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K COLUMN 

 

 

 아마추어는 우호적인가?

                             이남규 (HL1DK, 디지틀조선 편집위원)

 

  우리 나라 사람들은 신바람이 나면 물불을 안 가리고 일을 한다고 한다. 한 동안 'W이론"으로 화제가 되었던 서울 공대 이면우교수의 이야기다. 따라서 나라가 잘 되려면 먼저 신바람이 날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말하자면 사람에게서 정신적인 가치를 중시하는 이론이다. 우리가 애국심, 또는 애교심이나 애사심을 강조하는 것도 실은 이런 생각의 연장일 것이다.

  대조적인 주장으로는 이른바 "시스템이론"이 있다. 제도와 조직을 잘 마련해 주면 사회나 단체가 제대로 발전해 나갈 수 있다는 주장이다. 예를 들면, 전에는 은행에서 사람들이 서로 먼저 일을 보려고 새치기를 해서 혼잡했지만, 번호표제도를 마련해 놓은 다음부터는 질서가 잡혔다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 나라 사람들의 공중도덕심을 나무라기 전에, 질서를 지킬 수 있도록 제도를 마련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 두 가지 주장에는 나름대로 일리가 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실제의 사회현상에서는 이 두 가지 요소가 결합되어 있다. 선진국에서 공중도덕이 잘 지켜지고 있는 것은 그 나라 사람들의 질서 의식이 높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질서를 지키지 않으면 거의 틀림없이 언젠가는 그 때문에 자기가 불리한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는 실리적인 이유 때문이기도 한 것이다.

  다른 모든 사회현상과 마찬가지로, 이 두 가지 중에서 어느 하나만을 강조해서는 사회가 제대로 발전할 수 없다. 시기와 상황에 따라 정신적인 측면을 더 강조할 필요가 있을 때도 것이고, 제도적인 측면을 더 문제삼아야 할 때도 있을 것이다.

  우리 아마추어무선의 경우를 보면, 지금까지는 정신적인 측면을 강조해 온 경향이 짙다. 어쩌면 그것이 우리들의 강점이기도 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아마추어는 우호적"이라는 표어다. 곰곰이 따져 보면, 아마추어무선도 제한된 주파수 자원 속에서 운영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혼신이나 간섭처럼, 본질적으로 배타적이어서 "우호적"이기 어려운 요소가 많다. 극단적인 예로, 바로 이웃집에 강력한 장비를 가지고 대단히 활동적인 햄이 이사온 경우를 생각해 보자. 웬만큼 우호적이지 않고서는 평화공존이 어려울 것이다.

  최근 서울 지역의 2m 밴드도 마찬가지다. 특히 출퇴근 시간의 콜링주파수를 들어보면, 통신의 기본 규칙조차 지키기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송신을 마치고 그 응답을 기다릴 여유도 없이 다른 국이 들어온다. 웬만큼 강심장이 아니면 감히 들어갈 엄두를 내지 못한다. 러시아워의 지하철이나 버스 못지 않은 상황이다. 때로는 어느 햄의 실수나 불법국의 방해 전파로 콜링주파수의 기능이 마비되기도 하고, 욕설이 오고 가기도 한다. 이런 과정 속에서 우리는 점점 더 질서 의식이 무디어지고, "아마추어는 우호적"이란 구호가 냉소적으로 느껴지기 시작한다.

  그렇다고 아직 우리 나라의 햄 인구로는 2m 밴드가 완전히 포화된 것은 아니다. 효과적으로 사용하면 얼마든지 여유가 있다. 왜 우리는 이런 상황을 합리적으로 해결해 보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 것일까. 여기서 필요한 것은 "시스템이론"이다. 앞서 예를 든 은행의 경우처럼 제도를 정비함으로서 질서를 바로 잡을 수도 있다. "우호적"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어야 하는 것이다.

  얼마 전, 2m 밴드에서 네트 주파수를 둘러싸고 신경전이 벌어지는 것을 보았다. 어느 네트가 오래 동안 사용해 온 주파수를 다른 네트에서 사용하기 시작함으로서 벌어진 싸움이다. 두 네트는 지역적으로 상당히 떨어져 있지만, 인구가 늘고 장비가 좋아지고 있기 때문에 서로 방해를 주게 된 것이다. 처음에는 두 네트 사이에 "우호적"인 대화가 오고 가는 것 같더니, 결국 "네 거냐?"하는 단순 논리가 대세를 장악한 것 같았다. "우호적"이어야 할 햄들이 "적대적"으로 변하고 있는 것이다. 이 경우에는 무엇보다도 "우호적"이 강조되어야 할 것 같다.      

  이런 상황은 계속 햄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우리 나라에서는 앞으로 계속 나타날 것이다. 우리는 다시 한 번 "아마추어는 우호적"이란 의미를 생각해 보고, 그와 함께 이런 상황을 개선할 수 있는 지혜로운 시스템을 개발해야 할 것이다.

 

<HL1DK 이남규, 디지털조선 편집위원  namlee@chosun.com  KARL지 1996년 03월호 DK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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