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K COLUMN 

 

 

 OM은 있어도 YB는 없다

                             이남규 (HL1DK, 스포츠조선 편집위원)

 

우리 나라에도 정치인들 사이에는 언제부터인가 "YS"니, "JP"니 하는 영자 이니셜 호칭이 정착되었다. 옛날처럼 호를 부르자니 뭔가 고리타분한 것 같고, 그렇다고 제대로 이름을 부르자면 존칭 같은 것에 신경을 써야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가끔 비판이 있긴 하지만, 편리하니까 주로 신문 가십기사에서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중국 사람들은 아예 영자 이름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존이니, 제임즈니 하는 식의 이름이다. 대개는 중학교에서 영어회화 공부를 할 때, 편의상 사용하던 이름을 그대로 쓴다는 것이다. 미국 유학생 출신이 많은 타이완의 장차관급 인사도 영자 이름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많다. 지난번 선거에서 타이완성장으로 당선된 국민당의 숭추위(宋楚瑜)씨도 "제임즈 숭"이란 이름을 가지고 있다. 외국인에게 기억하거나 발음하기 까다로운 중국 이름보다는, 영자식 이름을 사용하도록 하는 것이 편리하다는 실용적인 생각 때문일 것이다.  

타이완에서는 자동차의 번호판에도 영자를 사용한다. 승용차의 번호판은 두개의 영자와 4단위 숫자로 되어 있다. 예를 들면 "AB1234" 같은 식이다. 택시는 숫자가 한 개 적어, "CD567" 같은 식이다. 모터바이크는 워낙 숫자가 많기 때문인지, 영자 세개와 숫자 세개로 되어 있다. "EFG801" 같은 식이다. 한자의 본고장에서 영자를 쓰는 것이 이상하게 생각되었지만, 식별이나 외우기가 쉽고, 컴퓨터처리에 편리하기 때문에 그렇게 하고 있다는 것이다.

중동지역에서는 차들이 아랍글자로 된 번호판을 달고 다닌다. 숫자까지 아랍글자이기 때문에, 처음 보는 사람은 당황하게 마련이다. 일본은 우리와 흡사한 번호판을 사용한다. 맨 위에 한자로 된 지역 이름, 중간 왼쪽에 일본 히라가나 문자 한개, 그리고 숫자의 조합으로 된 복잡한 형태다. 식별이 어렵고, 컴퓨터 처리에도 불편할 것이 틀림없지만, 우리 나라와 마찬가지로 "자기식"을 고집하고 있다.

일본식을 거의 그대로 딴 우리 나라 자동차번호판은 정말 문제가 많다. 무엇보다도 자동차번호판에서 가장 중요한 식별성이 약한 것이다. "너", "터" "러", "트", "르" 같은 글자는 대낮에도 구별하기 힘들다. 이 문제는 아직도 범인을 잡지 못한 지난번 잠수교 뺑소니 살인사건으로 부각되었지만, 곧 교체된다는 새 번호판을 보아도 기본골격이 그대로이기 때문에 별로 개선된 것 같지 않다.

그렇다고 자동차번호판에 타이완처럼 영자를 사용하자고 하면 아마 난리가 날 것이다. 국민학교 때부터 영어를 가르쳐야 한다고 해도 반대가 만만치 않은 풍토이기 때문이다. 한 때 나라는 물론, 말과 글까지 빼앗겼던 일 때문에, 우리는 그런 문제에 대해 남보다 각별한 감정을 가지고 있다. 결국 "세계화"라는 거창한 간판을 걸고 나서야, 97년부터 국민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게 되는 모양이다.

교신을 끝내고 교환하는 인사말 "73"와 "88"도 그렇다. 전에는 분명히 "세븐티 트리"와 "에이티 에잇"이었는데, 요즘은 "칠삼" 과 "팔팔"이 많다. 그렇게 부르는 것이 우리 언어생활이나 감정에 더 맞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 것만은 원래대로 쓰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CQ"를 우리 말로 굳이 번역하지 않는 것처럼, "세븐티 트리"와 "에이티 에잇"은 작별을 알리는 국제적 공용어다. 어느 나라 말로 이야기하던, "세븐티 트리"와 "에이티 에잇"을 들으면, 우리는 교신이 끝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국제 공용어는 가능한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이른바 "세계화"다.  

그러나 잘못 사용되거나, 또는 불필요하게 남용되고 있는 "영어"는 고쳤으면 한다. 예를 들면, "인폼", "마이크 오버", "마이크 터닝합니다" 같은 말들은 다른 곳에서는 통용되지 않는 "영어"다. 흔히 사용하는 "YB"도 사실은 일본 사람들이 지어낸 "일제 햄약어"다. 원래 햄들이 사용하는 약어에는 "OM"과  "YL", "XYL"은 있어도, "YB"는 없다.

 

<HL1DK 이남규, 스포츠조선 편집위원  namlee@chosun.com  KARL지 1995년 03월호 DK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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