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30AV   잊을 수 없는 아름다운 사람들 그리고 그곳 키리바시
(2006년 6월 09일 - 6월 14일 운용)

             6K2AVL 윤용주  

H44A - Solomon Islands, OC - 047  (25 May 06 ~ 01 Jun 06)
C21AV -  Nauru,  OC - 031  (03 Jun 06 ~ 08 Jun 06)
T30AV -  Western Kiribati,  OC - 017  (09 Jun 06 ~ 14 Jun 06)
3D2AV - Fiji, OC-016  (16 Jun 06 ~ 23 Jun 06) 

 

 

 

 제가 올린 글과 사진이 KDXC의 DX운용란에 기록이 되어지다니,  기쁘기 그지 없습니다.
그래서 조금 부담이 되기도 하지만,  여행을 할 때 처럼.. 그 기분 그대로 적어 볼까 합니다.
읽어 주시는 동호인 여러분들께 감사드리며,  오늘은 이번 여행의 하일라이트 키리바시를 소개할까 합니다.



나우루에서의 C21AV 운용을 마치자, 저는 실로 많이 지쳤습니다.
나우루를 떠나 다음 목적지 키리바시로 떠나는 아침이 되자, 다시 기운이 솟아났습니다.
정말 가보고 싶었던 곳, 키리바시..  

적도와 날짜 변경선이 모두 교차하는 나라...  키리바시는 태평양의 중앙에 위치한 관계로 숱하게 많은 고난을 이겨내야 했습니다.
때로는 남쪽의 피지, 통가에서   서쪽으로는 파푸아 뉴기니아에서 그리고 동쪽에서는 유럽인들이 찾아와 그들을 괴롭혔었고..  
끝내 북쪽에서는 일본이 찾아와 점령하고 미국과 한판 전쟁을 벌인 곳..  우리민족 1,200 여명이 끌려가 죽어야 했던 곳, 키리바시...  

저는 그곳을 방문하기전 그러한 역사적 경험을 가진 그 나라를 상상해 보곤 했습니다.  머리에 떠오르는 이미지는
그리 좋지는 않았습니다만...   하여튼 저는 그곳 키리바시를 여행하게 되었습니다.

저를 받아 줄런지 모르겠습니다만,   T30AV의 운용도 하고싶고..  제가 추구하는 개인적인 목적도 있고 해서 가고 싶었습니다.
아니 가야만 했습니다.   좋은 곳만 골라 다닌다면 어떻게 태평양을 이해 할 수 있으랴...  닥치는 대로 가보자..  했던 것이지요..

키리바시는 DXer 들에게 있어 태평양의 엔티티 노다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것입니다.
T30 - West Kiribati , T31 - Central Kiribati , T32 - East Kiribati ,  T33 - Banaba Is.  등 4개의 엔티티를 가지고 있으니 말입니다.

키리바시의 경제해역은 태평양에서 가장 넓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호주의 북동쪽으로부터 하와이 남부까지 펼쳐진...
자 그럼,  동에서 서로 태평양에 뿌려진 보석과도 같은 키리바시를 만나보시겠습니다.



이 지도는 키리바시의 행정수도가 있는 Gilbert Is이며 Tarawa Atoll 이라고 불리어지는 곳입니다.  
이 섬은 서남쪽으로 T33, Banaba Is를 끼고 동쪽으로 이어지는 키리바시 전체 영토의 가장자리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지도의 동남쪽 가장자리에 위치한 Bonriki 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하게되는데, 착륙직전 비행기가 선회할때 내려다 보이는 절경은
비행기에 탑승한 모든이들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합니다.



산호초로 이루어진 섬들이 타원형으로 끊어질 듯 이어지며,  그 내부에 거대한 코발트빛 산호의 바다가 바닥까지 들여다 보입니다.  
섬의 바깥쪽에는 드넓은 태평양에서 달려온 파도들이 하얗게 부서지고 있엇습니다.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그 환상적인 절경 하나만으로 저는 키리바시를 찾은 보람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상상할 수 없었던 그 아름다움에 비행기에서 뛰어 내리고 싶은 충동까지 제 마음에 생겼습니다.


푸르고 푸른 Tarawa Lagoon...  저는 이 멋진 광경들을 저 혼자 보자니,  어머니 생각이 나더군요..
정말 좋아하실텐데...  꼭 모시고 다시 와야지..  하는 다짐도 했답니다.


Bonriki 국제공항에 착륙한 비행기는 엔진을 정지하고 하루를 쉬어갑니다.  
키리바시는 한국국민에게 비자를 면제하고 있으나,  한국인들이 거의 찾지 않는 관계로 공항의 입국심사관들은
비자협정에 관한 자료를 찾아보고, 역시나 저에게 남한이냐, 북한이냐 하는 질문을 한뒤 여권에 스템프를 찍어 주었습니다.

세관에서 고가의 제 무전기와 안테나는 역시 문제였습니다.  온갖 무전기가 생활 필수품인 남태평양의 섬 나라들을 여행할땐...
본인이 소지한 무전기를 입국하고자 하는 나라에서 판매할 목적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시키는 것이 관건입니다.  


공항을 빠져나온 저는 15센트(호주달러)를 주고 미니버스를 탓습니다.  공항에서 40분 거리에 있는 키리바시의 수도 Betio에 가서
미리 신청해둔 제가 운용할 T30AV의 면허장을 받기 위함이었습니다.

점잖은 표정이 이분이 T30, T31, T32, T33의 면허와  키리바시의 모든 전파관련 업무를 총괄하며, 관련서류의 최종 결재권자입니다.
인터넷에 올려진 정보중 키리바시의 허가비용은 무료라고 하는 정보가 있는데,  실제로는 200$ (호주달러)입니다.
나우루 역시 20$로 알고 갔는데  실제로는 100$입니다.   20$는 10년 이야기 랍니다.  

태평양의 거의 모든 정보를 저는 작년의 H40HL, 테모투, 산타크루즈 제도에서의  운용 이후 믿지 않았던 터라,  
별 다른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ㅎㅎ



면허를 받아 다시 공항 인근,  Otintaai 호텔로 찾아가  한숨을 돌리며 어디에 어떻게 안테나를 칠까...  궁리를 했습니다.
나우루에 머물때  저는 제가 숙박한 O-DEN AIWA호텔의 여자 지배인과 사귀었고,  
그녀는 무전기와 안테나를 들고 여행하는 저를위해 키리바시 Otintaai 호텔의 지배인이자 친구인 사람에게 저를 소개하는
소개장을 한장 써주었습니다.  
(키리바시 방문 경험이 많은 50대의 그녀는 저에게 키리바시에서 생활하는데 필요한 거의 모든 정보를
알려 주었고,  그래서 저는 공항에 내려 면허를 찾고, 호텔까지 돌아오는 일을 누구에게도 물어보지 않고 해결 할 수 있었습니다. )

저는 키리바시에서 그 소개장을 들고 Otintaai 호텔의 여자 지배인을 찾았고,  확실히 다른 대접을 받았습니다.
환하고 다정스런 미소를 지으며.  조용한 목소리로  어떤 일이라도 도움이 필요하면 자신에게 말하라고 하더군요..


그러나 저는 도저히 안테나를 설치할 장소를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 호텔의 지붕은 A타입이었고,  그 곳엘 올라가는 계단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호텔 주위의 정원이나 바닷가등은  건물이나 나무들로 가리워져  교신을 위한 안테나자리로 영 아니었습니다.
안테나 칠 자리를 찾으러 돌아다니다가  보니,  시간이 꽤나 지났습니다.  배도 고프고 해서..  식당으로 가서 민족공연을 보며
와인을 곁들인 근사한 양식으로 식사를 했습니다.  

멋진 민속공연은 한동안 안테나 생각을 잊게 해주었습니다.  그러나.. 민속공연을 감상하고 있노라니...
역시  저는 햄이었던 것입니다.  그들이 사용하는 앰프가 자꾸 눈에 들어왔습니다.  
만약에 매일밤마다 사용하는 저 앰프에 내 전파가 실려  나간다면,  CQ고 뭐고 끝장일텐데...  

민속공연장 바로 옆의 나이트 클럽 앰프 역시 눈에 거슬렸습니다.  
몇일간의 운용을 위해 무선국을 설치하는 것이기에  Amp, Television,  Telephone 등의 기기에 Interference가 발생한다면
실로 난감한 일입니다. 주위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고나서  잘해야 접지나 한 두번 다시 해보겠지만,  
단 시간내에 그런 문제를  100% 개선할 수 있으리란 보장이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예 그런 문제가 생길일이 없는 곳이 최적의 장소인 것은 두말 할 나위가 없을 것입니다.
(실제로 저는 이번 태평양 여행에서의 운용중  나우루와  피지에서  두차례의 TV Interference로 인해 운용을 멈춘 일이 있습니다. )
안테나 칠 공간도 적당치 않고...  각종 Interference도 걱정되고..  저는  실마리가 풀리지 않는 안테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을 해야 했습니다.  


저녁 식사후 저는 안테나를 가설 할 수 있고, 마음놓고 운용할 장소를 물색하기 위해  노트와 볼펜을 들고  방에서 다시 나갔습니다.
저는 우선 호텔 직원으로 보이는 한 남자에게,  키리바시의 다른 호텔은 어디에 있는지 물어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미안하단 말만을 되풀이 하며  어디론가 가버리더군요..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예쁘장한 현지인 아가씨가 선뜻
내게 다가오더니 약도를 그려주며,  가는 방법과 호텔이름도 알려 주었습니다.   저는 그 아가씨에게  그 호텔 지붕이 A타입이냐고
물었더니 그 역시 A타입이고,  키리바시의 거의 모든 건물은 지붕이 A타입 이라고 대답했습니다.  풀리지 않는 QTH 문제...

저는  방으로 가서 침대에 벌렁 누워  무선국 운용을 할 수 없으면 어쩌나...  하고 생각에 잠겼습니다.  
그리고 걱정하고 있는 저를 발견 했습니다.  태평양에서는 걱정하지 않기로 했는데..  또 걱정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  걱정할 필요 없다..  아직 6일이나 남았는데..  어떻게 되겠지...   방에서 이럴것이 아니라  밖에 나가서 바람이나 쐬고오자.. "


저는 캔맥주 하나를 사들고 호텔내부 바닷가의 벤취에 앉아 바닷바람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잠시후
한 남자가 저에게 조심스레 다가오더군요..  그리고 저에게 내미는 한장의 약도..   " 약도.. 이게 뭐지??  아니 이사람은 ??!!"  
저는 그사람의 얼굴을 보고나서야 ,  그 사람이 제가 맨 처음  다른 호텔의 위치를 질문했던 호텔 직원이란것이 기억났습니다.

미안하다며 가버렸던 그의 의도를 100%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복잡한 설명을 영어로 하기에 힘이들어서 저를 위해 약도를
그려서 다시 나타난 것입니다.   한동안 방에 들어가 있던 저를 찾았을테고..  한참뒤 바닷가에 앉아있는 저를 발견하고
다가온 것이죠..   저는 그의 그런 마음이나 친절이 너무 고마웠습니다.   맥주 한캔 하겠냐고 물으니  술은 안마신다고 하여
저는 캔 콜라를 권했습니다.  그는 저에게 저의 이름과 국적을 물었고  방문한 목적이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 저는 이곳에서 안테나를 세우고 무선국을 운용하려고 합니다.  저는 HAM이라는 취미를 가지고 있고, 이름은 윤 입니다."
"오...  당신도 햄이군요..  저는 CB를 하는 사람입니다. 저는 마우리(Mauri)라고 합니다. "

"아..  그러시군요.. 반갑습니다.   저의 호출부호는 6K2AVL 이고 키리바시 허가는 T30AV입니다. "
저는 그가 호텔 직원이라는 걸 떠올리고 몇년전 T33C 팀이 중간 경유로 타라와에 왔을때 혹시 이 호텔을 사용하지 않았을까 하여
"혹시 몇년전에 단체로 왔던 유럽의 햄들..  프랑스인. 영국인, 독일인, 미국인등의 햄들을 기억하시나요? "

"그럼요..  기억하지요..  제가 안테나 세우는것도 도와줬는데요..  "  라고 그는 웃으며 말했습니다.  그리고 잠시 기다리라며
어디론가 갔다가 이내 다시 돌아와서 저에게 QSL카드를 한장 보여주었습니다.  

그것들은 정말 낮익은 QSL들로서 저도 가지고 있는 것들이었습니다.  DK2ZF의 QSL과  DK2ZF가 운용한 V63ZF의 QSL이었습니다.

몇년전 T33C팀이 Banaba섬에 가기전 배를 기다리며 이곳에 머물때,  팀의 일원이었던 DK2ZF가  안테나 설치를 도와준
마우리에게  감사와 기념의 뜻으로 자신의 QSL을 선물했던 것입니다.  그는 F5CWU도 기억했고..  그들이 재밋고 친절한 사람들
이었다고 했으며, 그들역시 안테나 세울 자리가 없어서 주차장을 잠시 이용했다고 했습니다."

 

저는 T33C팀이 Banaba에서의 운용을 마치고 귀국길에 우리나라에 들렸던일..  우리 KDXC에서 그들을 위해 베푼 친절들과
그들을 위한 환영의 시간들을 가졌던 일에 대해서 소개 했습니다.   우리 둘은 왠지 세상이 정말 좁다고 느꼈고 친구가 되었습니다.
그는 저에게 T33C팀 처럼 주차장 근처에 안테나를 세우라고 말했지만,   저의 동축 케이블은 어림도 없이 짧았습니다.
저는 그를 제방으로 초대했고, 우리는 밤이 깊도록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무전기 이야기, 키리바시 이야기... 한국과 북한의 차이점, 월드컵이야기..  다시 안테나 이야기...
토요일 새벽 2시가 다 되어갈 무렵,  마우리는 저에게 자기의 집에 방하나가 남는데,  괜찮으면 자기네 집으로 가자고 했습니다.

저는 그의 집이 어디에 있는지는 묻지 않고  전파가 잘 들어오냐고 물었습니다.  
그는 엄지 손가락을 세우며 CB 무전기를 통해  한국, 일본, 중국 그리고 하와이 신호도 들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저는 토요일, 일요일 이틀만 신세지기로 하고 얼굴 두껍게도 그의 집으로 가기로 했습니다.  


밤새워 이야기를 나누고 약 2시간이나 잤을까..  새벽 5시에 방문을 노크하는 소리에 잠이 깼습니다.
마우리가 자신의 근무시간이 끝났으니 집에 가자고 절 깨우러 온 것입니다.  미리 약속한 것이기에 저는 문을 열고
제 짐들을 가지고 나갔습니다.  호텔에서 체크아웃을 하고  마우리의 집으로 가려고 그를 따라가는데... 그는 도로쪽이 아니라
바닷가 쪽으로 저를 안내하더군요..   그리곤 허벅지까지 잠기는 바다엘 들어가 모터보트에 제 짐을 싣기 시작했습니다.  

" 마우리! 배타고 가는거야 ?"
" 우리집 저기 Lagoon 반대쪽이야...  자 가자 "

비행기에서 내려다보고 제가 반하고 감동했던 그 Lagoon을 모터보트로 가로질러 가다니...  저는 제가 어디로 가는지 조차도
모르는 진짜 여행을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그것은 제가 바라던 여행이었습니다.   게다가 안테나까지 세울 수 있다니 !!!  


그가 살고 있는 섬은 호텔이나 공항이 있는 동네와는 전혀 달랐습니다.  집들도 별로 안보이는
깨끗하고 조용한 그런 섬이었습니다.


그의 부인은 그 섬의 초등학교 선생님입니다.  마우리보다 4살이 많고  키리바시의 사람들은 연상의 여자와 결혼합니다.
그것은 그곳의 문화입니다.
마우리의 부인과 그의 3남 3녀의 자녀들은 저를 밝고 조용하게 환영해 주었습니다.


마우리의 부인과 그녀가 근무하는 초등학교의 동료들입니다.  저 건물은 교무실이구요..
마우리의 집은 저 교무실에서 약 10m 떨어져 있으며, 정부에서 지어준 사택입니다.

교실과 교무실, 그리고 사택까지 모두가 코코넛 나무의 잎으로 지어졌습니다.
저 남자분은 저의 안테나 설치를 도와주었습니다.  


저는 안테나를 설치하고 T30AV의 운용을 시작했습니다.   미안한 마음에 지상고를 4m 정도밖에 못올렸는데..
더 높이 올릴만한 재료도 없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첫날의 신호는 영 마음에 안들었습니다.

다음날인 일요일 마우리는 제 마음을 읽었는지 어디선가, 6m짜리 파이프를 구해서 보트에 싣고 왔습니다.


솔로몬에서 느꼈던 그 노을이  다시 느껴 졌습니다.  아마도 따듯한 사람들과 함께 있기에  멋진 노을도 제 눈에 들어왔을 것입니다.


섬의 아이들...  때 묻지 않고 착하기만한 저 아이들이 똑같은 모습으로 어른이 되는곳..  키리바시..


하루는 마우리가  배타고 키리바시를 한바퀴 돌아보고 바다에 가서 낚시도 하자고 했습니다.  
저는 마우리 덕분에 West Kiribati를 바닷길로 돌아 볼 수 있었는데요..  
실로 멋진 진짜 여행의 나날이었습니다.  

주말만 머물기로 했던 그의 집에서 저는 마지막 떠나올때 까지 그의 집에 머물렀습니다.
몇번을 사양했지만,  마우리와 그의 부인은 저에게 그의 집에 머물것을 권했습니다.


그들의 주식중 하나인 Bread fruit 입니다.  섬의 어딜가나 볼 수 있고..  껍질을 벗겨 삶으면 마치 고구마 같다고 해야 할까요..
저 열매를 갈아서 끓이면 아주 달콤한 스프가 됩니다.  그 맛은 마치 호박죽 비슷하더군요..

커피는 커다란 대접으로 하나가득 ~~
손님에게 좋은 음식을 정성껏 대접하는것은 우리 문화와 똑같습니다.


마우리의 막내아들..  이른 아침 잠에서 깨어나면 저를 찾아오는..   저의 하루를 시작시켜준 아주 사랑스러운 아이입니다.
원주민 말과 영어를 동시에 배우며 자라나는데,  그의 많은 형제들은 모두가 좋은 선생님입니다.  


구름이 만들어지는 적도의 바다.


마우리의 CB 스테이션...  그는 햄 허가도 받을 수 있습니다만,  부담스러운 허가비용때문에 못한답니다.  
그나마,  저들 부부는 키리바시에서는 수입이 많은 사람들 입니다.


저는 그의 CB 스테이션을 위해 QSL카드를 선물할 것을 약속했습니다.  
그래서 그의 무선국앞에서 여러장의 사진을 찍었구요.. 그중의 한 장입니다.


야자나무의 열매..  저 야자나무 열매의 맛을 키리바시에서 알았습니다.
저 때 이후부터 저는 콜라대신 야자나무 열매에 빨대를 꽂기 시작했습니다.


마우리의 큰아들..  어느날인가..  늦은 밤..  아니 이른 새벽..
저는 조용히 일어나 바닷가로 산책을 나갔습니다.  달빛에 부서지는 파도와 시원한 바람 그리고 밝게 빛나는 남십자성...

누군가 저 멀리서 저를 따라오더군요..  모른채 했는데..  계속 따라오길래 자세히 보니
달빛에 비치는 실루엣이 마우리의 큰 아들 이었습니다.   왜 안자고 나왔냐는 제 질문에  그는
"그저 걱정이 되어서요..  " 하며 밝게 웃었습니다..

마우리의 큰 딸은요..  저녁이면 제 잠자리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하얀 모기장까지 예쁘게 쳐주고..
제가 그런것은 내가 알아서 하니까.. 놔두래도,  제가 잠시 방을 비우면 한결같이 고운 마음씨를 보였습니다.
빨래도 해준다는걸,  제가 빨래를 해줄 틈을 보이지 않고 그때 그때 하니까,  
빨랫줄에 걸린 제 옷이 마르기가 무섭게  예쁘게 접어서 제 모포위에 올려 주었습니다.

식사시간이면 제일 큰 마루에서 마우리와 그의 두 아들, 그리고 제가 식사를 했습니다.

그의 부인은 옆에 앉아,  음식들을 떠주고 많이 먹으라고 권하기만 했구요..  그의 딸들은  바로 옆의 자그마한 마루에서
밥을 따로 먹더군요..   좋은 음식은 제가 다 차지 하는것 같아서, 그러지 말구 한자리에 앉아 같이 식사하자고 했더니,
마우리의 부인은 그것은 키리바시의 문화로서  손님이 방문했을때의 예의라고 했습니다.

식사를 마치면 마우리의 큰딸은 자그마한 그릇에 물을 담아 가지고 왔습니다.  비누까지 가져다 그의 어머니에게 건네고
그의 어머니는 저에게 손을 씻으라고 그릇을 내밀었습니다.   저는 처음에 손은 내가 우물가에 가서 씻어도 되니 이러지 말라고
했지만, 그들은 또 문화라며  물그릇을 내밀었습니다.    

자녀 교육을 함에 있어,  때로는 회초리도 들 줄 아는  그들의 문화는 예전의 우리 모습과 너무도 비슷했습니다.


하루는 출근하는 마우리를 따라 다시 Lagoon을 건너가 키리바시의 단 하나뿐인 도로를 4시간 가까이 걸어보았습니다.
과거 일본군의 해안포대가 아직 그 형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고,
때로는 작은 곡사포들이  정원의 장식물로 사용되기도 하더군요...


엔진에 비해 너무나 큰 배와 화물들...  


끊어질듯 이어지는 키리바시의 섬들은 저런 다리들로 연결 되기도 합니다.


조도가 생각나지 않으세요..?
우리가 조도에서  파도에 밀려온 어업용 부표를 반으로 잘라 만들었던 등화관제용 등갓과 똑같습니다..
아마 키리바시에 HL3ENE 오엠님께서 다녀가신 모양입니다.  ^ ^


아침에 일어난 새들이 먹더군요..


마우리의 집주변 오솔길입니다.


숲속에 사는 새인데..  이름은 모르겠구요..   사람을 봐도 도망가질 않습니다.


저녁을 준비하는 마우리의 딸들입니다.


튜브가 없어도 헤엄을 정말 잘칩니다.  그렇지만,  저 막내가 물에 들어가면 그의 형제들은 언제나 그의 곁을 지킵니다.


저도 야자나무에 올라가 봤는데,  다음에 태평양쪽으로 페디션 가면 안테나 거는거 원주민 신세 안져도 되겠습니다.
제가 나무에 그렇저렇 잘 올라가자, 마우리가 즐거워하며 사진을 찍더군요..



해 질녘,  바닷물이 아주 따듯한 시간...  밀물이 들어올때까지 원주민들은 따듯한 바닷물을 즐깁니다.


마우리의 부인이 T33, 바나바에 근무할 때.. 고기 잡으러 나갔던 마우리는 엔진 고장으로 태평양에서 표류하게 되었답니다.
고기 잡으러 바다에 나갔던 남편이 안돌아오자, 그의 아내는 유일한 통신수단인 그의 CB 래디오를 사용해
그의 실종을 알렸고,  그 사실은 CB의 전파를 타고 키리바시 정부에 알려졌습니다.

항공기가 없는 키리바시 정부는 하와이의 미 공군에 탐색 요청을 했답니다.
4일동안  마실 물도 없어 탈진한 마우리는 갑자기 내린 소나기에 다시 살아났고 5일째 되던날
마우리를 발견한 미공군기는 손을 흔드는 마우리에게  라이트를 깜빡이며  날개를 좌우로 흔들고 돌아갔습니다.


그 비행기는 몇시간뒤 다시 돌아와서는 포터블 무전기를 바다에 던졌답니다.  무전기로 조종사와 교신하게된 마우리..
"어서 구조해 주시기 바랍니다. 오버 "
"걱정 말게 친구,  뒤를 돌아 보게나... 오버"

마우리가 고개를 돌리니 커다란 배가 바로 뒤에 있었으니,  인근 해역의 여러 배들중 구조요청을 받고 제일 먼저  달려온 그배는
바로 대한민국의 원양어선 이었다고 합니다.   한국인 선장과 선원들은 그와 그의 보트를 망망대해에서 구조해 주었습니다. 

 

당시 그 원양어선은 관계국들과의 협의끝에 마우리를 하와이에 내려주기로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마우리는 하와이에서
키리바시로 비행기를 타고가는데 들어가는 엄청난 돈을 감당할 수 없었고, 영세한 키리바시 정부도 비행료를 대신 내주는 등의
지원이 있을 리 만무 했다고 합니다.  해서 마우리는 선장에게 자신의 모터보트는 이미 한국인 기술자에 의해 고쳐졌으니,  
여기서 내려주면  자기가 알아서 돌아가겠다고 말했답니다.

선장은 그 작은 15마력 모터보트를 타고 또다시 망망대해로 나가겠다는 그의 말을 한마디로 거절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마우리는 자신과 조국의 경제적인 처지를 이야기 했다고 합니다.   한국인 선장은  그의 말을 듣고  잠시 생각을 하더니,
하와이로 향하던 그 큰 원양어선의 선수를  반대로 돌려 바나바섬으로  갈것을 명령했다고 합니다.  

그가 복귀하는 몇일 동안 한국인 선원들은  마우리를 극진하게 보살펴 주었다고 합니다.
장난끼 있는 한국인 주방장이 그에게 식사를 제공하며 젖가락만 주었고,  마우리가 젖가락으로 식사를 하느라 쩔쩔매는 모습을
보며 웃던 주방장은 뒤에 서있던 선장에게 뒤통수를 맞고 바로 포크를 대령했다는 이야기를 하며 마우리는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그는 그 한국인들을 잊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바나바 섬까지 데려다 준 선장과 한국인 선원들에게, 마우리의 부인은 돼지 3마리와  온갖 과일들로 감사를 표했고,
보트를 타고 섬에 내렸던 선장은 마우리에게 잘 살라며 정표까지 주고 갔다고 합니다.  
죽음의 문턱에 섰던 그의 구조작전의 영상은 그 때 당시 태평양 지역의 뉴스에도 나왔답니다.


마우리의 부인이 가르치는 제자들 입니다.  


제가 전교생이 모일때 사진을 찍어준다고 했더니,
어느날인가 교신을 하고 있는데,  조회를 마치고 줄을 서있다며 사진 찍어 달라더군요..
운용을 하다가 사라진 이유중 하나입니다.  hi..

" Are you ready ? "   라는 제 말에 저 많은 아이들이 동시에 외쳤습니다.
" Yes ~!! "   제 영어가 최고로 잘 먹힌 순간 이었습니다.  ^ ^
저는 저 초등학교에  유일한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아이들 숫자만큼 인화해서  보내줄 것입니다.


제 안테나 작업을 도와준 학교 선생님과 그의 아들들입니다.
3부자가 각기 다른 음역의 기타로 합주하며 큰아들은 노래를 하는데,  저를 위한 연주 였습니다.
이런 여행을 할 수 있었다니...


개구장이 녀석들은 제 주위에서 언제나 저를 즐겁게 했습니다.


한 녀석쯤.... 가방에 넣어서 올까 생각도 해봤습니다.


마지막 날 마우리는 큰 아들과 함께, 퇴근이 늦어지더군요..
해가 지고 나서 돌아온 마우리는 커다란 문어와 랍스터를 잡아왔습니다.

아들과 함께 직접 잠수하여 잡은것으로 저와의 마지막 저녁을 위한 것이라 했습니다.
저들이 내집에 온다면 나 역시 저들 만큼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부끄러웠습니다.

미처 상상하거나, 그 깊이나 크기를 가늠할 수 없는 저들의 고운 마음은 잊혀지지 않을 것입니다.


떠나 오던날 아침,  마우리의 막내는 저를 쳐다보지도 안더군요..  
작년 테모투에서처럼,  저는 또 한번 순수한 아이들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이번엔 후회하지 않도록, 모두에게 따듯하게 인사했습니다.  그들은 제가 보이지 읺을때까지 손을 흔들었습니다.


마우리는 헤어지기전에 자신의 어머니가 살고 있는 인근의 섬으로 저를 데리고 가서  그 어머니에게
저를 인사시켰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저를 친구로 생각하는 마우리의 마음이었던것 같습니다.

마우리와 그의 아들은 보트로 공항까지 바래다 주었습니다.  
저는 그간의 고마움을 돈으로 표해야 한다는 것이 미안했지만,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마우리는 끝내 받지 않았습니다.  


마우리와 그의 가족들의 보살핌속에 저는 T30AV의 운용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습니다.
교신중에 일본의 한 무선국은 저에게 묻더군요..

아마 Otintaai 호텔에 묵을텐데, 자신은 거기서 Telephone Interference 로 인해 운용을 할 수가 없었다구요..
저는 위대한 원주민의 집에서 묶고 있다고 그에게 말했습니다.

T30AV의 운용 경험은 태평양으로의 교두보를 확보했다는 의미를 둘 수 있겠습니다.
성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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