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K COLUMN 

 

 

 엔화가 고개를 숙인 이유

                             이남규 (HL1DK, 디지틀조선 편집위원)

 

아마추어무선을 하다 보면 경제에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들도 한 가지 외면할 수 없는 경제지표가 있다. 바로 일본 엔화의 환율이다. 어쩔 수 없이 일본제 무전기와 장비를 사용하지 않을 수 없는 현실에서, 엔화의 가치 변동은 즉각 우리 햄시장에 반영되어, 우리 호주머니 사정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수년 전, 엔화의 대 미화 달러 환율이 90 대 1에서 80 대선 까지 폭등했을 무렵, 우리 나라의 햄기기 시장에는 찬바람이 불었다. 요즘은 상황이 달라졌다. 한없이 올라갈 것 같던 엔화의 가치가 계속 떨어지고 있다. 엔화의 대 미화 환율이 100 대 1 선을 훌쩍 넘더니, 이 글을 쓰고 있는 현재 116 선까지 내려갔다. 우리 햄들에게는 희소식이지만, 이 번에는 우리 원화의 가치가 내려가는 바람에, 우리들은 엔화 가치 폭락의 혜택을 고스란히 누릴 수는 없게 되었다.

왜 일본 엔화가 요즘 유행어로 고개를 숙이고 있을까? 가장 근본적인 요소는 경제력이다. 일본의 엔화가 강세였던 것은, 일본의 수출을 억제하기 위한 다른 나라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압도할 수 있었던 강력한 국제경쟁력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금 그 상황이 뒤바뀌고 있다. 일본 공업력의 상징이었던 자동차산업은 이미 미국에게 역전당했다. 일본 자동차의 공세로 초토화되었던 미국의 자동차산업은 94년에 일본을 젖히고 세계 1위의 자리를 탈환했다. 사양길이었던 미국의 반도체산업도 93년에 상황을 역전시켰다. 비슷한 상황이 가전제품, 철강, 컴퓨터 산업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엔화의 가치 하락은 그런 일련의 현상에서 나온 결과일 뿐이다. 도대체 무슨 일어난 것일까.

전문가들은 우선 그 동안 미국의 산업이 일본식 경영의 장점을 철저하게 연구하여, 도입했다는 점을 들고 있다. 예를 들면 점보여객기로 유명한 미국의 보잉항공사는 일본 도요다자동차의 JIT(Just In Time)방식을 도입하여, 지난 4 년간 생산성을 2 배나 늘렸다고 한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일본 정부의 낡은 제도화 산업의 독창력 부족이라고 지적하는 전문가들이 많다. 일본의 잘 짜여진 분업과 팀워크를 무기로 한 대량생산체제는 선진국을 따라 잡는데는 위력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뒤에는 "일본주식회사"란 말이 나왔을 정도로, 그들을 밀어 주고, 때로는 이끌어 준 탄탄한 관료체제가 있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이 오늘 날 고도의 기술과 정보의 사회에서는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요즘 일본에서는 온 나라가 이 치열한 국제경쟁사회에서 살아 남기 위해 야단이다. 그리고 그들의 화살은 일차적으로 지금까지 번영의 공헌자로 칭송되던 관료들에게 집중되고 있다. 그들이 날로 발전하는 세계의 추세를 외면하고, 구태의연하게 규제만을 고집했기 때문에 일본 산업의 경쟁력이 떨어졌다는 것이다. 관료들의 일차적인 관심은 자기들의 고유권한 유지다. 그래서 일본의 경제는 그런 규제우선의 사고방식을 철폐하지 않는 한 미래가 없다는 극단론까지 나오고 있다.

최근 나는 일본의 햄관계 잡지를 보고 그런 사정의 일단을 이해할 수 있었다. 요즘 일본 아마추어무선계의 가장 큰 관심은 작년 5월, JARL 총회에서 우정성(정통부) 고위관리가 약속했다는 "아마추어계 요망 사항 연도 안 실현"이 과연 그 기한인 97년 3월 31일 안에 이행될 수 있을 지에 쏠려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 관서를 반으로 줄이겠다는 하시모토정부의 공약에도 불구하고, 전망은 회의적인 것 같다. 주파수 사용구분(밴드 플랜)의 사소한 조정조차 우정성의 "간단히 바꿀 수 없다"는 이유만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은 또 "게스트 오퍼레이션"이라고 해서, 면허증만 있으면 설비면허인의 관리 아래서 그 무선국을 운용을 할 수 있는 제도를 검토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도 외국인에 대해서는 상호운용협정을 맺고 있는 8 개국의 햄에 국한된다고 한다. 여기에도 다른 나라의 면허 수준과 맞출 수 없기 때문이라는 구차스런 이유가 붙어 있다고 한다. 이미 온 세계는 면허를 가진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도 개방하는 추세로 움직이고 있는 데도 말이다.

하기야 지금 우리는 남의 사정을 개탄하고 있을 형편조차 되지 못한다. 지난 연말, 우리들이 추진했던 외국인에 대한 아마추어무선의 제한된 운영허용 등, 최소한의 규제완화가 정보화추진의 앞장을 서고 있다는 정보통신부의 반대로 국회에서 좌절당했다. 그 이유로 그 낡아빠진 "3자통신 금지"규정을 들었다는데, 이러고서야 어떻게 우리가 21세기를 바라볼 수 있다는 말인가. 그 동안 일본이 움직여야 한참 뒤 그 뒤를 따라가는 것이 우리 나라 관료들의 습성이었으니, 그저 일본의 아마추어무선제도가 시간이 걸리더라도 개혁되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는 것 같다.

 

<HL1DK 이남규, 디지털조선 편집위원  namlee@chosun.com  KARL지 1997년 02월호 DK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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