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M 탐방 인터뷰 - HL1XP 전성태 OM

 [취재 : 인터뷰 및 자료 정리 DS2CYI 권대근 / 사진 촬영 DS2CYK 이혁재] <KARL 2003년 07월호>

 

 

 

 

아마추어무선을 취미로 여기는 동호인들의 목표 또는 희망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그 중 하나, 전세계에 현존하는 모든 엔티티와 교신에 성공하고자하는 꿈을 실현시키는 것은 어떨까? 이러한 꿈을 실제로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실현을 시킨 아마추어무선사가 탄생하여 화제가 되고 있다.

 그 주인공인 현 한국DX클럽 회장이신 HL1XP 전성태 OM을 지난 6월 14일 편집위원들이 만나보았다. 서울시 강남구 논현동에 위치한 HL1XP 전성태 OM의 사무실을 방문한 편집위원들은 반갑게 맞아 주시는 전 OM의 안내로 무선실과 안테나 시설을 우선 둘러 보았다.

과연 아마추어 무선 장비 및 시설들에서 전세계에 현존하는 모든 엔티티와의 교신에 성공하기까지의 전 OM의 열정과 노력의 손 때가 가득 묻어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무선실의 한 쪽 벽면에 자랑스럽게 걸려 있는 각종 어워드와 컨테스트 입상증 중에 이번에 ARRL로부터 수여된 #1 아너롤(#1 Honor Roll) 상패가 눈에 띄였다.

 

 최근 미국 ARRL로부터 한국 최초로 #1 아너롤 인정을 받으신 것에
대한 축하의 말씀을 드립니다. 우선 소감을 말씀해 주십시오.

 

#1 아너롤은 현존하는 모든 엔티티와 전부 교신을 하여 카드를 수신한 자에 한하여 미국 ARRL에서 발행하는 DXCC 어워드의 한 종류입니다. DXer라면 누구나 갖고 싶어하는 꿈의 어워드이지요. 한국 최초로 #1 아너롤을 받게된 것이 무척 기쁩니다만, 워낙 쟁쟁한 선배님들이 많이 계신데도 불구하고 제가 먼저 받게되어 송구스럽습니다.

선배님들께서 조금만 더 DX에 관심을 갖고 계셨더라면 훨씬 이전에 #1 아너롤을 받으셨을 것이라 생각이 듭니다. 이 기회를 빌어 오늘날 제가 이 자리에 있기까지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신 선, 후배 여러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먼저 드립니다.

 

 #1 아너롤이 되기까지의 경과를 소개해 주시고,
특히,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무엇인지요?

 

아마추어무선이라는 것은 중학교 1학년때 부터 학생과학이라는 잡지를 구독하면서 어렴풋이 알게 되었습니다만 그 당시만 해도 아마추어무선사가 되겠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1975년부터 고향인 충남 보령에 있는 전신전화국에 근무하면서 자연스럽게 음향통신을 접하다보니 아마추어무선 생각이 나더라구요. 그래서 KARL에 가입을 하였고 HM3-3386 이라는 SWL번호를 받으면서 HAM 이라는 세계에 빠져들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상용진공관단파수신기에 BFO을 장착하여 CW와 SSB를 수신하였는데 워낙 주파수범위가 좁아서 수신하는데 애로사항이 많았고, 지방이다 보니 아마추어무선통신사 시험을 보기가 쉽지 않더군요.

군에 가서는 단파무선통신장비의 정비를 담당하였는데, 당시로서는 좋은 무전기를 많이 만져보았고, KWM-2A에 들어가는 6146도 그때 처음 보았습니다.

통신정비실에는 40 미터밴드용 다이폴 안테나를 쳐 놓아 통신장비를 다 고치고 나면 테스트로 교신을 해서 성공을 하면 출고를 시키곤 했는데 그때는 전부 일본 콜사인을 사용하여  CW교신을 하였습니다.(이런 사실을 밝혀도 되는지 걱정하시면서 무척 조심스럽게 말씀하셨다. Hi.)

아마추어무선통신사 면허증은 1978년에 취득을 하였지만 군 복무중이라서 개국을 못하였고,  

1980년 5월 16일부터 당시의 개국공신이었던 헨트론 리그에 다이폴안테나를 사용하여 CW와 SSB로 전파를 발사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개국 당시에는 충청남도에 10명이 채 안되는 아마추어무선 동호인이 있었고, 충청북도에는 운용하는 분이 아무도 없었으니 지금은 양적으로 많이 늘어났죠.

그 후 인천과 부천에서 생활을 하면서도 HAM을 즐겼으나 본격적인 DX운용은 서울에 와서 2 엘레멘트 쿼드 안테나를 세운 1987년 4월부터였습니다.

그전 때까지만 해도 자작 15 미터밴드용 2 엘레멘트 HB9CV 와 4 밴드용 버티칼 안테나, 40 미터밴드용 다이폴 안테나를 사용하여 베어풋(Bare foot) 상태로만 DX 교신을 하였습니다.

쿼드 안테나를 세우자 마자 그때부터 정말 물 만난 고기였습니다. 제가 생각을 해봐도 너무 한다 라고 생각이 들 정도 였었으니까요.

밤늦게 까지 교신을 하는 죄로 새벽에는 교신을 못하고 늦은 아침에 일어나자 마자 북미 쪽과 1시간에 100여국씩 교신을 하고 나서야 아침밥을 먹었으며, 오후에는 유럽과의 교신을 하고 야밤에는 아프리카의 진귀한 국들이 유러비안네트에 가끔씩 출현을 하므로 새벽 두세시까지 기다려 보는 것이 일상 생활이었습니다.

그때 HL1CG, 故 HL1EJ, HL1IE, HL1SX OM등과 온에어에서 자주 접촉을 하다가 요즘말로 이른바 "오프라인"에서 만나서 자연스럽게 한국DX클럽(KDXC)이 결성이 된 것이죠.  

특히 1988년도는 저에게 많은 기록과 추억을 남게 한 해입니다.

한국아마추어무선 기네스에도 몇 가지 올라가 있는데 특히 1년 최다교신 실적 23,398국 달성을 이 때 이룬 것이며, 1시간 최다교신, 1일 최다교신, 1개월 최다교신 등도 전부 1988년에 이루어 진 것이죠. 나름데로는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기록들이지요.

자주 만나는 국은 로그에 기록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러한 국까지 기록을 해 놓았다면 좀 더 많았겠죠.

그 후에도 열심히 운용을 하였지만 1992년을 고비로 야간에는 일부러 무선실에 오지 않는 한  교신을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서 교신횟수가 점점 줄어들었습니다.

1987년에는 7,082국, 1988년에는 23,398국, 1989년에는 6,959국에 251 엔티티,  1990년에는 6,300국에 261 엔티티,  1991년에는 6,047국, 1992년에는 3,454국과 교신을 하였습니다.

가장 저조했던 해는 1997년으로서 123국과 교신을 하였지만 2000년 들어 일년에 평균 2,000여국과 교신을 하여 개국 때부터 현재까지 7만여국과 교신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교신하는 재미만 즐겼지 QSL카드 받는 노력은 별로 하질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한국DX클럽의 동료들과 서서히 선의의 순위경쟁이 일어나면서 그동안 받은 QSL카드들을 꺼내놓고 정리를 하기 시작한 것은 1992년부터였습니다.

지금은 운용을 안하고 있는 VU4는 1987년에, VU7은 1989년에 교신을 하였습니다.

좀처럼 나오지 않는 CYØ는 1989년에, 3YØ/B도 1989년에, 1AØKM은 1990년에 교신을 하였습니다.

1995년부터 P5가 DXCC에 정식으로 인정이 되면서 #1 아너롤의 꿈은 점점 멀어져만 갔습니다.

P5에서의 운용도 이루어질지 장담을 못하고 설령 운용을 한다고 해도 이곳을 받아 줄지 의문이었기 때문입니다.

1997년에는 P5를 제외한 TN과 BS7과 교신을 하였으며, 최후까지 악연이었던 PJ7을 12월에 교신을 하고서야 오로지 P5만을 기다렸습니다.

P5만 아니었으면 1998년에 #1 아너롤이 되었을 것입니다.

P5 때문에 무려 5년을 기다렸습니다.

이것은 저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1995년 5월 14일 P5/OH2AM, 1999년 4월 21일 P51BH와 교신한 280여국을 제외한 수백 명이 저와 같은 케이스였을 것입니다.

2002년 4월 12일 아침 8시 11분 "HL1XP UR 59 QSL" 이라는 에드(Ed)의 목소리가 스피커에서 울려 나옴으로서 현존하는 모든 엔티티와의 교신은 일단락 되었던 것입니다.

그때까지 국내에서는 수십 명이 P5/4L4FN과 교신을 하였지만 저한테는 잘 들리지 않던 것이 그 날은 선명하게 들리면서 P5와 교신이 이루어졌고, #1 아너롤 상패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 중 하나는 1990년 2월 14일에 교신한 LU6ELF/D2 입니다.

지금은 앙골라에서 나오는 국이 많지만 그 당시에는 군사정권이 들어서면서 1979년 7월이 후에는 전혀 허가를 내주지 않은 아주 진귀한 곳이었지만, 딱 한 국이 허가를 받아서 운용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아르헨티나의 해군장교인 LU6ELF로서 군사고문단 자격으로 앙골라에 가서 HAM 허가를 득하였지만, 그는 DXer가 아니고 극히 제한적으로 운용을 하고 있어서 많은 DXer가 LU6ELF/D2와 교신을 하려고 무척이나 애를 태우던 시절입니다.

그 날은 제 아내 HL1IXP가 15 미터밴드에서 SSB로 CQ를 내었습니다. 늦은 겨울 저녁이라서 안테나는 유럽방향으로 두고 CQ를 한번 내자마자 응답을 해 오는 국이 있었는데 그리 약하지도 않은 신호였지만 콜사인이 분명치 않았습니다.

다시 콜사인을 확인하자 LU6ELF/D2로 수신을 하였고 안테나를 재빨리 앙골라 방향인 서쪽으로 향하자 또렷한 신호로 들어오는 것이었습니다.

옆에서 듣고 있는 저는 가슴이 뛰기 시작했습니다.

뉴스로만 접했던, 그토록 고대하던 앙골라 국이 바로 앞에 있는데 교신상대는 제가 아닌 HL1IXP였던 것이었습니다.

저는 아내의 옆구리를 쿡 찌르며 빨리 끝내고 나 좀 바꿔달라고 했죠.

그때까지도 HL1IXP는 LU6ELF/D2라는 존재를 몰랐던 것입니다.

서너번 주고 받은 후 HL1IXP가 남편을 바꿔 줄 테니 교신 좀 해달라고 하니 저쪽에서 OK 하더군요.

그때 덜덜 떨면서 교신을 하더라고 아내가 놀려대었지만 아내 덕에 어려운 국과 교신을 하였으므로 놀림을 감수해야 했었습니다. (Hi. Hi...)

 

 최근 미국 ARRL의 DXCC 카드 체커로 지명되신 것과 관련하여 소감을 들려 주시고, 앞으로의 활동 계획에 대하여도 말씀하여 주시지요.

 

 ARRL에서 근래 들어 각 나라에 DXCC 카드 체커를 임명을 한 것은 작년부터였습니다.

물론 이전에도 제법 큰 DX 컨벤션에는 카드 체커가 파견 나와서 체크를 해 준 적이 있었지만, 다른나라에 카드체커를 임명하는 것은 아무 때나 항시 카드 체크를 가능케 한 제도의 실행이죠.  

지난 2000년과 2002년에 개최되었던 한국DX큰잔치 때 미국의 K3ZO OM께서 와서 필드체크를 해주었는데 우리나라에서도 자국민이 필드체커를 해보는 것이 어떠냐는 의견에 2000년부터 추진을 했었습니다.

그러다가 올해 연맹에서 추천을 받아 시험을 본 후 ARRL에서 우리나라의 카드 체커로 저를  지명을 해 주었는데 현재 미국 외에 카드 체커가 있는 나라는 13개 나라이더군요.

DXCC 카드 체커가 된 것에 무척 기쁘게 생각하며 한편으로 책임감이라는 짐이 무겁게 느껴집니다.

QSL 카드 체크는 ARRL에서 처리하는 것과 같이 원칙대로만 할 것입니다.

카드체크에 관한 자세한 사항은 한국DX클럽 웹사이트 에서 볼 수 있으며, <KARL>지에도 안내의 글을 게재하려고 준비중입니다.

 

 우리나라 HAM계에도 DX통신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동호인들이 점점
증가 추세에 있습니다.
DX통신 동호인들에게 조언 한 말씀을 부탁드립니다.

 어느 목표를 두고 열심히 노력하는 자에게는 성과를 거둘 확률이 그 만큼 많아집니다.

지금은 인터넷의 발달로 인하여 전 세계에서 운용하는 DX국을 실시간 볼 수가 있지만 불과 십년전만 해도 꿈에서나 상상하곤 하던 그런 정보였습니다.

전에는  저녁밥만 먹었다 하면 무전기 앞에 앉아 다이얼을 천천히 위아래로 돌려가며 DX국을 찾았습니다.

일본 국의 파일업이 일어나면 DX국의 송신주파수를 찾으려고 얼마나 헤매었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떻습니까?

아프리카에 있는 진귀한 국과도 인터넷으로 채팅을 하면서 HF교신을 할 수 있는 시대이지요. 그래서 인지는 몰라도 DX통신을 또 어렵지 않게 생각하거나 쉽게 해보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DX통신은 한해 두해로 결말이 나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이십년 이상을 해온 저도 아직 꼭대기에 올라 앉아 있다는 생각은 안 해봤습니다.

아직도 할 것이 많이 있거든요.

가끔씩 "DX통신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좋으냐?" 라는 전화나 이메일을 받아 봅니다.

저는 "잘 하면 됩니다" 라고 말씀을 드리면 상대방은 그런 무성의한 말을 어떻게 쉽게 할 수 있으며, 좀 안다고 위세를 떠는 거냐 라고 역정들을 내십니다.

"저쪽에서 이러는데 그건 무슨 뜻이요?" 라고 물어 본다면 대답을 해 줄 수는 있어도 "DX통신을 어떻게 해야 잘 할 수가 있습니까?" 라는 질문에는 죄송하지만 답을 드릴 수 없습니다. 직접 경험을 해 보십시오. 아마추어무선 세계이건 사회생활이건 간에 경험처럼 좋은 선배는 없을 것입니다. 때로는 실패도 있겠지만 노력을 한 후 느끼는 성취감은 다른사람의 온갖 칭찬보다 한수위의 자기 자신의 기쁨으로 나타 날 것입니다. 동호인 여러분도 열심히 노력을 하여 갚진 결실이 이루어지길 빕니다.

 

그리고 DX계에 무조건 빠져들지 마시고 가정이라는 울타리에서 평화와 행복의 공존이 중요합니다.

DX국을 놓쳤다면 5년, 10년 후에는 대부분 다시 나오게 되어 있지만 가정을 놓치면 다시 돌아 올 확률은 희박 할 것입니다.

가정을 DX통신보다 중요시 생각한다면 DX국도 여러분을 기다릴 것입니다.

 

 DX통신에 관심을 가지게 된 동기 및 컨테스트, IOTA 등에 대한 관심과 열정의 배경은 무엇인지요?

 DX통신에 빠져든 것은 제가 CW를 할 수가 있었고, 말재주가 없었고, 영어를 잘 못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CW를 계속 접하다 보니 파일업 처리에도 자신감이 생겨서 자연스럽게 SSB 보다 자주 운용을 하게 되어 현재는 60% 이상이 CW 교신으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말재주가 없는 것은 저를 몇 번 대해본 분들은 다 아실 겁니다. 온에어 라고 예외가 있겠습니까? 거기다가 충청도 태생의 느린 말투까지 겹쳐서 답답함을 호소하는 분이 있을 지경이었으니까요.(Hi. Hi...)

그래서 SSB보다는 CW를 많이 접하게 되었고, CW를 하다보니 국내국 보다는 외국 국을 많이 만나게 되었습니다.

외국 국과 일반적인 교신은 그런 대로 처리를 하지만 조금만 깊게 물어보면 대답을 못하는 실력이라서 간단한 영어로도 교신이 되는 DX통신에 자신도 모르게 빠져든 것이죠.

 

지금도 그렇지만 질보다는 양을 중시하였습니다.

좋은 것만 골라서 교신을 하는 스타일이 아니라 서비스 위주로 교신을 하여 "1st HL" 이라는 QSL 카드를 많이 받았죠.

양을 위주로 하다보니 컨테스트에 참여률이 많아져서 이제는 컨테스트 기록도 몇 개 보유하고 있습니다.

1991년 CQ WW WPX CW 컨테스트에는 D73CW로 운용하여 2,039국과 교신, 250만점을 기록하였으며,

1996년에 JAPAN INTERNATIONAL DX 컨테스트에는 DSØDX로 운용하여 월드탑(WORLD TOP)을 차지하였습니다.

그때의 기록은 지금까지 갱신을 한 국이 없으며,  더군다나 현재는 규정변경으로 인하여 이 기록은 영구히 남게 되었습니다.

2001년 CQ WW CW 컨테스트에는 1,545국과 교신, 131만점을 얻어 그동안 HL9이 세워놓은 기록을 갱신하였고, 2002년 CQ WW CW 컨테스트에는 40 미터밴드 부문에 참가를 하여 이 또한 기록이 조만간 올라올 것입니다.

2002년에 참가한 IARU HF Championship에도 Zone 44의 기록을 갱신하였습니다.

이러한 컨테스트 기록들은 앞으로도 계속 참여를 하여 많은 기록들을 갱신할 계획입니다.  

 

IOTA(Island On The Air)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지요. DX통신을 처음 접할 시절에 외국 국과 교신을 하다보면 그들이 한국에 있는 섬들에 관하여 물어오는데 도통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제주도에 무슨 번호가 있다라고 만 알았지 그것이 IOTA번호라는 것은 그 후에 알았지요.

그 후 1991년 8월에 덕적도에서 HLØHQ/2 의 운용자로 참여를 하여 AS-Ø9Ø 번호를 부여 받은 것을 필두로 1993년 7월 경기도 제부도에서 HL93A/2로 한국DX클럽에서 운용하여 AS-1Ø5 번호를 부여 받았고, 1995년에는 독도에서 DSØDX/5의 운용자로 참여를 함으로서 본격적으로 IOTA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제가 소속되어 있는 한국DX클럽에서 운용하여 IOTA 번호를 처음 받은 곳은 경기도 AS-1Ø5, 백령도 AS-122, 전라북도 AS-148 등이 있으며, 한국DX클럽은 7월 마지막 주에 개최되는 IOTA 컨테스트에는 매년 참가를 하고 있습니다.

 

1991년 HLØHQ/2 덕적도에서의 운용은 어려움이 상당히 많았습니다.

당시에는 경기 도서지역(옹진군)은 아마추어무선운용이 금지되어 있었는데 중앙정보부에 까지 문서를 돌려서 허가를 득한후 카톨릭아마추어무선사회와 함께 한국DX클럽에서 운용을 하였습니다.

덕적도에 가서 바닷물 한번 손에 적셔 보지도 못하고 교신만 하다가 돌아왔는데 그 후 섬에 가서 많은 운용이 있었지만 대부분 교신만 하다가 오곤 했습니다.

불모지나 다름없던 IOTA 어워드를 1991년 11월에 IOTA 어워드 1807호로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받았으며, 현재는 총 10국이 IOTA 어워드를 가지고 있습니다.

 

 현재 보유 장비 및 리그 등에 대하여 소개하여 주십시오.

 십여년동안 IC-765를 사용해 오다가 작년에 고장이 나서 현재는 6 미터밴드용으로 사용해오던 IC-706을 메인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제 몸에 비해 어울리지 않게 조그마한 리그지만 사용을 하다보니 조그마한 트랜시버에서도 힘(?)이 나오더라구요.

그래서 큰 불편 없이 사용을 하는데 원래 장비에 대해서는 욕심이 없는 편입니다.

워낙 QTH가 도심 속에 있어서 노이즈가 상당히 많고 40 미터밴드용 다이폴도 제대로 칠 수 없는 공간이라서 이리저리 구부려서 안테나를 치면서 운용을 하고 있습니다.

안테나는 4층짜리 업무용빌딩 옥상에 160, 80 미터밴드용은 역브이형 안테나, 40 미터밴드용은 2 엘레멘트 야기를, 다른 밴드는 6 엘레멘트 3 밴드용 야기를 사용하는데 두개 모두 KDXC 것입니다.

WARC 밴드는 버티칼 안테나를 사용하고 있는데 너무 초라하여, WARC 밴드는 DX국 출현 때만 가끔씩 운용을 합니다.   

더군다나 주위에 높은 건물들이 자꾸 올라가서 더욱 힘이 들고 있습니다.

이번에 바로 옆에 54미터 높이의 오피스텔이 건축되고 있는 중인데 이 건물이 다 올라가면 북미 쪽과 중미 쪽으로 완전히 절벽처럼 가려지며, 건너편에는 8층 짜리 건물이 공사 중이어서 유럽과 아프리카방향으로도 완전히 고립될 지경이라서 걱정이 됩니다.

 

 마지막으로 전 OM께서 생각하시는 HAM의 매력과 앞으로의
아마추어무선 관련 계획 등에 대하여 말씀해 주시지요.

 HAM의 매력이란? 아마추어무선사들이 보는 잡지에 HAM에 대한 매력을 말한다는 것이 쑥스럽네요.  저는 그냥 좋아서 이십 몇년동안 HAM 세계에서 헤어나질 못 하고 있고요, 아마 죽을 때까지도 못 빠져 나올 것이라는 것을 저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저는 손가락이 움직일 수 있는 때까지 DX통신은 계속 할 것이며 특히 컨테스트 기록 갱신에는 더욱 더 분발을 하여 절대로 깨어지지 않는 기록을 보유하고 싶은 것이 꿈입니다.

앞으로의 계획은 현재도 우리나라 DXer를 위해서 한국DX클럽 웹사이트  (http://www.kdxc.net/ )에 DX정보를 수시로 올리고 있지만 좀더 알찬 내용의 DX통신과

컨테스트에 관한 내용들을 좀 더 보강을 하면서 지속적으로 올려놓겠으며, 미력하나마 우리나라의 DX발전에 힘이 닿는데 까지 기여를 하고자 합니다.

마지막으로 저도 이번 기회를 빌어 "59 QSL?" 과 같은 교신 형태에 대하여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계신 분들에게 한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런 형태의 교신이 교신이냐고 하시는 분도 계시던데 수십, 수백 국씩 교신을 하려고 기다리는데 이름, QTH, 장비소개, 날씨, QSL카드 등등을 교신하는 상대방한테 일일이 계속 반복을 한다면 교신을 하려고 기다리는 국들이 얼마나 짜증나고 지루하겠습니까?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묘미를 살려서 운용을 하는 것이 DXer인 것이죠.

 

 

장시간에 걸친 인터뷰를 끝내고 돌아오는 편집위원의 발걸음이 한층 가벼워졌다. 우리나라 아마추어무선 역사에도 점차 하나하나 큰 성과물들이 차곡 차곡 쌓이며, 진정한 아마추어무선세계의 선진국으로 자리매김해 나아가고 있음이 큰 기쁨으로 다가왔다. 우리나라 아마추어무선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HL1XP 전성태 OM께서 이룬 큰 결실에 대하여 다시한번 축하의 인사를 전한다. 아울러, 제 2, 제 3의 #1 아너롤의 탄생을 기다려 본다.

[취재 : 인터뷰 및 자료 정리 DS2CYI 권대근 / 사진 촬영 DS2CYK 이혁재] <KARL 2003년 0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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