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K COLUMN 

 

 

 서울지부사태를 보며

                             이남규 (HL1DK, 스포츠조선 편집위원)

 

출근길, 일원동 집에서 나와, 편도 2차선 길을 따라 서쪽으로 가다 보면, 십자로를 만난다. 나는 여기서 우회전해서 영동대로로 들어간다.  

이날 아침도 이 교차로에는 출근차가 길게 늘어서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1차선은 좌회전 및 직진용, 2차선은 우회전 및 직진용이다. 나는 2차선에 있었다. 문득 옆거울을 보니, 차와 인도 사이의 좁은 공간으로 티코가 비집고 들어오고 있었다. 아무도 말리는 사람이 없었다. 그 차가 내 옆을 지나갈 때, 나는 참다못해 경적을 울렸다. 티코에서 고함이 들렸다. "깜박이를 켜!"

나는 이 돌연한 역습에 당황했다. 사실 나는 깜박이를 켜지 않고 있었다. 기다리기도 지겨운데, 깜박이까지 켜고 있으면 짤깍거리는 소리가 무척 신경이 쓰인다. 그래서 나는 꼭 필요한 경우에만 켠다. 나 뿐만 아니라, 아무도 거기서는 깜박이를 켜지 않고 있었다. 그럴 필요가 없는 곳이었다. 사실상 1차선은 직진, 2차선은 우회전 선으로 나뉘어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차 유리창에 어느 석간신문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무척 젊긴 하지만, 혹시 "동업자"나 아닐까? 그제야 여유를 찾은 나는 그에게 신문사에서 일하고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대꾸도 하지 않고 가버렸다.   

그는 자기가 "갓길주행"을 하고 있다는 사실은 전혀 개의하지 않고 있는 것 같았다. 다른 차들이 지키고 있는 불문률 같은 것에도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그에게는 오로지 깜박이만이 전부인 것 같았다.

언뜻, 요즘 서울지부사태 생각이 났다. 그렇지 않아도 이 컬럼에 그 문제를 다루고 싶었던 참이었다. 꼭 알맞는 사례라고는 할 수 없어도, 무언가 닮은 점이 있다고 생각되었다. 그 젊은이가 깜박이를 켜지 않았다고 나를 고발한다면 말이다.

전서울지부장 권재원씨는 지난 3월 26일, 서울지부총회에서 지부장으로 선출된 임석래씨의 자격을 문제 삼아, 법원에 당선무효소송을 제기하고, 새 집행부에 대한 지부인계를 거부했다. 이어 연맹과 서울지부 사이에 맞고소를 하고, 상호 제명을 하는등, 아마추어무선연맹사상 일찍이 없었던 사태가 벌어졌다.  

법정으로 문제를 가지고 간 권재원씨의 행동은 법적으로는 나무랄 것이 없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의 합법적인 권리행사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정말 그런 방법밖에 없었을까?

법이란 우리가 호소할 수 있는 마지막 단계다. 그것이 바람직스러운 상태는 아니지만, 지금 우리는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는 사회에 살고 있다. 그러나 적어도 우리 햄들만은 거기까지 가지 않고도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자부하고 있었다. 법의 힘을 빌리지 않고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면, 진정한 햄의 모임일 없는 것이다. 우리들이 이번 사태를 부끄러워하고, 가슴 아프게 생각하는 것은 바로 이점이다.

나는 그가 법정에 호소하기 앞서, 서울지부 전체 회원들의 의사를 생각해 보는 여유를 가졌어야 했다고 생각한다. 그 추운 날, 221대 117이라는 압도적인 표차로 표시한 그 의사의 의미를 다시 한번 음미했어야 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한 마디로 서울지부 집행부를 바꿔보자는 의사의 표현이었다.  

그것은 또, 우리 모두가 지켜야 할 민주사회의 기본적인 절차이기도 했다. 우리 국민은 그동안 이 절차를 존중하지 않으려는 사람들 때문에 많은 고통을 겪은 경험을 가지고 있다. 그는 무엇보다도 이 절차를 존중해야 했다. 그의 정당성은 그후에도 얼마든지 증명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번 기회에 우리는 아마추어무선연맹의 운영방식이나 절차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지금의 제도는 그 동안에 있었던 폭발적인 햄인구 증가나, 통신수단의 다양한 발달등, 여러 가지 변화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아마추어무선연맹은 이제 소수 동호인의 모임이 아니다.  

우리는 머지 않아 닥쳐올 햄인구 10만의 날을 대비해야 한다. 연맹은 능률적으로 운영하면서, 많은 회원의 다양한 의견을 존중해야 하는 어려운 과제를 안고 있다.   

회원들도 적극적으로 발언을 해야 한다. 더이상 지부나 연맹의 중대한 사태에 대해 남의 일처럼 바라보고 있을 수는 없다. KARL지가 있고, 컴퓨터 통신망이 있고, 또 우리만의 특권인 전파가 있지 않은가.

 

<HL1DK 이남규, 스포츠조선 편집위원  namlee@chosun.com  KARL지 1994년 06월호 DK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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