정치에 대해서는 절대로 말을 하려고 하지 않았다. 비밀경찰 조직이 깔려 있어 말 한번 잘못하면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고 했다.  

  세계 2위라는 엄청난 석유매장량을 가지고 있는 이 나라에는 다른 중동 석유생산국과는 달리 문명발상지의 기반이 된 티그리스강과 유프라데스강 등 풍부한 수자원과 그 유역의 비옥한 땅까지 있었다. 사담이 이런 천혜의 자원을 지혜롭게 활용했더라면 이라크는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풍요한 삶을 즐길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랍세계의 맹주가 되려는 야심을 가지고 있던 그는 그 반대의 길을 택했다. 그는 1980년, 회교근본주의혁명으로 혼란에 빠져 있던 이웃 이란에 침공했다. 이 전쟁은 8년간이나 계속되었고, 그 동안 두 나라는 막대한 인명과 재산의 손해를 입었다. 1990년, 사담은 쿠웨이트의 유전을 노리고 침공했다가 미국을 중심으로 한 다국적군의 반격으로 참담한 패배를 당했다.

  이번 전쟁에서는 지난 번 걸프전쟁과는 달리 그 명분을 둘러싸고 서방진영 사이에서도 일찍이 볼 수 없었던 심각한 분열이 생겼다. 그 통에 애꿎은 프렌치프라이와 맥도널드 햄버거까지도 그 상징성 때문에 곤욕을 치렀다. 전쟁이 오래 계속되면 우호를 강조하는 아마추어무선에도 그 영향이 미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아마추어무선도 전쟁의 희생자가 될 수 있다. 미국에서는 대통령이 전쟁이나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면, 비상통신 지원활동을 제외하고는 모든 아마추어무선활동이 자동적으로 중지하도록 되어있었다. 2차대전 때에도 이 규제에 따라 미국에서 아마추어무선이 금지되었다. 이 연방규제는 걸프전 직전에 폐기되었기 때문에 이제는 세계대전이 일어나지 않는 한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연방통신위원회(FCC)는 국가안보를 위해 필요다면 아마추어무선에 할당된 주파수대에 제한을 가할 수 있다. FCC는 국가정보통신청(NTIA)과 협의하여 정부와 비정부 사용자들이 공유하고 있는 주파수대에 필요한 제한을 가할 수 있다. 이 경우에 가장 큰 영향을 받는 것이 아마추어무선의 UHF주파수대다.   

<HL1DK 이남규, 디지틀조선 편집위원  namlee@chosun.com  KARL지 2003년 05월호 DK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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