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K COLUMN 

 

 

 청계천의 회상

                             이남규 (HL1DK, 디지틀조선 편집위원)

 

  사람의 마음은 정말 종잡을 수 없는 것이다. 서울 한복판을 흐르던 청계천이 복개되었을 때, 냄새나고 더럽던 개천이 사라지고, 넓고 시원한 자동차 길이 터졌다고 해서 좋아했던 때가 어제 같은데, 이제는 다시 그것을 뜯어내고 원상대로 복구하겠다는 것이다. 그 동안 이 지역의 혼잡한 교통과 매연 및 소음에 시달렸던 사람은 서울시청이 곳곳에 붙여놓은 조감도를 보고 파리의 세느강변을 상상했을 것이고, 그래서 많은 돈이 들고 엄청난 불편이 수반될 이 복구계획을 찬성하고 있을 것이다. 어쨌든 그 것은 그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의 특권이므로, 몇 십 년 뒤 다시 복개하는 일이 없기를 바랄뿐이다.

  청계천, 특히 종로와 을지로에 걸쳐 있는 그 상가지역에는 고서적, 음반 및 테이프 가게, 기계와 전기 및 전자제품을 다루는 상점은 그 동안 알게 모르게 우리나라 경제와 문화에 중요한 공헌을 해왔다. 그 중에도 장사동 일대의 전자제품 및 부품 상점은 우리 햄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

  내가 중학교 시절 래디오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그것이 아마추어무선으로 발전한 것도 바로 이 청계천 덕분이었다. 그 무렵 종로 3가에서 4가까지 이르는 청계천 양쪽에는 전자부품을 파는 고물상이 가득 차 있었다. 신품은 별로 없고 주로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무전기 부품들이었다. 대부분이 낡고 망가진 것들이었지만, 이런 물건은 보기만 해도 무전기에 대한 막연한 동경심을 키우는 데 충분했다.

  시작은 요즘은 볼 수 없게 된 광석래디오였다. 동조코일에다 아연광 조각을 잘 연결하면 신기하게도 레디오방송이 들렸다. 그 다음 단계는 진공관식 래디오. 그 무렵 이 곳에서는 미군용 워키토키에 사용되고 있던 손가락만한 미니쳐 진공관을 값싸게 구입할 수 있었다. 나는 이 진공관을 두개를 사용해서 알미늄 도시락통 안에 휴대식 래디오를 만들었다. 이 레디오로 당시 최대의 관심사였던 정부통령 선거 개표상황을 교실에서 실황중계할 수 있었다. 이 휴대식 래디오는 그 후 등장한 더 작고 납작한 서브미니쳐 진공관을 사용해서 더욱 작아졌다. 그 때는 이어폰이 없었기 때문에, 전화 수화기에다 가느다란 고무튜브를 연결해서 만들었다.

  대학교 시절, 나는 청계천에서 BC-779란 미군용 수신기를 발견했다. 기계식으로 된 동조장치밖에 붙어있지 않은 폐품이었다. 민간용으로는 수퍼프로란 이름으로 알려진 미국 해머랜드사의 이 수신기는 혼자서 들기 힘들 정도의 쇳덩어리였지만, 햄들에게는 꿈과 같은 존재였다. 부품을 모아서 이 수신기를 복구하는 데는 1년 이상 걸렸다. 그리고 그 후 나는 이 수신기와, 역시 청계천에서 모아 만든 AM송신기로 개국을 했다. 초기의 우리나라 햄들은 거의 모두 이런 식으로 이 곳에서 구한 미군용 통신장비를 개조하여 사용하고 있었다.

  SSB가 등장하자 우리 햄들은 여기서 모은 부품으로 송수신기를 자작했다. 이 곳에서는 미군용 SSB장비에서 나온 핵심부품인 455KHz 메커니컬 필터를 쉽게 구할 수 있었다. 당시 일본 햄들은 값비싼 이 필터는 엄두도 내지 못하고, 크리스털 필터를 사용했다. 그래서 우리 햄들은 한동안 SSB분야에서 첨단을 달릴 수 있었다. 얼마 전 이곳에 있는 이동준(HL1CQ) OM의 가게에 들렀다가 진열장에 이 메커니컬 필터가 있는 것을 보고 한 동안 감개에 빠진 일이 있다.  

  우리뿐만 아니라 일본의 햄친구들도 이곳을 많이 방문했다. 일본의 전자산업이 일어나기 시작하고, 반도체를 사용한 새로운 장비들이 나와 우리들이 정신을 빼앗기고 있을 때 그들은 이 곳에서 낡은 미군용 장비를 수집하고 있었다. 그 때 생각이 있었더라면, 당시 세계 최고의 수준에 있었던 미군통신장비를 많이 수집할 수 있었을 것이다.    

  청계천을 복구한다고 해도, 예전의 바로 그 모습으로 돌아갈 수는 없을 것이다. 장사동에 빽빽하게 들어섰던 그런 가게는 절대로 재현될 수 없을 것이다. 청계천에 관한 책도 나오고, 텔레비전에서는 옛 일을 회상하는 특집도 내고 있다. 우리들도 어떤 형식이로든지 이곳에 관한 기록을 남길 수 있었으면 한다. 청계천은 우리나라 햄의 요람이기 때문이다.

 

<HL1DK 이남규, 디지틀조선 편집위원  namlee@chosun.com  KARL지 2003년 08월호 DK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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