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K COLUMN 

 

 

 잊혀진 주권 HL9

                             이남규 (HL1DK, 스포츠조선 편집위원)

 

얼마전 서울 종로 5가, 지하철 동대문역 부근 지하 통신구에서 일어났던 화재로 통신이 며칠 동안 마비되자, 신문이나 방송은 대체통신 시설을 서둘러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 동안 우리는 정보화사회를 입버릇처럼 이야기하면서도, 실제로 그 중요성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다. 걸프전이 바그다드시 중앙전화국 폭파로 시작되었다는 사실도 잊은지 오래다.  

아마 세계에서 통신과 정보전달의 중요성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나라는 미국일 것이다. 그 넓은 나라가 거미줄같은 전화선망으로 덮여 있어, 어디서든지 전화를 걸 수 있다. 게다가 그것을 보완하는 셀룰러식 또는 위성이용 이동전화가 있다. 미국 최대의 전화회사인 ATT 본부 상황실에서는 CNN의 24시간 뉴스서비스를 지켜보면서 항상 우회통신로를 준비하고 있다.

아마추어무선도, 비록 통신기술의 발달로 그 중요성은 감소되고 있지만, 이런 대체통신망의 중요한 일부를 구성하고 있다. 면허를 가진 사람이 옆에 있으면 일반인도 교신을 할 수 있게 한다던가, 폰패치(전화를 이용한 중계)를 허용하고 있는 것도 아마추어무선의 그런 기능을 중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해외에 파견된 미군이 훌륭한 군용통신시설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아마추어무선을 운영하려고 하는 것에도 단순한 취미 이상의 의미가 있다. 비상시에는 훌륭한 통신수단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미국이 전쟁 도중 체결된 한미행정협정에 주한미군의 아마추어무선 이용권리를 요구한 것도 그런 이유였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 생긴 HL9은 한동안 선망의 대상이었다. 우리가 청계천에서 모은 부품으로 만든 자작 무전기를 만지고 있을 무렵, 그들은 빔 안테나와 KWM2A 같은 명기를 가지고 온 세계를 누볐다. 크리스머스 휴가철이 되면, 그들은 본국의 가족과 폰패치로 마치 장거리전화를 하듯 이야기를 했고, 우리는 그저 듣고 있어야만 했다.

우호를 무엇보다도 중시하는 햄의 일원으로서 우리는 그들과 스스럼없이 친할 수 있었다. 사실 그 무렵 우리들은 그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우리나라의 에베레스트산 등반대가 조난한 사고가 있을 때, 우리는 그들의 도움으로 현지와 교신을 할 수 있었다. 지금도 많은 우리 햄이 그들과 인간적인 유대를 가지고 있다.

그러면서도 항상 무언가 꺼림칙한 것이 있었다. 전파는 주권이다. 어떻게 남의 나라 사람이 우리 나라에서 우리 호출부호로 마음대로 전파를 낼 수 있는가. 우리에게는 그렇게 까다로운 당국이 왜 그들에게는 그렇게 관대한가. 밀고 밀리던 전쟁중에는 사실 그런 생각을 할 경황이 없었다. 그보다 더 한 것을 주고라도 나라는 지켜야 했다.

세월이 얼마나 흘렀는가. 세계 어느나라에 그런 경우가 있는가. 패전국 일본이나 독일도 그렇지 않았다. 저들이야 편하니까 당연히 특권을 유지하려고 하겠지만, 왜 우리는 아직도 그냥 내버려두고 있는 것일까. 온 세계를 향해 우리 주권이 유린되어 있다는 사실이 매일 강조되고 있는데도. 상호운영협정으로 원만하게, 서로 주권을 존중하면서, 아마추어무선을 할 수 있는 길이 있는데도.

우리나라의 쓸데없이 까다로운 절차는 개선하면 된다. 상호주의를 적용할 수도 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우리 자신이 원하는 바다. HL9 을 운영하는 사람들도 진정한 햄이라면, 이런 상황을 이해할 것이다. 머지 않아 미군이 사용하던 VHF 텔리비전 채널을 회수한다고 한다. 체면 때문이다. 나는 그보다는 HL9을 회수하는 것이 더욱 시급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HL1DK 이남규, 스포츠조선 편집위원  namlee@chosun.com  KARL지 1994년 3, 4 합병호 DK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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