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K COLUMN 

 

 

 약한 것이 좋다

                             이남규 (HL1DK, 디지틀조선 편집위원)

 

이 글을 쓰기 며칠 전 샌프란시스코에 사는 빈센트 친(W6EE)이 서울을 다녀갔다. 95년 베이징 국제DX대회에서 만났던 회계사인데, 싱가포르에 가는 길에 일부러 들렀다는 것이다. 있는데, 한국은 처음이라고 해서, 여기 저기 데리고 다녔다. 그 유명한 이태원에도 갔고, 자유의 다리와 통일전망대, 그리고 물론 용산전자랜드와 청계천 시장도 돌아 다녔다. 테니스를 좋아한다고 해서, 영하의 아침에 실내테니스코트도 갔다.  

닷새 뒤, 그가 떠나는 날, 나는 그의 서울 쇼핑리스트를 보고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들의 여자 친구를 주려고 샀다는 10,000 원 짜리 인형 한 개, 교보문고에서 발견했다는 열쇠고리, 국산 핸디용 안테나 한 개뿐이었던 것이다. 이 144/430 안테나는 값이 반 정도로 쌌을 뿐만 아니라, 소재가 러시아 우주선 착륙장치에 사용된다는 형상기억 금속이라는 점이 그의 관심을 끌었던 것 같다.

이 쇼핑리스트는 지금 불황으로 허덕이고 있는 우리 나라 경제의 한 측면을 반영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외국인이 우리 나라에서 살 만한 물건이 없어진 것이다. 우리 나라의 산업은 분명히 활력을 잃고 있다. 기술을 비롯해서 생산에 필요한 어느 분야 하나 경쟁국 보다 결정적으로 우위에 있는 것이 없다. 요즘 벌어지고 있는 노동법 관련 분규는 이처럼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잃어 가고 있는 우리 나라의 산업을 되살려 보려는 과정에서 생긴 이해의 갈등이 표출된 것이다.

우리 경제의 문제는 우리들의 소비형태에도 있다. 우리들의 소비의식이나 수준은 우리 소득 수준을 훨씬 넘고 있다. 이 것은 흔히 신문에서 '과소비'라고 비판되고 있는 사치풍조 같은 몇 가지 특별한 현상에 국한되어 있지 않다. 우리들의 생활이 미국식 소비문화 형태의 영향을 받아, 처음부터 씀씀이가 분에 넘쳐 있었다. 그러니 선진국에서는 감탄의 눈으로 바라보는 연간 6~7%의 경제성장률로도 감당할 수 없는 것이다.    

자동차를 예로 들어도 그렇다. 사람들은 이제 소형차를 거들떠보지 않는다. 차는 의례 오토매틱이어야 하고, 에어컨은 가볍게 기본으로 생각한다. 유럽에 가보면 우리 티코급 차가 많이 있고, 또 차의 대부분이 수동기어이며, 에어컨이 달려 있지 않다. 해외관광이 일상적인 일이 되고, 두루말이 휴지를 포함해서 일회용 제품이 없으면 생활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하게 된 의식 역시 마찬가지다.

이런 현상은 우리 아마추어무선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그 하나가 출력이다. 우리 체신부(정보통신부 전신) 관리의 혜안 덕택이었는지, 아니면 무지 때문이었는지, 우리 나라는 세계에서 거의 유례없이, CW 테스트를 요구하지 않는 3급 면허로도 20m 밴드를 제외한 HF대를, 그것도 50W까지 운영할 수 있게 되어 있다.

나는 여기서 우리 면허제도의 잘잘못을 따지려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우리 관리들은 요즘 한창 논의되고 있는 CW폐지론의 선구자였다고도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아마추어무선을 시작하려는 사람에게 처음부터 그런 출력을 사용할 수 있게 해 준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무선통신은 필요 최소한의 출력을 사용해야 한다는 대원칙에 위반될 뿐만 아니라, 전파가 얼마나 귀중한지 절감할 수 있는 여유를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W나 mW 단위로 솜씨를 닦은 다음, 차례로 출력을 올려 가는 것이 아마추어무선의 정도다.

과잉 출력의 폐단은 많은 햄이 몰려 있는 VHF대에서 특히 현저하게 나타나고 있다. 지역단위 통신수단으로 출발했던 이 주파수대에서, 강력한 출력으로 통달거리가 늘어남에 따라 혼신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다. 앞으로 햄인구가 점점 더 늘어난다고 생각할 때, 제한된 주파수대역 안에서 이 문제는 점점 더 큰 혼란을 야기할 수밖에 없다.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예를 들어 VHF대의 출력 상한을 10W로 제한해 볼 수는 없을까. 그러면 VHF대의 채널 간격을 지금의 20kHz에서 15kHz, 또는 10kHz 로 좁혀, 그만큼 이 주파수대의 수용능력이 늘어날 것이다. 일본 국내 VHF 트랜시버는 요즘에야 20W 급이 주력기가 되고 있다는 사실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이런 것은 굳이 법이나 규정으로 묶지 않아도 된다. 운영자 스스로가 항상 필요 최소한의 출력으로 교신을 하려는 노력을 한다면, 우리들의 햄생활은 한결 즐거울 수 있다. 이런 움직임은 단순히 아마추어무선의 효율적인 운영을 위한다는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이 자연을 가능한 한 그대로 우리 자손에게 넘겨주어야 한다는 생활철학이나 환경운동의 위에서도 추진되어야 한다. 1와트를 절약하면, 그만큼 우리 자연은 덜 손상된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말이 있지만, 우리 햄의 세계에서는 "약한 것이 좋다"가 통용되기를 기대해 본다.

 

<HL1DK 이남규, 디지털조선 편집위원  namlee@chosun.com  KARL지 1997년 03월호 DK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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