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M이 즐거운 이유] 치지직∼지구촌 친구여 나와라!

 HL1IWD  국민일보 2004년 04월 25일

 

 

[HAM이 즐거운 이유] 치지직∼지구촌 친구여 나와라!

1988년 5월

“헬로우 CQ,CQ! 콜링 CQ,CQ! ”

담배 연기 자욱한 대학 동아리방에서 지직거리는 주파수 소리를 들으며 떨리는 목소리로 첫 전파를 쐈다. ‘나의 첫 교신상대는 누구일까?’,‘외국인이 나오면 무슨 말부터 해야 할까?’ 짧은 영어를 걱정하며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길 5분여.

뭉툭한 기계 속에서 희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주파수를 이리저리 돌려가며 맞추자 이번엔 상대방의 목소리가 더 선명하게 들렸다. 숙명여대에 다니는 또래 여학생이었다. 이름과 나이 등 서로의 주민등록증을 까보이며 대학생활 얘기부터 동아리활동에 이르기까지 수다를 떨었다.

다음에 무선에서 또 만나자는 약속을 하며 마이크를 놓았다. 첫 교신이라는 말을 들은 그 친구는 며칠뒤 QSL카드(교신을 한뒤 주고 받는 엽서)를 예쁘게 코팅해서 보내왔다.

그 후로 틈만 나면 동아리방에 들러 고 놈의 신기한 기계 앞에 앉아 목청을 가다듬었다. 점심시간 밥 먹으러 집에 들어왔다가 마이크 앞에 앉은 30대 회사원,지방대에 다니는 남학생,일본인,러시아인 등. 수만마일 떨어져있고 국적은 다르지만 햄(HAM,아마추어 무선사)이라는 단어 하나로 통했다.

축제나 MT 때의 기억은 더욱 즐겁다. 4∼5명씩 조를 짜서 며칠 동안 밤새워 안테나를 만들고 그걸 들고 학교 안이나 산 속을 돌아다니며 전파발신기를 찾는 ‘팍스헌팅(Fox Hungting)’을 하다보면 다리 아픈 줄도 몰랐다.

당시는 PC통신이나 인터넷을 통한 채팅,삐삐,휴대전화 등이 아직 등장하지 않은 때였다.

2004년 4월.

인터넷 메신저를 통해 상대방과 실시간으로 대화를 나눌 수 있고 휴대전화로 얼굴을 보며 이야기할 수 있는 시대가 됐지만 이성기(44·경기도 고양시 신한안과의원) 원장은 아직도 구닥다리 무선기기들에 빠져있다.

대학시절 아마추어 무선동아리에서 활동했던 기억들을 떠올리며 설렘으로 그의 집을 찾았다. 묵직한 놈부터 워키토키 모양의 무전기 등 4대의 무선기기와 주파수 증폭기,모르스부호 전신기,세계 각국에서 받은 QSL카드 등 책상위에 널려진 물건들이 먼저 반갑게 맞았다.

대학 졸업 후 선배가 집에서 외국인들과 유창하게 무선교신을 하는 모습을 보고 영어를 배우고 싶어 무선교신을 시작했다는 이 원장. “컴퓨터나 인터넷세대들은 우리를 구닥다리 아날로그 세대라고 놀리겠지만 내 손으로 언어를 만들고 내 귀로 해독하면서 낯선 사람들과 대화하는 게 너무 재미있어요.”

병원에까지 무선기기를 들여놓고 하루에 10여차례 교신을 하는 그는 미국 샌디에고에 사는 60대 안과의사를 우연히 교신하게 돼 진료에 도움을 받았다고.

4∼5년 전에는 남태평양을 순항하며 의료·선교활동을 하는 ‘MV한나호’에서 눈병이 퍼진 적이 있었는데 무선교신으로 처치법을 알려줘 환자들을 치료하기도 했다.

현재 전 세계에는 300만명 이상의 아마추어 무선사들이 활동하고 있다. 국내에는 지난해말 기준으로 5만9489개의 아마추어 무선국이 있으며 16만7000여명이 아마추어 무선사 자격증을 갖고 있다.

한국아마추어무선연맹에도 1만3000명이 가입해 활동하는데 이들 중에는 초등학생부터 가정주부,70대 할아버지에 이르기까지 연령과 직업이 다양하다.

60,70년대에는 ‘따다닥,따다닥’ 하는 모르스 부호 치는 소리를 간첩으로 오해한 옆집 신고로 경찰에 붙잡혀가기도 했지만 재난 등 위급상황에서는 세계 각국을 넘나들며 생명을 살려내는 자부심에 뿌듯해 하는 이들이다.

정보통신부는 최근 아마추어 무선통신을 활성화하기 위해 상업적 목적이 아닌 경우 형식등록을 없애고 사용검사만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국민일보 이명희기자  mheel@kmib.co.kr >   2004년 04월 25일  출처 : http://www.kmib.co.kr/html/kmview/2004/0425/09193972491116110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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