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K COLUMN 

 

 

 삼풍참사의 교훈

                             이남규 (HL1DK, 스포츠조선 편집위원)

 

그날 나는 다른 때보다 조금 일찍 퇴근길에 올랐다. 항상 하던 대로, 남산 1호 터널을 통과해서 한남대교 쪽으로 내려가다가, 정말 오래간 만에, 집에서 2m로 나오고 있는 유인걸 OM(HL1MSE)을 만났다. 우리는 지난 번에 이어, 청진항으로 쌀을 싣고 갔다 돌아 온 시어펙스호의 태극기와 인공기 사건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었다.  

한남대교를 반쯤 건넜을 무렵, 갑자기 145,00Mhz에서 어디가 붕괴되었다고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내 트윈밴드 모빌 트랜시버의 한 밴드를 항상 2m 콜링 주파수에 맞추어 놓고 있다. 나는 유OM에게 무슨 사고가 난 것 같다고 말했다. 유OM은 곧 레디오와 텔리비전을 틀어 보더니, 서초동의 삼풍 아파트가 무너졌다는 긴급 보도가 나오고 있다고 알려 주었다. 나는 이미 경부고속도로 진입로에 들어가고 있었다.

차가 가득 찬 진입로에서 어쩔 수 없이 앞차를 따라 천천히 움직이는 동안, 콜링 주파수에서는 잇따라 사고 소식이 흘러 나왔다. 삼풍백화점 정문 근처에서, 흥분한 목소리로 현장 상황을 알려 주는 햄도 있었다. 아마도 그 햄은 이번 삼풍 참사에서, 최초로 현장 상황을 전파로 알려 준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때까지도 나는 그 참사의 규모가 그렇게 엄청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경부고속도로 진입로에서 빠져 나와 양재대로에 들어섰을 무렵, 대한적십자사 아마추어무선 봉사대원들의 교신이 그들의 비상주파수인 145.140Mhz에서 들리기 시작했다. 지난 번 마포 개스관 폭발사고와, 성수대교 붕괴사고 때 활약했던 정의천OM(HL1ORA)의 목소리도 들렸다. 이런 일에 익숙해져 있는 그들은 서로 연락을 취하면서, 현장 출동 준비를 하고 있었다.

사고 현장 못지 않게, 이날 2m밴드에도 혼란이 있었다. 호출주파수와 비상주파수 사용 문제를 둘러싸고 약간의 시비도 벌어졌다. 대부분의 경우는 아마추어무선에 비상통신이라는 것이 있고, 또 그것을 위한 비상주파수가 있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는 데서 나온 오해인 것 같았다.

원래 아마추어무선은 긴급통신을 하라고 만든 것은 아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무선통신을 개인적인 취미로 즐기기 위해서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사회의 일원으로 생활하고 있는 이상, 긴급사태가 발생했을 때, 시민의 일원으로 할 수 있는 일은 해야 한다. 아마추어무선에 비상통신규정이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더구나 우리 햄은 훌륭한 웬만한 프로를 능가하는 통신장비를 가지고 있고, 또 그것을 누구보다도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으므로, 다른 사람들이 할 수 없는 봉사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자원을 활용할 수 있는 준비나 태세가 되어 있지 않았다. 적십자사 햄만이 조직적으로 활동했을 뿐이다. 이런 대형 사고가 일어날 때마다, 우리는 주로 정부나 담당 기관의 준비 부족과 관리 능력부족을 나무라지만, 실은 우리 자신도 별로 관심을 가지고 있지 못했고, 할 수 있는 일을 하지 못했던 것이다.

지난번 일본 고베에서 대지진이 있었을 때, 나는 그런 재난을 특히 통신 면에서 적절하게 대처하지 못한 일본인의 이야기를 이 컬럼에 쓴 일이 있다. 그런 상황이 벌어지면, 평상시에는 제대로 기능을 발휘하던 통신망이 마비되고 만다. 그런 경우에 대비해서 대체 통신망이 구성되어 있어야 한다. 이 경우 우리 햄은 훌륭한 대체 통신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다.

적십자사 긴급구조대 이외에도, 다른 많은 햄이 이번 삼풍 참사 구조 현장의 통신지원을 위해 봉사했다. 자기 생업이나, 할 일을 젖혀 두고 남을 위해 봉사한 이들은 찬사를 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참여하고 싶었지만, 방법을 몰라서 하지 못한 햄도 많을 것이다. 그런 구조 현장에 햄의 통신지원을 필요로 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몰랐던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재난은 언제고 또 일어날 수 있다. 우리는 먼저 이런 긴급 사태가 발생했을 때, 자원봉사자들을 받아들여, 효과적인 통신 지원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지역 또는 연맹 단위로 운영할 수 있는 체제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이번 사고를 계기로, 이미 있는 긴급통신체제도 다시 한번 검토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는 2m 밴드의 호출주파수와 비상주파수를 145.00 하나로 지정해 놓은 것은 타당한 것인가. 일본은 그 위와 아래로 두개의 비상주파수를 더 지정해 두고 있다.

 

<HL1DK 이남규, 스포츠조선 편집위원  namlee@chosun.com  KARL지 1995년 08월호 DK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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