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에티오피아 운용기

             HL1IWD 이성기

 

 

 

 

 아프리카 에티오피아 운용기                   HL1IWD 이성기


2012년 7월 21일부터 26일까지 아프리카 동부에 위치한 에티오피아를 방문하였습니다.

필자는 이번이 첫 번째 아프리카 국가 방문이어서 출국 전 에티오피아에 대하여 인터넷 검색을 통하여 지식을 얻고자 했습니다.


제가 그동안 피상적으로 알고 있던 지식은 한국전쟁 참전국이며 대단히 가난한 나라이다 정도였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피상적이고 단순한 지식이었는지 여행 전 공부를 통하여 그리고 직접 에티오피아를 방문하여 보고 느낀 후, 그리고 KOICA 전 에티오피아 송인엽사무소장님의 저서 “강뉴(Kagnew)"통하여 절감하게 되었습니다.



에티오피아에 대하여

먼저 에티오피아(Ethiopia) 에 대한 소개를 드릴까 합니다.

아프리카 대륙의 북동쪽에 자리 잡고 있으며 면적은 125만 제곱킬로미터에 인구는 8400 만명 입니다.

에티오피아의 시바여왕과 이스라엘의 지혜의 왕으로 알려진 솔로몬왕 사이에 출생한 첫 번째 아들 메네리크 1세가 에티오피아의 초대 황제입니다.

커피(coffee)의 원산지로 알려져 있으며 에티오피아 카페(caffe) 지방에서 양치기 소년이 커피 열매를 발견하여 식용함으로 커피를 사람들이 마시기 시작했습니다. coffee 의 어원은 caffe 라는 지방 이름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수도는 새로운 꽃을 의미하는 아디스아바바(Addis Ababa)이며 해발 2438미터에 위치하여 연중 쾌적한 날씨이고 그림 같은 호수와 계곡 등 그 뛰어난 산하와 기후의 아름다움으로 일찍이 아프리카의 스위스라고 불렸습니다.

제가 방문한 7월은 우기로 비가 자주내리는 시기였으며 낮 기온은 23도 정도, 밤 기온은 15도 정도로, 막연히 알고 있던 아프리카의 무더운 날씨와는 전혀 상반된 날씨였습니다.


아프리카 국가 중 유일하게 자신들 고유의 문자를 가지고 있는 것에 큰 자부심을 갖고 있고 고대 에티오피아의 수도였던 악숨에서 발굴되는 유물들은 기원전에 꽃을 피웠던 그 들의 고대문명을 증언해주고 있습니다.

에티오피아는 로마제국보다도 빠른 4세기 초 악숨왕조때부터 기독교를 받아들였습니다.

아프리카 국가 중 한 번도 적에게 영토를 완전히 빼앗긴 적이 없음은 놀라운 일입니다.


1935-1940년 사이에 이탈리아가 침공하여 국가의 일부를 점령하고 지식인들을 제거하는 고난을 겪었으며 1974-1991년까지 공산화되어 사회 인프라가 붕괴되는 어려움을 겪기도 했습니다.




한국과의 관계

1950년 6월 25일 북한 공산군의 침략으로 비극의 한국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이탈리아의 침략으로 고통 받았던 경험이 있는 아프리카 국가 에티오피아의 하일레 셀라시에 1세 황제는 국제연합 (UN) 창설국의 하나로서 북한 공산군의 침략을 받고 풍전등화의 위기에 놓인 한국을 위하여 에티오피아의 일반군인이 아닌 최정예부대인 황실근위대를 한국으로 파병하게 됩니다.

1951년 5월 7일 에티오피아에서 미군 군함을 타고 21일간의 거친 항해 끝에 파병부대 1진이 부산에 도착하게 됩니다.

당시 군함에 타고 한국으로 향하던 에티오피아 황실근위대원 중 아시아에 위치한 한국이라는 나라를 알고 있었던 군인은 거의 없었습니다.

1950년대의 한국의 국민소득은 미화 50달러로서 지구상 최빈국중의 하나였기 때문입니다.


부산에 도착하여 이승만 대통령과 수많은 한국 군중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은 에티오피아 군인들은 한국의 자유를 지키기 위하여 전장에 투입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들이 겼었던 가장 큰 고통은 한국의 겨울 특히 강원도 산간 지역 고지에서 겪어야했던 엄청난 추위였다고 합니다.

1년 내내 온화한 기후 속에 살던 에티오피아 군인들에게 영하 20도를 넘나들며 눈으로 가득한 산간 고지에서 얼어붙은 참호를 파며 전투를 하는 것이 얼마나 힘들었을 것인지 충분히 상상 가능합니다.


1951년 5월 7일부터 1955년 7월 9일까지 5차례에 걸쳐 한국전쟁에 파병된 황실근위대는 총 6,037명이었습니다. 이 기간 중 북한 및 중공군과 253번의 전투를 치루어 253승, 즉 전승하였습니다.

이들의 용맹성을 단적으로 드러낸 기록이며 124명의 고귀한 목숨이 한국전쟁에서 전사하였습니다. 단 한명의 포로도 북한군에게 사로잡히지 않았고, 전투 중에도 임무를 완수하여 승리하거나 죽음을 택하겠다는 정신으로 전쟁에 임하였습니다.

이는 한국전쟁 참전국 중 유일무이한 기록으로 남아있습니다.


이들의 희생과 헌신으로 지금의 대한민국의 번영이 이루어졌음을 우리는 절대로 잊어서는 안되겠습니다.




이번 여행의 목적

공산화의 결과가 무엇인지를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국가가 에티오피아입니다.

한때 아프리카의 스위스라 불리며 아름다운 자연과 풍요로움을 자랑했던 에티오피아는 17년간의 공산화를 겪으며 사회, 경제적으로 크게 후퇴하게 되었습니다.

모든 것이 배급제로 시행됨으로 국민들은 일할 의욕을 잃게 되었고 사회 인프라도 발전하지 못해 더욱 세계무대로부터 뒤처지게 됩니다.

의료분야에서도 예외는 아니어서 사회주의 국가들에서 흔히 볼 수 있듯이 의사와 병원시설들이 극도로 낙후하게 되었고 특히 많은 국민들이 적절한 안과진료와 수술을 받지 못해 백내장 등으로 실명하게 되었습니다.

한국 외교통상부 산하 단체인 KOICA (Korea International Cooperation Agency, 한국국제협력단)에서는 한국전쟁 중 참전하여 한국의 자유민주주의를 사수해준 에티오피아에 보은하는 의미로 한국의 NGO 단체인 vision care service 와 협력하여 아디스아바바 시내의 국립병원에 한국인 안과의사를 파견하고 안과 의료장비를 지원하여 백내장수술 등을 통하여 개안수술을 적극 지원하고 있고, KOICA 전문가로 소속된 필자는 그동안 에티오피아에 지원된 예산과 장비 등이 정당하게 집행되었는지 현지 감사를 하기위하여 다른 의대교수와 함께 한국정부에 의하여 파견된 것입니다.


에티오피아까지의 여정

먼저 이번 여행은 KARL 홈페이지의 DX 교신정보란을 통하여 한국의 DXer 들에게 제가 가는 곳마다 실시간으로 소식을 전하였고 아디스아바바에서 무선국을 운용하게 될 때까지의 여정을 공유하였습니다. 함께 해주신 여러분들께 이 글을 통하여 감사드립니다.


인천공항에서 에미레이트 항공을 이용하여 출발한 후 두바이 공항에 도착. 약 6시간 정도 기다린 후 다시 에미레이트 항공을 이용하여 에티오피아의 수도 아디스아바바 공항을 향하였습니다.


인천에서 두바이로 향하던 비행기 안에서의 에피소드!

이륙 후 2시간 정도 지난 후 기내방송으로 기내에 의사가 있으면 환자가 발생했으니 도움을 달라는 안내방송이 나왔습니다. 평소 안과의사이기에 응급환자에게는 큰 도움이 안 될 것 같아서 잘 나서지 않는 편인데 여러 번의 안내방송에도 의사를 찾지 못하고 있기에 도저히 안될듯 싶어 손을 들었더니 환자에게로 안내해주더군요.

한국인 중년 여성이 갑자기 기내 복도에서 쓰러져서 바닥에 머리를 충돌한 후 의식을 잃은 상태라 합니다.

귀에 대고 말을 시켜보니 의식은 돌아온 상태로 대화가 가능했습니다.

다행히 기내 바닥이 카페트여서 외상도 없었고 혈압 등의 vital sign 도 안정적 이었습니다.

30분마다 vital sign 을 체크할 것을 승무원에게 지시 후 내 좌석으로 돌아가려하니 응급환자를 봐줘서 고맙다고 퍼스트클라스 좌석에서 편히 목적지까지 가라고 권유하더군요.

탑승한 비행기는 보잉사의 신형 항공기 A-380..하늘의 궁전 이라는 별칭을 갖고 있는 비행기답게 퍼스트클라스의 호화로움은 대단하였습니다.

좌석마다 칸막이로 분리되어있고 좌석에서 버튼으로 조작되는 전동 마사지, 퍼스트클라스 전용 샤워룸을 구비하고 있으며 전용바도 있어서 모든 주류와 음료를 무한 제공하고 있었습니다.

진료비 치고는 톡톡히 받은 편입니다.


인천 출발 후 19시간 만에 마침내 도착한 아디스아바바 국제공항청사는 새로 지어서 그런지 아주 현대적인 모습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공항을 나서서 시내로 들어가니 에티오피아의 어려운 경제 여건이 그대로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곳곳에 앉아있거나 누워있는 걸인들..시커먼 매연을 가득 내뿜으며 달리는 차량들..자동차에서 그렇게 연막탄처럼 시커먼 매연을 뒤로 내뿜으며 달리는 차량을 본 것은 정말 오랜만입니다.(jpg 이미지 1) (jpg 이미지 2)(jpg 이미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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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티오피아에서의 3박 4일

이번 여행의 주목적은 앞서 말씀드린 KOICA 출장 업무입니다.

또 하나의 부수적 목적으로, 에티오피아는 DXer 들에게 절대로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아주 진귀한 DX country입니다.

아프리카 모든 국가들이 온에어 상에서 만나기 힘들지만 특히 에티오피아는 ET3AA 와 ET3BN 단 두 개의 아마추어 무선국만이 활동하고 있어서 교신하기 정말 힘든 국가이기 때문입니다.

ET3AA 는 아디스아바바 공과대학의 클럽 무선국으로 영국인 햄인 Sid 교수에 의하여 관리되는 무선국으로 에티오피아를 대표하고 있습니다.

대학생들이 운용하는 관계로 SSB 로만 교신하고 있으며 Sid 교수 역시 CW 에 능숙하지 못하여 SSB 로 운용을 합니다.

제가 한국에 있으며 처음 교신한 에티오피아 무선국 ET3BN 은 Peter 박사에 의하여 운용되고 있는데 저는 18 MHz CW 로 교신하였고 다이렉트로 카드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출국 전 ET3AA 와 ET3BN 에게 이메일을 보냈는데 ET3AA 의 Sid 교수가 반갑게도 즉시 답장을 보내주셨습니다.

외국인은 에티오피아에서 개인국 면허를 받을 수 없으며 유일한 교신방법은 자신의 클럽국을 방문하여 운용하여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3박 4일의 출장기간동안 나무도 꽉 짜인 스케쥴에 따라 움직여야함을 잘 알고 있기에 DXpedition 스타일의 운용은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개인국 면허를 취득할 수 없다면 더더욱 힘든 운용이 될 수 있음을 직감했습니다.(jpg 이미지 4)(jpg 이미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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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디스아바바 시내에 위치한 하모니 호텔에 여장을 풀고 바쁜 일정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해발 2400 미터에 위치한 고지대여서 낮 기온이 24도 정도, 밤에는 14도 정도까지 내려가서 7월의 한국 날씨와는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었습니다. 한국과 6시간의 시차가 있어서 새벽 4시경에는 저절로 잠이 깨곤 하였습니다.

만일 개인국 면허를 발급받고 내가 아끼는 IC-706MK2 와 버티칼 안테나 정도를 설치할 수 있었다면 새벽녘에  CW 로 엄청난 파일업을 받을 수 있었을 터인데...하는 아쉬움에 일찍 눈이 떠진 새벽 시간이 그렇게 아쉬울 수가 없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호텔로 Sid 교수가 방문해 주었습니다.

79세의 영국인 노신사로 이역만리 한국에서 찾아온 생면부지의 한국인을 햄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반갑게 찾아오신 겁니다.

같이 동행한 한국인 동료들이 이 먼 곳에 와서 아는 사람이 있다고 만나러 나서는 저를 보고는 무척 놀라워했습니다.

ET3AA 무선국은 아디스아바바 공과대학에 위치하고 있으니 출장 기간 중 편한 시간에 방문하여 교신하면 된다고 친절하게 초대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시간이었습니다.

쉼 없이 이루어지는 출장 스케쥴에 도저히 시간을 낼 수가 없었습니다.


첫날은 시내에 위치한 라스데스타 국립병원 안과를 방문하였습니다.

이곳은 일전에 이명박대통령도 방문하여 현지에 와있는 한국인 안과의사 이재윤 선생과 한국인 의료진들을 격려하기도 했던 곳입니다.

주로 경제적으로 어려운 저소득층의 환자들을 진료하는 병원인데 방문한 당일도 많은 환자들로 붐비고 있었습니다.

한국에서 지원한 현대식 안과의료장비로 현지인들을 진료, 수술하고 있었으며 현지인들에게도 좋은 평가를 받고 있었습니다.


다음날은 수도 아디스아바바에서 약 3시간가량 차량으로 이동하여 피체라는 도시로 현지 병원 답사에 나섰습니다.

120만 명 정도의 주변 인구를 담당하는 피체종합병원인데 안타깝게도 안과전문의가 한명도 없는 병원입니다.

한국의 60년대 병원 정도로 낙후되어 있었으나 근무하는 10여명의 현지인 의사들은 아주 열심히 진료와 수술을 담당하고 있었습니다.

앞으로 차량을 이용하여 안과 mobile clinic 을 운영할 필요가 있다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수도 아디스아바바로 돌아오는 길에 작은 소동이 있었습니다.

고속도로로 미니버스를 이용하여 이동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에티오피아에서는 목축이 주된 산업으로 시골에서는 소와 양 들을 많이 기르는데 도로 주변을 이용하여 목동과 가축들이 걸어서 이동하게 됩니다.

시속 80Km 정도로 버스를 타고 가는데 길옆을 지나던 뿔이 엄청나게 큰 황소가 갑자기 도로 한가운데로 뛰어들어 우리가 타고 있던 버스를 향하여 급히 방향을 틀어 돌진하는 것이었습니다.

차에 탑승하고 있던 일행들은 정면충돌을 피할 수 없을 것 같은 상황에 너무도 당황하여 어쩔 줄 몰라 하는데 버스를 운전하던 현지인 젊은이는 아주 침착하게 버스를 옆으로 휙 틀어서 황소를 피하고 위기를 모면했습니다.

운전사는 전혀 위기상황이 아니었다는 듯 태연한 얼굴로 웃으며 운전을 하는데..아마도 고속도로 주행 중 자주 있는 일인 것 같았습니다.

아디스아바바 시내로 들어서니 도로 옆으로 양과 소 때가 지나가는데 한 무리의 소 때가 도로를 역주행하며 목동과 함께 도로 중앙을 달리기도 하였습니다. 한국에서는 전혀 볼 수 없는 모습에 놀랍기도 하고 웃음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택시가 무척 많은데 아주 오래된 차량들이서 매연도 심할뿐더러 주행 중 고장으로 길옆에 그냥 서있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그러면 어디선가 오토바이 탄 사람이 나타나서 수리공임을 자처하고 운전사와 합의가 되면 즉석에서 보넷을 열고 차량 수리에 들어가더군요. 그 사람이 기술자 자격이 있는 사람은 아닌 듯 보이지만 하여간에 즉석에서 노상 자동차 수리점이 차려집니다.


도로에 신호등이 많지 않아서 거의 교통경찰의 수신호에 의하여 교차로의 교통정리가 이루어집니다.

저희를 위하여 운전해주던 현지인이 교차로에서 경찰의 정지 수신호를 무시하고 직진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차량들이 워낙 뒤엉켜서 진행되다 보니 교통경찰의 수신호를 명확히 파악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는데 즉시 경찰이 차를 정지 시키고 벌금 스티커를 발행하는 것이었습니다.

운전사가 아무리 봐달라고 해도 냉정하게 벌금을 부과하고는 다시 교통정리에 들어가더군요. 그러면서 운전자의 운전면허증을 압수하는 겁니다. 벌금을 납부하면 영수증을 들고 와서 찾아가라고 하는 것 같았습니다.

운전사는 즉시 우리를 데리고 근처의 우체국으로 가더니 벌금을 납부하고는 다시 자신을 단속했던 교통경찰에게 찾아갔습니다.

수신호 중이던 경찰을 불러서는 영수증을 보여주니 바로 그 자리에서 운전면허증을 내어 주더라구요..

무질서 속에서도 이런 규칙에 의하여 자신의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는 경찰관에 의하여 이 나라가 움직이는구나..하고 생각했습니다.

교통경찰의 30% 정도는 여자 경찰이었는데 아주 능숙한 솜씨로 교차로에서 수신호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 시커먼 매연이 진동하는 곳에서 말입니다...


피체를 오가는 편도 3시간가량의 여정은 정말 즐거웠습니다.

길 양옆으로 한 없이 펼쳐진 녹색의 싱그러운 초원과 나지막한 언덕, 그리고 습지...이곳저곳에 점점이 흩어진 방목중인 소와, 말 그리고 양.. 그 옆에 가축을 몰고 다니는 목동들!

과연 이곳이 아프리카 대륙이 맞는지... 왜 에티오피아를 아프리카의 스위스라 불렀는지를 실감할 수 있는 좋은 여행이었습니다.


가난한 가운데도 항상 웃고 열심히 살고 있는 사람들, 대한민국을 공산군에 대항하여 자유를 지키기 위하여 같이 전쟁을 치룬 자신의 형제국가라고 생각하는 착한 사람들..그렇게 좋은 사람들이 가득한 나라였습니다.


과연 CQ 를 낼 수 있을 것인가?

에티오피아까지 와서 무선국을 운용하지 못하고 간다는 것을 상상하기 힘들었는데 결국은 그렇게 될 모양 같았습니다.

출장 마지막 날인 3일째에도 오전에 정부 보건국 공무원들과 오전 10시부터 회의를 진행한 후 점심 식사를 마친 후에 바로 공항으로 나가서 귀국하는 스케쥴이 짜여있었습니다.

일단 ET3AA Sid 교수에게 무척 미안했습니다.

어떻게 해서라도 CQ 낼 기회를 주겠다고 많은 애를 써주었는데 결국은 단 한 번도 마이크를 잡아보지 못하고 귀국한다는 것이 참 안타깝기 이를 데가 없었습니다.

아프리카에서 CQ 를 내보겠다는 나의 꿈은 이렇게 이루지 못하는 걸까?

아침부터 혼자서 엉뚱한(?) 심란함에 아침 식사도 대충하는 가운데...

희소식(?)이 전해졌습니다.

보건국과의 회의가 취소되었다는 낭보가 전해졌습니다!


즉시 Sid 교수에게 전화를 하여 오후 4시 출국이니 그전에 대학 무선국을 방문하여 운용해보고 싶다고 전하니 역시 무척 기뻐하며 대학 위치를 알려주고 학생 한명을 정문으로 내려 보낼 터이니 운용을 하고 가라고 친절히 안내해주셨습니다.

현지인 운전사에게 아디스아바바 공과대학으로 가자고 부탁을 하고 40여분 걸려서 드디어 대학에 도착하였습니다.

건물 5층 옥상에 웅장한 로그피리어딕 안테나와 타워가 보이는데...어찌나 반갑던지...

학생 한명이 문 앞에서 반갑게 손을 흔들며 맞아주어 그를 따라서 단숨에 5층 계단을 뛰어 올라 무선국에 들어섰습니다.


아~~~!

여기가 ET3AA 무선국이구나..

눈에 익은 모습.

가지런히 정리된 리그와 로테이터, 파워써플라이, 로그북, 컴퓨터 등...

세계 어느 곳이든 무선국의 모습은 동일합니다.

반갑게 환영해주는 대학 무선국 동아리 남,녀 학생들.

현지 시간으로 오전 11경이어서 14MHz에서 한국이나 일본과 교신하기는 힘들 것으로 생각되어 일단 유럽 쪽으로 안테나 빔을 돌려놓고 SSB로 CQ 를 내어봅니다.


“CQ CQ CQ this is ET3AA Echo Tango three Alpha Alpha standing by"

30여분을 외쳐 보았으나 전혀 응답이 없습니다.

CW 주파수에서 들어보니 OK(체코) 등 유럽 신호가 들어오기는 하는데 무선국에 있는 CW 키들은 다 고장 나서 작동 불능 상태!

CW 로 CQ 를 내면 충분히 유럽과 교신이 가능하겠으나 CW mode 를 사용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무선국에 있던 학생들도 지켜보며 응답이 없어 안타까운지 인터넷 DX summit 에도 올려주고 옆에서 주파수도 자신들이 평소에 CQ 내는 주파수로 바꾸어주면서 열심히 도와주지만 역시 무응답! 공항에 가야하는 시간도 고려해야 하기에 아..결국 교신 못하고 가는구나...하고 실망할 무렵.


전형적인 에티오피아 미인 형으로 생긴 예쁜 여학생 한명이 자신이 한번 CQ 를 내보겠다고 나섰습니다.

"CQ CQ This is ET3AA ET3AA calling CQ and standby over"

CQ를 내기가 무섭게 오스트리아의 OE6NKG 무선국이 응답해 옵니다.

아...역시 무전에서는 YL의 목소리가 OM 보다 출력이 약 10 킬로와트는 더 강력한것 같습니다...hi!

일단 입질이 왔으니 마이크를 저에게 넘깁니다.


“ OE6NKG this is ET3AA. Thank you for the calling. You are 56, five by six.

My name is Lee, Lima Echo Echo and QTH is Addis Ababa, the capital of Ethiopia. How do you copy?  OE6NKG this is ET3AA over"

YL 목소리에서 OM 목소리로 갑자기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14MHz에서 아프리카의 진국 ET3AA 를 만난 오스트리아 햄은 더욱 신이 났습니다. 너무 흥분해서 숨이 가쁜지 높은 톤으로 이야기 합니다.


“ET3AA this OE6NKG. Good afternoon! Thank you for calling and you are my first Ethiopia station in my life! You are 59, five by nine. Very strong into Austria. My name is  Norbert and QTH is Florian in Austria. Who is your QSL manager? ET3AA this OE6NKG over"

생애 처음으로 에티오피아 무선국을 만난 오스트리아 햄은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나의QSL manager 가 누구인지 질문해옵니다.


“OE6NKG this is ET3AA. My home call sign is HL1IWD. I came from South Korea. Please send your card to my home call sign. OE6NKG this is ET3AA"

카드를 홈 콜사인인 HL1IWD 에게로 보내달라고 당부를 하였습니다.


“QSL Lee! Thank you for QSL information! I will send my card to your home call sign. I am so happy to meet ET3 station today. You are first Ethiopia station in my whole life and so happy! Best 73 and good luck for your trip! ET3AA  this is       OE6NKG over"

다시 한 번 자신이 생애 처음으로 에티오피아 무선국을 만나게 된 행운에 감사하며 여행을 잘 마치고 귀국하라고 인사를 전해줍니다.


"QSL! Thank you for the good contact and I am also very happy to be the first ET3 station for you. I hope to meet you again with my home call sign. Good luck and best 73 from Addis Ababa, Ethiopia. Bye bye!"

저도 역시 그를 만나서 무척 즐거웠음을 감사하며 나중에 한국에 귀국하여서 다시 교신하게 되기를 기대하며 아쉬운 작별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오스트리아국과의 교신이 끝나기 무섭게 다른 유럽국이 호출해 옵니다.

전파 상태는 그리 썩 좋지는 않았으나 연속하여 총 11국의 유럽국과 14MHz SSB 교신을 성립 시켰습니다.

단 한 국과의 교신만이라도 성립 시켰으면 좋겠다던 바람이 무려(?) 11국과 교신을 하게 되니 무척 기뻤습니다.

전파 상태가 조금씩 호전되어 유럽국들이 계속 나오는 것 같았지만 이제 공항으로 출발하여 여유 있게 출국 준비를 해야 할 시간이기에 아쉬움 속에 학생들과 작별을 하였습니다.

비록 11국만 교신을 하였으나 무척 만족스러웠습니다.

아프리카에서 CQ 를 내고 교신을 성립시켜보고 싶던 나의 꿈 하나가 성취되었기 때문입니다.(jpg 이미지 6)(jpg 이미지 7)(jpg 이미지 8)(jpg 이미지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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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디스아바바 국제공항으로 향했습니다.

비록 짧은 여행이었으나 생애 처음으로 아프리카에 와봤고 대한민국의 오랜 형제 국가 에티오피아의 착한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아름다운 자연을 많이 봤으며, 그 들에게 의료 분야에서 우리의 많은 도움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보고 깨달았기에 KOICA 를 통하여 한국 정부에 그대로 보고 하리라 생각하였습니다.

이글을 읽는 독자 여러분들도 아프리카의 에티오피아...한국전쟁 중 군인들을 파병하여 우리 “대한민국의 자유와 번영을 지켜준 형제의 나라”를 잊지 말고 앞으로도 많은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성원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사진 설명

1.에티오피아 국제공항 앞에선 필자

 

2.아디스아바바 시내 모습

 

3.시내에 즐비한 택시들

 

4.빵에 고기와 야채 그리고 카레소스를 싸서먹는 전통 음식


5.초등학교벽에 그려진 아프리카 지도


6.ET3AA 무선국의 안테나

 

7.필자 대신 CQ 를 내주었던 착하고 이쁜 여대생

 

8.ET3AA 의 지도교수인 Mr. Sid

 

9.교신중인 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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