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K COLUMN 

 

 

 월드컵의 감동

                             이남규 (HL1DK, 디지틀조선 편집위원)

 

  월드컵이 이렇게 감동적이고 큰 영향력을 가졌다는 것을 전에는 몰랐다. 실은 1974년 여름, 영국을 취재하러 가는 길에 들렀던 프랑크푸르트에서 우연히 이 경기를 본 적이 있었지만, 원래 축구 그 자체에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큰 인상은 받지 못했다. 단지 관중들이 부는 피리와 나팔 소리가 엄청나게 시끄러웠다는 것, 그리고 개막 전 행사로 초등학교 아이들의 매스게임이 있었는데 그저 운동장 네 귀퉁이에 모여 있다가 한꺼번에 한복판으로 우르르 몰려나와 글자를 그려놓고는 다시 돌아갔다는 것이 기억에 남아있을 정도다. 2차대전을 일으켰다는 멍에를 졌던 독일인들이 조직적이고 집단적이라는 인상을 씻어버리기 위해 일부러 그렇게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처음에는 한일 공동개최 월드컵에 대한 사람들의 열의는 신통치 않았다. 20개의 프로축구팀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일본에 비해서 우리는 우선 그 바탕부터 열악했다. 조직위에서 티켓이 안 팔려 때문에 고민을 했을 정도다. 그러나 우리 팀이 첫 경기에서 폴란드에 이기면서 상황이 급격히 달라지기 시작했다. 무엇보다도 광화문에 모인 붉은 악마 응원단의 규모가 급격히 불어났다. 그곳은 사무실에서 얼마 안 되는 곳이기 때문에 나는 처음부터 관심을 가지고 지켜볼 수 있었다.

  월드컵이 열리기 전, 이들은 한일전이나 평가전 같은 주요 경기가 있을 때 붉은 옷을 입고 전광판 앞에 모여 북을 치고 고함을 지르는 일종의 광적인 청소년들이었다. 그러나 월드컵의 한-폴란드전 때는 그 규모가 수만 명으로 늘어났고, 때맞추어 마련된 무대를 중심으로 어느 정도 질서가 잡힌 응원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얼굴에 페인팅을 하고, 태극기가 응원도구로 등장했다. 무엇보다도 인상적이었던 것은 "대-한-민-국"이란 구호의 등장이었다. 정수라의 "오! 대한민국" 이래 이처럼 "대한민국"이, 그것도 젊은이들 사이에서 당당하게 불려지기는 처음이었다고 생각된다.

  한국팀이 16강전에서 8강전으로, 그리고 다시 4강전으로 진출함에 따라 광화문 응원단의 규모는 수십만으로 불어났다. 중년층이 합세하고, 아주머니들이 붉은 옷으로 단장한 아이들과 함께 이 대열에 뛰어들었다. 월드컵 응원은 전국으로 번져 국민적인 운동이 되었다. 우리나라 역사에서 이처럼 온 국민이 한 마음으로 뜻을 같이했던 경우는 별로 없었을 것이다.

  월드컵은 많은 교훈을 남겨 주었다. 48년 동안의 도전에서 처음으로 4강전까지 오를 수 있었던 우리는 불가능하다고 생각되는 것도 발상을 바꾸면 해낼 수 있다는 자신을 얻었다. 서양에 대한 일종의 열등감도 극복할 수 있었다. 흔히 이야기 되는 히딩크 신드롬은 그 동안 우리나라의 발전을 저해하고 있던 부정적인 요인을 분석해볼 기회를 제공했다.

  월드컵을 계기로 그 동안 생소했던 월드컵을 계기로 많은 외국인이 우리나라를 방문했다.많은 외국인이 우리나라를 방문했다. 외국인들에게 대체로 폐쇄적이었던 우리나라 사람들이 마음을 여는 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국민적 영웅이 된 거스 히딩크감독도 전에는 상상할 수 없는 현상이었다. 나는 우리가 세계에 마음을 연 것이 이번 월드컵의 가장 큰 소득이라고 생각한다.  

  미국에서 열렸던 동계올림픽에서 김동성선수에 대한 오심에 분노를 느꼈던 사람들도 이번 월드컵을 겪으면서 조금 다른 생각을 가지게 되었을 것이다. 이번 월드컵에서 몇몇 나라 사람들은 당시 우리가 겪었던 것과 비슷한 경우를 당했다고 격분했기 때문이다. 얕보고 있었던 우리 팀에게 고배를 든 이탈리아와 스페인 사람들은 심판문제를 들고 나왔다. 터키인들은 한국인 심판이 그들 팀에게 불리한 판정을 내렸다는 이유만으로 감정이 악화되어 그곳에 진출한 우리 기업인들이 한 때 큰 곤욕을 치렀다고 한다. 월드컵이 성공적으로 끝나고, 한국팀의 실력이 인정된 지금 돌이켜 보면 무척 멋쩍을 것이다.

  한 가지 아쉬웠던 것은 우리 햄은 월드컵 기간 중 특별국을 운영한 것 이외 이렇다할 공헌을 하지 못한 것이 아닌가 하는 점이다. 이번 경기를 보기 위해 찾은 외국인들 중에 틀림없이 햄이 있었을 것이고, 어떤 형식이로든 이들을 만나고 도와줄 방법이 있었을 것이다. 앞으로도 부산에서 열릴 아시아경기 등, 많은 국제경기나 모임이 열릴 것이므로 연맹단위나 개인적으로도 적극적으로 이런 기회를 활용했으면 좋겠다.

<HL1DK 이남규, 디지털조선 편집위원  namlee@chosun.com  KARL지 2002년 08월호 DK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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