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RL창립 50주년 기념 해외원정기

한국DX클럽 KDXC DX-Expedition 2005  
H40HL Temotu,  H44HL Solomon

                                                                                                 한국DX클럽 KDXC     6K2AVL 윤용주 

 

 

 

 

                                                  

 원정기를 기고하며...

귀국하여 집으로 돌아 온지 여러 날이 지났다.

어떻게 적어나가야 할까... 어떻게 그 곳에서의 느낌과 모험을 몇 줄의 글로 적을 수 있을까..

어쩌면 나에게 있어 아직 이 글을 적기엔 시간이 너무 이를지도 모른다.

나는 아직 그곳 솔로몬에서 돌아오지 못했기 때문이다.

가슴이 시원하게 탁 트인 망망대해-남태평양. 흥겨운 그들의 음악은 넘실대는 물결을 닮은 듯 하고,

늘 조용하기만 한 바닷가 부서지는 파도는 그곳의 옛이야기를 들려주는 듯 하다.

문명이 존재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인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오늘은 우리의 과거인가 미래인가..

이미 백여 년 전부터 남태평양의 섬들은 유럽인들에게 행복의 의미를 반추하게 하는 곳이었다 한다.

나에게도 역시 그러했으며, 함께 한 동료들도 그러하였으리라...

테모투에서 떠나오던 날, 원정기간 내내 나를 따라다니던 총명한 원주민 소년이 헤어지는 것이 서운해 숨어서 흘리던 눈물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출발하려는 비행기에 오르다 말고 그 소년에게 인사를 하지 않고서는 너무나 후회가 될 것 같아 뒤돌아 활주로를 달리던 내가 믿기지 않는다.

HAM이 되어 DX에 빠지게 된 이후 늘 동경만 해오던 DX-Expedition을 다녀왔다.

DX... 왜 DX를 하는가.. 이러한 질문들을 원정기간 내내 내 자신에게 묻고 물었다.

세상에서 더 없이 편안한 모습, 무엇하나 보태거나 뺄 것이 없는 아름다운 미소를 지으며  붉게 물든 LATA만의 저녁노을을 바라보던 원주민 소녀에게서 느껴본다.

내 삶에 있어, DX가 소녀의 아름다운 노을처럼 그렇게 남아주었으면 좋겠다.

 

한국DX클럽 KDXC의 KARL창립 50주년 기념 DX-Expedition H40HL Temotu,  H44HL Solomon을 실현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 우리 연맹과 DX를 사랑하시는 국내외 동호인 여러분들... 그리고 바쁘신 업무에도 불구하고 원정팀을 돌보아주신 우리의 자랑스런 한국인들 (주)이건 퍼시픽 임직원 분들과 현지인 직원 Mr 조지 나테이에게 감사와 경의를 표하며 이 글을 시작한다.

 

 원정계획수립 - 이제 우리도 DX-Expedition을 떠나자.

 이미 여러 차례 클럽의 회의에서 거론되었던 KDXC의 해외원정 계획들...

"우리도 DX-pedition 한번 가봅시다. 꿈만 꾸지 말고 이제 실행에 옮겨 봅시다 !!"

2004년 11월 필리핀 세부섬의 늦은 밤, 교포가 운영하는 식당에는 필리핀 HAM들의 행사인 "72nd PARA ANNIVERSARY and HAMVENTION"에 참가중이던 HL2XIQ, HL5FUA, DS2AGH, DS2BGV, 6K2AVL 이상 5명의 KDXC, 한국DX클럽 회원들이 조촐하게 술자리를 벌이고 있었다.
한낮에 내렸던 스콜의 물기를 머금은 이국의 밤하늘엔 삼겹살 익는 연기가 피어오르고,  DX'er들이 모인 자리라 역시나 화제는 DX뿐이었다.  
아마도 복잡한 일상을 잠시 접어두고, 다들 DX만을 위해 3박4일간 이국에서의 시간을 보내고 있던 터, 더욱이 밤새우는 것쯤이야 이미 DX를 통해 단련된 사람들이니, DX이야기, DX원정이야기는 밤이 깊은 줄 모르고 이어진다. 결국 그날 밤, 우리는 지구상의 어느 곳으로 Pile-up을 찾아 DX원정을 떠나기로 결의한다.

귀국 후 생업에 복귀했다가 약 한 달여 뒤인  겨울의 어느 날  우리는 세부에서의 원정결의 후, 각자가 조사한 원정운용에 관련된 자료와 의견들을 가지고 인천에서 다시 모였다.

원정운용을 갈 곳을 정해야 할 터인데, 주 서비스 대상을 유럽으로 정하고 태평양 상의 T88, P29, YJ, 3D2, 그리고 H40등의 후보지를 두고 의논을 시작했다. 의논은 하고 있지만 각자의 마음엔 이미 H40, Temotu를 바라고 있었다.

당시 우리가 조사한 바, H40 Temotu 그곳은 여행길은 멀고, 교통편도 매우 불편한, 솔로몬 정부의 행정력조차 제대로 미치지 않는다는 오지였기에 엄두가 안 날뿐  다들 그곳이 DXCC Entity중 Rare가 높다는 건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DXCC Rare를 기준으로 원정 Entity를 결정하는 것은 DX'er인 우리에겐 너무 쉬운 일이었다.

하나의 팀을 만들어 그곳 H40, Temotu로 원정운용을 나가는 사전의 준비과정이나 여정이 쉽지는 않으리라

생각했지만, 주저하지 않고 우리는 결정했다.  (일단 부딪쳐 보자. 쉽고 편안하면 그게 Expedition 인가??)

원정 목적지가 H40, Temotu이고 중간에 경유해야할 H44, Solomon 에서의 체류 시간이 얼마나 될지 모르지만, H44에서의 운용도 함께 추진하기로 했다.

그러나 우리의 원정계획은 꿈이었다. 그 꿈을 현실로 만드는 과정이 쉽지 않았다.  H40, Temotu 에 가는 방법이나, 솔로몬 정부로부터의 운용허가 관련  그리고 그곳의 기초적인 정보가 너무도 부족했으며.  인터넷을 통해 수집한 정보는 그 양에 비해 소득은 거의 없었으며, 그 정보들은 현지에 도착하여 보니 10년은 지난 과거의 정보였다.

습득한 정보들을 신뢰해도 좋은지, 그 신뢰성을 검증하느라 많은 노력이 있었으며, 결과는 매우 난감했다.

솔로몬에는 연락을 취해볼 교민을 찾을 수 없었으며, 솔로몬 정부나 솔로몬 항공은 E-mail을 보내면 답장이 안 오던가, 또는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다행히 받게 된 답장에는 명료하고 상식적인 내용..  때로는 모든 것이 긍정적인 편지 내용... 그때 우리는 잠시나마 기대 이상의 상식적인 상황전개에 크게 고무되었었다.  

그러나... 우리 팀은 3달여의 시간과 적지 않은 노력이 소요된 후 그들이 보내온 정보들과 안내가 신뢰 할 수 없다고 씁쓸한 결론을 내려야 했다.  그래서 그곳을 지구상 드물게 남은 오지라고 했던가..

기획 초기부터 우리는 H40에서의 역대 운용자들이나, 원정운용 경험이 있는 외국의 DX'er들에게 정보를 보내달라는 부탁도 했지만,  그 역시 우리에겐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이유는 아예 답장이 없던가, 아니면 이미 솔로몬 현지에서 받았던 원론적인 대답이었기 때문이다.

다양한 루트를 통해 우리가 파악한 그곳의 유용한 정보는 결국 어느 부분도 확신하거나, 신뢰할 수 없다는 것  단 하나였다. DX-Expedition을 준비하기 위해 필요한 정보들을 얻기 위해 세계 각지의 HAM들에게도 우리의 계획을 조심스레 알리며 길을 알려달라고 했더니 돌아온 것은 "행운을 바란다" 뿐이었다.

HL에 의한 원정기획과 구성, 면허의 취득, 장비의 수송, 현지에서의 운용 등의 원정경험과 그 기록이 전무한 것이 우리의 현실이며, 우리는 그러한 기록들이 후일 얼마나 중요하고 효율적인 것인가를 깨닫게 되었다.

하여튼 우리 팀은 원점에 그대로 서있지 않은가... 몇 달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아무 것도 얻을 수 없었으며, 원정을 떠나자던 결의 당시의 충천했던 사기도 2005년 초여름의 더위와 함께 시들어 가고 있었다.

 H40HL 그 천재일우의 기회를 잡다 !  

 원정을 떠나기로 했던 우리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다짐했던 "우리는 가야한다 " 라는 원정운용을 향한 의지가 많이 무디어 질 무렵..  

천재일우(千載一遇) 좀 과장된 인용일까..  

어느 날 정오 무렵, HL5FUA 오엠으로부터 팀원들에게 격앙된 목소리로 전화가 왔다.  

그 동안 여러 차례 시도했지만, 여의치 않았던 (주)이건산업의 솔로몬 현지 법인인 이건퍼시픽에 근무하는 한국인 직원분과 통화를 했으며, 이번 운용의 의미와 개략을 설명하였더니, 고국의 본사직원들과 협조하여 가능한 모든 지원을 해주시겠다는 대답을 했다며, 인천에 있는 본사의 임원분과의 만남을 주선해 주신다고 하셨으며.  아울러 향후를 위해 본인과의 통화가 용이한 시간을 알려주셨다는 것이다.

원정을 기획한지 반년만에 듣는 대단한 소식인 것이다. 그 동안 한국인 직원한테 메모를 전해달라고 솔로몬으로 수없이 많은 전화를 거셨던 끈질긴 노력이 빛을 발한 것이다.

수일 후 우리 팀은 또 한번 놀라게 된다. 솔로몬 현지로부터 소개받은 인천의 (주)이건산업 본사에 계시는 직원분을 만나기 위해 DS2AGH, DS2BGV 두 분 오엠이 가셔서 점심식사를 함께 하며 솔로몬 이야기를 꺼내는데, 본인보다 더 여러분에게 도움이 될 사람이라며 다른 한 분을 소개시켜 주시더란 것이다.

소개받은 다른 직원 분은 이미 솔로몬에서 근무하신 경험이 있고, 몇 일 후 다시 몇 년간의 파견을 위해 솔로몬으로 출국하신다고 하셨단다. 출국 전에 우리가 궁금해하는 것들과 하고자 하는 것들을 얘기하면 현지에서의 경험으로 계획을 현실적으로 추진 할 수 있는 조언을 해줄 것이고,  최종적으로 체크 리스트를 받아 솔로몬에 입국하여 조사한 뒤 알려주기로 하였으며,  솔로몬에서의 운용허가도 본인이 직접 관청에 찾아가 받아주겠노라 했다는 것이다.  

이것이 꿈인가 생시인가... 일주일 뒤 솔로몬으로 가시는 분을 만나게 되고 그분으로부터 도움까지 받을 수 있다고 하니, 솔로몬의 아무런 정보도 없던 우리에겐 이 어찌 천재일우의 기회라 아니 할 수 있겠는가 !!

이로써 우리 원정팀은 원정준비에 탄력을 받게 되고, 본격적인 추진을 시작하게 된다.

 무게 2톤에 달하는 장비를 보내라

 전파상태가 바닥인 시점에서의 원정운용..  하이밴드보다는 로우밴드 서비스가 필요한 엔티티특성 등을 감안하여 장비목록을 작성하여보았다.  될 수 있으면 로우밴드를 주 서비스 밴드로 하기로 하였다.

까닭은 현재의 밴드컨디션과 관계되어 로우밴드를 새롭게 시작한 햄들이 많다는 것, H40 정도라면 로우밴드 에서는 컨트리 서비스로서 유럽과 북미의 햄들에겐 좋은 선물이 될 것이라는 점이다.

KDXC 내부.. 많은 의견이 제시되고 수 차례에 걸친 회의 끝에, 강력한 신호의 운용을 위해 안테나등의 시스템을 최대한 가져가자는 합의를 하게 되었다. 원정무선국의 시스템 구성은 현재의 밴드컨디션을 감안하고, H40에서의 역대 운용들이 대부분 개인에 의한 운용이었던 바 안테나등 그 장비의 구성이 비교적 빈약했던 점을 고려한 것이다.  

무선국 운용에 필요한 장비를 최대한 가져가기로 했지만, 무엇하나 예측할 수 없는 원정지에서의 생존에 필요한 식량과 의약품, 생필품 그리고 안테나들과 TRX, AMP등의 무선국 장비들의 무게가 합산하면 최소 2톤이었다.  어떻게 가져갈 것인가.. 가장 확실한 장비운반은 DX페디션의 클래식컬한 방법이라 할 수 있는 사람과 장비가 배를 이용하여 가는 것이다. 그동안 우리가 교신에 성공하여 환호했던 대부분의 DX운용은 배로 이루어 졌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DX페디션에 있어서 시간은 돈이다. 시간을 단축하려면 그에 비례하여 더 많은 예산이 소요되는 것은 당연하다.  앞으로 DX페디션을 나가게 될 HL들에게 조언한다면 전 팀원이 최소한 20일 이상, 넉넉하게 한달 정도의 휴가가 가능하여야 한다는 것을 염두에 두라는 것이다. 이것은 가장 큰 난관이다.

DX페디션팀의 구성원은 DX에 대한 강한 의지로 무장되어져 있어야 함은 물론이고, 야전에서 모든 것을 해결 할 수 있는 이론과 실기와 실전경험이 겸비되어져야 한다. 이러한 요소들을 충족하는 사람들로 이루어진 원정팀을 구성하는 것, 그것이 DX페디션의 1차 전제 조건인 것이다.  그래서 DX페디션은 Solo operation과 다른 것이다. 각기 다른 생업을 가진 사람들이 업무와 관련 없이 같은 시기에 장기간의 휴가를 내고, 팀원 각자는 원정에 필요한 경비를 기꺼이 부담하여야 하는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전까지 DX페디션은 그저 좋은 생각일 뿐이다. DX페디션 팀은 정확한 목표를 갖는다.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치밀한 계획과 수없이 많은 사전 조율이 필요하게 된다.)    

우리도 원정에 필요한 장비들을 직접 가지고 갈 수 있다면 좋겠지만, 15일간의 시간만 가능했던 우리는 배타고 다닐 시간이 없었다.  그렇다고 2톤이 넘는 장비를 항공편으로 운반하는 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많은 경비가 소요되는 것은 당연하다 하더라도, Rare Entity에는 큰 비행기가 없을 테니 말이다.  

우리 팀은 이와 같은 난제들을 솔로몬 현지의 (주)이건 퍼시픽에 문의하고 협조를 구했다.

너무나 고맙고 다행스러운 답변이 왔으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화물을 선편에 미리 보내면 현지에서 화물의 통관, 인수 및 테모투로 향하는 선박의 임대와 그 운반,

또한 솔로몬 호니아라에서 테모투의 라타까지 화물이 운반되는 동안 화물의 분실방지를 위해 테모투 출신의 현지인 직원 조지 나테이 라는 분을 배에 탑승시킨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직원분을 통해 산타크루즈의 숙박시설도 예약해 줄 것이며, 미리 보낸 화물을 본진이 현지에 도착 할 때까지 관리하여 주신다는 것이다.  

우리는 경비를 절감하기 현지에서 5Kw발전기 3대를 임대할 수 있는지 다시 문의했고,  가능하다는 회답을 받았다. 국내에서 임대하면 배가 태평양을 왕복 항해할 5~6개월간의 발전기 임대료를 지불하여야 했기 때문이다. 원정운용에 있어 그 사전준비 역시 원정의 한 과정이며, 우리는 그 업무를 적절하게 분담하였다.

운용면허취득, 홈페이지 구축, 동영상 촬영 및 편집, 금전 출납 등의 업무는 HL5FUA, 원정의 국,내외 사전홍보와 DS2AGH, 운용장비의 준비와 포장, 통관, 검역, 해상운송, 항공편 수배 등의 업무는 필자가 책임을 맡아 원정계획을 추진하였으며, 그 과정에서 우리는 많은 것을 학습해야만 했다.

일본, 홍콩, 시드니를 경유하는 선편에 솔로몬으로 화물을 보내고 나니, 뜨겁던 여름도 끝나가고 있었다.

9월 말경 우리는 솔로몬 정부에 무선국운용을 위한 면허를 받기 위해 필요한 서류를 발송하였으며, 10월 초순에는 미리 발송한 화물을 현지에서 인수할 때 필요한 서류들을 구비하여 발송 완료하였다.

솔로몬은 국제특급우편이 서비스가 안 되는 지역이다. 대체 수단으로 TNT 시스템을 사용하였다.

솔로몬과 테모투행 비행편의 예약도 10월 중순에 완료하였는데, 이때 여행사에 근무하시는 HL5FOP 정상엽 오엠께서 절대적인 도움을 주셨다. 서면을 통해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

원정을 위한 국내에서의 준비가 거의 끝나고 원정팀은 각자 병원을 찾아 말라리아를 대비해 처방전을 받아 말라리아 예방약을 출국 2주전부터 복용하기 시작, 귀국 후 3주간 더 복용해야 했다.

남태평양의 말라리아는 동남아시아의 말라리아보다 훨씬 위험하다고 한다. 솔로몬 인접국가인 파푸아 뉴기니아를 다녀온 연애인이 말라리아로 사망한 이야기를 전해들은 우리는 성실하게 약을 복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의사의 처방은 팀원 4사람 모두 달랐는데, 우리는 각자 자기가 살고있는 지역의 의사가 최고라며 자기 처방전을 자랑했다. 약은 다르지만, 모두 일주일에 1정씩 복용했는데 6K2DJM 오엠만 약을 매일 복용하는 처방전을 받아왔다. 말라리아약은 매우 독했는데, 몸이 녹아드는 듯 기운이 빠지고, 피곤하기도 하여 휴식이 필요할 정도였다. 원정기간동안 6K2DJM 오엠은 거의 매일 약 때문에 피곤하다며 잠을 많이 자야했다. HI..

말라리아는 남태평양의 국가를 방문하는 여행객들이 가장 주의해야하는 질병이다. 우리는 모기에 물리지 않기

위해 모기장 3개와 시중에 나와있는 모기약이란 모기약은 다 준비했고, 그것도 모자라 소형 전기충격식 살충기까지 화물편에 미리 보냈었으며,  그 기계는 철수할 때 현지에 기증하고 나왔다.

위와 같은 준비에도 불구하고 원정기간동안 모기에 많이 물렸지만,  다행히도 원정팀 전원 아무 이상이 없었다.

DX페디션을 위해 출국하는 날이 다가올수록 세계 각국에서 보내오는 E-MAIL이 늘어났으며 그 답장을 쓰는 것도 일이었다. 이미 더위가 한창이던 여름에 425 DX NEWS를 필두로 세계각지의 DX관련 뉴스와 인터넷 게시판에는 KARL 50주년을 기념하는 우리의 DX페디션에 대한 기사가 실리기 시작했다.

폴란드의 DX클럽은 자신들의 웹사이트에 우리 원정을 소개하는 특집기사를 원정팀의 동의를 얻어 게재하였고 미국의 연맹인 ARRL 발행 QST지 10월호에는 H40, Temotu의 위치와 그곳에서의 역대 DX페디션 그리고 다음달로 다가온 HL최초의 DX페디션인 H40HL 원정소식이 자세하게 실렸다.

 원정팀의 난관

 원정팀의 구성은 당초 6인 이었으나,  부모님의 노환과 회사의 급작스러운 사안들로 인해 최종적으로는 HL5FUA, DS2BGV, 6K2DJM, 6K2AVL 이렇게 4사람이 출발하게 되었다.

원정팀이 미리 보낸 장비들은 동시에 3개의 밴드에서 운용할 수 있는 시스템 이었다.  4사람의 OP로는 매우 힘든 운용이 예상되었지만,  우리는 계획대로 강행해야 했다. 그것은 전세계 DXer들을 향한 약속이기 때문이었다.   

준비과정에서 참으로 다양하고 빈번한 여러 가지 변수들이 있었기에 우리 팀은 늘 긴장해야 했으며, 출발5일전부터 원정팀은 매일 모든 준비사항을 반복하여 혹시나 있을 오류들을 점검했다.

모든 것이 문제가 없다고 확신이 생길 무렵인 출발 2일전... 우리는 솔로몬으로부터 급보를 받았다.

원정팀이 솔로몬의 호니아라를 경유하여 테모투에 도착하는 날보다 미리 현장에 도착시키기로 했던 원정팀의 화물을 선적했던 테모투행 화물선이 고장으로 인해 호니아라로 회항했다는 것이다.

8월에 화물을 보낼 때 이미 지체 될 것을 우려하여 한 달 이상의 시간적 여유를 두고 화물을 보냈지만, 화물을 실은 컨테이너는 호주 시드니에서 솔로몬행 화물선이 결항하는 탓에 3주간 묶여 있었고, 간신히 솔로몬 호니아라에 도착한 화물은 결국 테모투로 가다가 돌아오고 만 것이다.

출발 전날에는 솔로몬 현지에서의 갖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화물을 운반할 다른 배를 구할 수 없다는 연락이 오고야 말았다.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내일이 출발인데...  우리는 어떠한 대책도 세울 수 없었다.  

우리는 전 세계 햄들을 향한 우리의 약속을 지키지 못할 수도 있다는 걱정을 안고 인천국제공항 신도시의 호텔에 투숙했다.  다음날 새벽 비행기를 타야 했기 때문에 예정된 합숙이었다.

그렇게 꿈꿔오고, 1년을 준비한 그 원정의 출발 전야이건만, 우리는 즐거워 할 수가 없었다. 원정을 떠나는 우리를 격려해 주시기 위해 함께 밤을 보내던 KDXC의 임원들과의 회의가 이어졌다. 우리는 현지에 가서 상황을 파악하고, 그에 맞는 대책을 세우기로 했다. 아니 그렇게 밖에 할 수가 없었다.

자는둥 마는둥 거의 뜬 눈으로 밤을 보내고 차가운 새벽공기를 마시며 우리는 공항으로 향했다.

차안에서 KDXC 회장이신 HL1XP 오엠께서 웃음을 잃은 나를 보고 말씀하신다..   "너무 걱정하지 말아... 지금껏 KDXC의 원정이나 행사는 다 힘들었지만, 우리는 하나가 되서 잘 해냈거든.. 잘 될거야 ! "   

그동안 KDXC는 80년대 말 창립과 함께 크고 작은 국제컨테스트에 참가 입상하여 왔으며, 국내 최초의 전신 컨테스트인 KDXC 컨테스트를 개최하여 CW매니아를 위한 시간을 마련 하여왔다.

또한 일찍이 4차례에 걸친 New IOTA의 성공적인 운용으로 우리나라의 4개 섬들에 새로운 IOTA번호를 RSGB로부터 부여받았고 국가안보상의 이유로 불가능했던 강원도 조도에서의 3일간의 철야교신를 성공하였고, 우리나라 DX의 저변 확대를 위한 한국DX컨밴션을 지속적으로 개최하였으며, 그러한 활약들은 ARRL의 DXCC 필드체커를 우리나라에 탄생시키게 되는 원동력이 되었던 것이다.

또한 그동안 외국의 감독관을 초빙하여 치루어 왔던 미국 면허취득을 위한 FCC면허시험도  KDXC 회원의 감독관 자격취득을 계기로 더욱 활성화 되고 있으며 많은 동호인들이 KDXC주최 FCC 면허시험을 동해 FCC 자격을 취득하였다. 역시 우리나라의 많은 DXer들은 KDXC를 통해 DXCC어워드 신청과 그를 위한 카드체크를 국내에서 손쉽게 이용하고 있다.

이 같은 모든 행사나 기획과 운용에 있어 그것은 늘 새로운 도전이었으며, 결코 쉽지 않았음을 우리는 기억한다. 그러한 난관과 역경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KDXC 모든 회원들의 헌신적인 노력과 협력이었으며, 이 모든 활약들은 한국 DX의 역사를 써내려온 KDXC의 빛나는 전통인 것이다.   

(이번 H40HL원정 기간 중 물심양면으로 지원하여 주시고, 전폭적인 성원을 보내주신 전국의 KDXC회원들께 원정팀의 뜨거운 동지애를 보냅니다. KDXC는 DX를 시작하시는 분들의 참여를 환영합니다. KDXC는 또 다른 해외원정을 준비중이며, 세계 각국의 DX클럽들과의 우호증진을 통한 국제교류를 나누고 있습니다. 우리 나라 DX의 중심에서 세계로 뻗어 가는 KDXC와 함께 하시기 바랍니다)  

 

연맹이사장이신  HL1AGG 오엠께서 그 이른 아침 시간에 공항까지 배웅을 나오셔서 출발하는 원정팀을 격려해 주셨다.

비행기가 이륙하고 이제 생사고락을 함께 할 원정팀만 남았다.  서로를 한번씩 바라본다.. 담담한 얼굴들. 미친 사람들... 아무 대책 없이 남태평양의 섬나라로 DX페디션을 가다니...

그러나 우리는 웃어야했다.  그 순간 우리는 우리팀에게 왠지 모를 자신감이 충전되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싱가폴을 경유하여 호주 브리스베인에 도착했다. 솔로몬 행 비행기를 갈아타려면 두 시간의 여유뿐.. 두 시간 동안 호주에 입국심사장을 통과하여 원정팀의 수하물을 찾고 솔로몬 에어라인의 현지 에이전시를 만나 티켓을 건네받고, 발권창구로 가서 솔로몬행 비행기의 탐승권의 발권 받으며, 수하물을 다시 맡긴 뒤 호주를 출국장을 통과하여 드디어 우리는 솔로몬행 비행기의 좌석에 앉을 수 있었다.  왠지 모를 편안함...

흑색 피부에, 얼굴에 문신은 이미 지웠지만 그 흔적이 선명하게 남아있는 스튜어디스..  그 승무원들은 우리일행이 솔로몬에서 나올 때도 그 사람들 그대로였다. 국적기인 솔로몬 에어라인은 자국의 비행기가 정비중이어서 에어 나우루나 바누아투 에어라인을 대신 운항시켰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솔로몬의 국제선과 국내선 4편의 정기편과 1편의 전세편을 모두 솔로몬 에어라인에서 구입하였는데, 단 한번도 솔로몬 국기가 그려진 비행기를 타본 적이 없다.  모두 정비중인 것이다.  

일찌감치 눈치 챘어야 했는데...!!!  아무튼 우리 일행을 애먹인 솔로몬 비행기들과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잠이 들었다가 깨어나니 창밖엔 구름이 가득한데, 비행기는 선회하며 고도를 낮추고 있었다.  솔로몬의 상공에 도착한 것이다.  구름사이로 산들이 보인다.  너무 갑자기 가까이 보이는 산들에 놀랐다. 울창한 밀림뿐이다.  잠시 후 우리가 탄 비행기는 호니아라 국제공항에 무사히 착륙했다.

맨발의 공항직원들... 활주로의 아스팔트가 내뿜는 열기가 뜨끈하다.  솔로몬의 입국을 위해선 비자가 필요한데, 다시 나올 비행기표만 있으면 즉석에서 비자를 발급하여 준다.  

바쁠 게 하나도 없는 한적한 국제공항이었다. 바쁜 사람들은 오직 우리들 뿐..  그곳 H44 솔로몬은 우리에겐 작전지역일 뿐 이었다  

일분이라도 서둘러 입국절차를 마친 뒤, 회항하여 되돌아온 화물선에 실린 화물을 찾고, 다른 수송대책을 조사, 결정하여야 하며, 그리고 즉시 안테나를 가설한 뒤, H44에서의 운용도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원정팀과 솔로몬의 시계는 그 초침의 속도가 달랐다.  서둘러야 했다. 솔로몬의 관공서와 기업들은 오후 4시면 업무를 끝낸다는 말에 우리는 뛰어 다녀야 했다.

원정팀은 우선 호니아라항 인근의 선사들 중 유력한 한곳을 찾아갔다. 배를 전세 내어 테모투까지 화물을 보낼 생각을 한 것이다. 한참동안의 교섭... 밀고 당겨본 결과 배의 1박2일 용선료가 원화로 1,200만원 정도이며, 그것도 삼일 뒤에나 출발이 가능하다고 하니...  재고의 여지가 없었다.

원정팀은 어쩔 수 없이 가지고 간 장비들 중 중요한 장비만 다시 챙겨서 비행기로 싣고 가는 방법을 모색하기로 하고 솔로몬 에어라인 본사가 있는 시내로 향했다. 우리는 솔로몬 에어라인의 비중 있는 간부를 찾아갔고, 우리의 목적과 운반하고자하는 장비들의 내역과 무게등을 설명하고 비행기로 운반해 줄 것을 부탁했다.

유승상 팀장님께서 역시 동행하여 주셨으며 (주)이건 퍼시픽의 명성은 간단하게 "Yes" 라는 답을 받아주었다.

원정팀은 300Kg 이내의 범위에서 화물을 운반해 주겠다는 답변에 뛸 듯이 기뻐했다.  그 대신 3개의 좌석을 더 구매하여 달라고 하였다.  우리일행은 가이드인 조지 나테이 까지 5인이었고 추가로 3개의 좌석을 더 구입하여 총 8좌석의 왕복 항공권을 구입하였다.  원래 이용하기로 했던 토요일 오전의 정기 비행편을 이용하여300Kg의 화물을 운반하기로 한 것이다. 그 정도면 그런 대로 시스템을 갖추어 갈 수 있었기에 원정팀은 감지덕지 기쁘기만 하였다.  솔로몬 에어라인에서의 일을 보고 나오려니 이미 오후 4시가 넘었다.   

그렇게 걱정했던 장비운반문제를 해결하고 나니 배가 고파왔다. 하지만 식사를 할 시간이 없었다.  

곧바로 (주)이건 퍼시픽의 잔디밭에 안테나를 가설하기 시작했다. 해가 지고 있으니 우선 40m 2ele 야기를 조립하여 H44HL의 운용을 시작하기로 했다.  빗속에서의 작업을 강행하여 이동식 쟈키타워를 조립하고 2ele 모노밴더 야기를 올렸다. 지상고 10m 이상 올라간 야기는 이미 어두워진 하늘에 감춰지고 안보였다.

나침반을 꺼내어 안테나 밑에 서서 북북서 방향을 찾았다. 제일먼저 고국에 신호를 보내야 하기 때문이다.

접지가 채 끝나기도 전에 CQ가 시작되었다.  CQ CQ This is H44HL H44HL... 반가워하는 HL들... 격려의 말들... 비에 홀딱 젖어 그 곁에 서있는 우리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지켜보며 흐뭇해하던 (주)이건 퍼시픽의 한국인들...

교대로 저녁식사를 한 뒤 밤새워 40m 에서의 SSB와 CW 교신이 이루어 졌다.  밤이 깊어갈수록 교신지역이 넓어지고  그 만큼 파일업도 커져갔다.  새벽 2시경 계속적인 운용과 함께 우리는 다음날 아침부터 운용할 하이밴드를 위해 파라우 안테나를 조립해 놓고. 교대로 야참으로 라면을 끓여 먹었다. 그리곤 돌아가며 잠시 눈을 붙이긴 하였는데... 나는 내가 어디서 어떻게 잠이 들었는지 기억이 안 난다. hi

 아... Solomon

 원정팀이 운용하고자 다녀온 그곳 Solomon과 Temotu는 역사적으로도 매우 의미있는 곳이다.  본격적인 원정운용의 이야기 전에 그곳의 개략을 소개해 볼까 한다.

1568년 스페인 탐험가 멘다나에 의해 발견된 솔로몬 군도는 그 이름이 성경에서 유래한다. 멘다나는 솔로몬에 사금이 많은 것을 발견하고는 성경에 나오는 황금의 도시 솔로몬이 그곳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항해비용을 마련하여 몇십년만에 솔로몬을 다시 찾아낸 멘다나는 원주민과의 간헐적인 전투와 오랜 항해에 지치게 되며 끝내 테모투에서 생을 마감했는데, 그가 사망한 원인이 전투중 사망이다. 또는 말라리아로 사망했다는 두가지 설이 있다.

(필자가 이번 테모투 원정에서 현지인들에게 물어보니 멘다나는 말라리아로 죽었다고 이구동성으로 단언했다. 테모투 원주민의 말로는 그의 선원들 역시 테모투에서 많은 사람들이 난파로 인해 사망했다고 한다.)

멘다나의 솔로몬 발견이후 솔로몬의 원주민들은 유럽인들에 의해 큰 시련을 겪게된다.  한번도 쇠를 만들어 보지 못하고, 석기만을 사용하던 그들은 총검을 지닌 유럽인들과 맞서기엔 역부족 이었던 것이다.    

일본의 하와이 진주만 공습으로 시작된 태평양전쟁, 그 전쟁에 있어 미국과 일본의 최대 격전지인 솔로몬의 수도 호니아라가 있는 과달카날 섬... 나는 이번 원정기간중 10여년전 읽었던 태평양전사를 자주 떠올리곤 했다. 처음 호니아라 국제공항에 내렸을 때 나는 그곳이 바로 핸더슨 공군기지인줄 몰랐다.

내가 핸더슨 비행장에 내리다니 !!  책을 읽었을 때의 감동과 함께 그 곳에서 숨져간 많은 사람들이 떠올랐다. 과당카날은 수많은 한국인들이 징용으로 끌려가 희생된 곳이다.  전세가 기울자 일본군은 한국인 노무자들을 무참히 살해했던 것이다.  느끼는가... 그 멀고 먼 남태평양에서 숨져간 그들의 마지막 숨결을...

지금의 호니아라 국제공항, 즉 핸더슨 비행장은 일본군이 처음 건설했으며 그 비행장을 룽가비행장이라 명명했다. 2천여명의 노무자들과 240여명의 경비대가 건설했는데 그 노무자들 중 상당수는 징용으로 끌려간 우리의 혈육이었다. 그러니까.. 원정대의 비행기를 맞이하고 떠나보낸 그 활주로는 바로 우리의 피가 스며있는 곳인 것이다. 룽가비행장은 미해병대에 의해 점령되고 미군은 이후 그곳을 핸더슨 비행장이라 부르기 시작한다.

핸더슨 공군기지는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요충이며 미,일 양국이 총력전을 벌인 그곳의 전투와 그 결과는 태평양전쟁에 있어 일본패전의 서막이었다는 것이 일반적 견해이다.

당시 과달카날 전투의 수많은 전사중, 아마추어 무선사의 시각에서 관심을 끄는 사건은 일본군 연합함대 사령장관 대장 야마모도 이소로꾸의 죽음이다.

전쟁 이전부터 미국은 일본의 모든 무전내용을 해독하고 있었는데,  그 이유는 미국주재 일본외교관이 미국 첩보기관의 미인계에 빠지게 되고,  외교관의 하룻밤 로멘스에 일본의 통신보안은 구멍이 뚫리게 된다.  미국은 종전이후에도 한참동안 그러한 사실을 숨겼다고 한다.

우수한 성능의 제로형 전투기와 최신예 항공모함과 전함을 갖춘 일본해군은 진주만에서 이미 그 기능을 상실한 미국의 태평양함대와  비교할 때, 그 전력 면에서 단연 우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일본해군은 전파통신의 보안을 지키지 못해 미드웨이 해전부터 연패하게 되는 것이다.

전쟁의 중반..  일본 해군 사령장관 야마모도 이소로꾸는 전세가 불리해지자 최전방 시찰을 계획하게 되고 그 사전 준비로 많은 양의 무전통신이 행해진다. 미군은 감청한 신호의 해독 결과 야마모도 이소로꾸 연함함대 사령장관의 최전방 목적지는 솔로몬군도 북단 초이셀 섬 서쪽에 위치한 쇼트랜드라는 것이 확인되었다. 쇼트랜드에 가기 위해서 부겐빌 남단 부인비행장에 착륙 후 잠수정을 타기로 계획되어 있었던 것도 미군은 이미 알고 있었다.

미국의 태평양함대 사령관 니미츠 제독은 일본해군에 있어 야마모도 이소로꾸를 필적할 자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가 탑승한 해군1호기를 반드시 요격하라고 솔로몬 과달카날 핸더슨기지 사령부에 명령을 하게된다. 그러나 그 명령은 일선 지휘관들에겐 매우 어려운 작전이었다. 적기 요격을 위해 핸더슨 비행장에서 출격할 미공군의 록히드 P38 라이트닝 전투기의 전투반경은 보조연료탱크를 달아도 적기 요격 예정 지점인 부겐빌 남부해상에 머물 수 있는 시간이 겨우 10분 이었던 것이다.    

야마모도 이소로꾸 일본군 연합함대 사령관의 비행편대가 조금이이라도 늦거나 빨리 현장을 지나가면 계획은 무산되는 것이다.  이를 우려한 핸더슨기지 사령부는 본국의 펜타곤 정보국에 야마모도 이소로꾸의 성향을 조사해서 알려줄 것을 부탁하고, 곧 회답이 왔다. 그 내용은 야모모도의 성장시절, 학창시절 그리고 군복무 과정에서 그는 절대로 계획을 지체하거나, 취소하는 행동을 하지 않았으며 시간개념이 매우 정확한 인물이라는 것이었다.  

결국 1943년 4월 18일 아침 핸더슨 비행장에에 출격한 록히드 P38 라이트닝 전투기 24대 2개 편대는 부겐빌 남부에서 일본군 쌍발 중형폭격기 2대, 그리고 호위중인 전투기 6대와 조우하고 치열한 공중전을 벌이게 되는데...  호위중인 일본군 전투기들이 미군 전투기 편대를 높은 고도에서 먼저 발견하였으나, 24대의 미군 전투기들은 일본군의 쌍발 중형폭격기 2대만을 끈질기게 공격했다.

쌍발폭격기 2대중 한대는 바로 일본 해군1호기 였으며 비행기에는 야마모도 이소로꾸 연합함대 사령장관(대장), 다나까 연합함대 군의장(군의소장) 및 참모와 부관들이 탑승했으며, 2호기에는 우가끼 연합함대 참모장(중장)과 그의 참모들이 탐승하고 있었다.

1호기에 탑승한  야마모도 이소로꾸를 포함한 전원이 사망했고, 2호기는 바다에 불시착했으며 아가끼 연합함대 참모장은 중상을 입었으나 일본군에 의해 구조된다.  이날의 전투, 일왕의 총애를 받던 야마모도 이소로꾸 대장의 사망은 일본 군부를 충격에 빠뜨렸으며, 2년 뒤 일본의 패전을 가속 시키게 되는, 태평양 전쟁의 역사적인 사건인 것이다.

미군의 솔로몬 전파감시소와 하와이등지에서 감청, 해독한 일본군간의 연합함대 사령장관의 최전선 시찰 관련 무전은 3.060 KHz에서 1.3와트, CW모드로 송신 되었으며  일본 육군의 무한 난수식 암호가 사용되었다.  

미군이 라이트닝 전투기 24대를 출격시킬 수 있었던 핸더슨 비행장,  그 비행장을 지키기 위해 미군과 일본군은 수많은 공중전을 벌였으며, 핸더슨 비행장을 놓친 일본군은 남태평양의 제공권을 확보하지 못하게 되었던 것이다.

과달카날에 고립된 3만여 일본군 병사들은 인육을 먹어야 할 정도로 굶주리고 있었고,  잠수함까지 동원한  일본군의 물자보급 작전은 새로운 전략병기인 레이다를 탑재한 미해군 함포에 의해 과달카날 해안에서 번번히 무산되었다. 일본의 진주만 기습공격으로 발발한 태평양 전쟁,  미드웨이 해전은  일본해군의 첫 패전이었고, 솔로몬 과달카날에서의 미, 일 양국의 총력전은 일본 육군의 첫 패전이었다.    

핸더슨 비행장은 지금도 솔로몬의 공항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일본이 건축해 주었다는 국제선 청사가 솔로몬 군도의 이야기들을 말없이 전해주고 있다.

 테모투로 가는 길

다시 원정이야기로 돌아가겠다.  

테모투로 보내지 못한 화물들을 우여곡절 끝에 비행기로 운반하기로 한 원정팀은 그나마 정말 다행이다 생각하며, 하루 반나절 밖에 시간이 없는  H44HL의 운용에 집중했다.

12,10m 밴드는 전파상태가 여의치 않아 수 차례의 시도에도 불구하고 운용을 할 수가 없었다.  

솔로몬에 도착한지 이틀째,  원래의 계획은 오후 5시에 안테나를 철거하기 시작하여 해가 지기 전에 모든 장비를 챙겨놓고, 다음날로 예정된 테모투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아침 7시에 공항으로 가는 것이었다.

그러나, 계속 이어지는 파일업을 뒤로하고 안테나를 내릴 수 가 없었다.  원정팀은 잠간 동안의 회의를 통해 그 날밤도 철야 교신을 하기로 하고, 안테나는 새벽 5시경 먼동이 틀 때 철거하기로 했다.

즉, 새벽5시부터 7시까지 2시간 동안에 호니아라에서의 시스템을 철거하여 테모투로 갈 준비를 완료하는 것을 의미한다. 거의 휴식의 시간이 없었고 2일 연속 철야운용에 피곤하기는 했지만, 무전기에서 들려나오는 Pile-up과 다음날 아침 테모투행 비행기를 탈것을 생각하니 모두들 힘든 줄 몰랐다.  

아침 7시 우리 일행을 장비와 함께 공항에 데려다 줄 픽업 자동차가 도착했다.

솔로몬에서는 자그마한 픽업 자동차에 승무원이 있다. 승무원은 차량의 적재함에 타고 다니며, 화물을 싣고 내리는 일을 하는데 이는 솔로몬의 턱없이 부족한 일자리문제를 반영한다고 볼 수 있겠다. 우리는 테모투로 가져갈 장비들을 부지런히 챙겨 공항으로 달려갔다. 국내선 공항에 도착하여 비행기가 예정대로 이륙하는지

체크하기 위해 사무실 앞으로 갔다.  탑승권을 보여주며 비행기가 스케줄대로 움직이는지 묻자 그 대답이 간단 명료하여 흡사 DX 버전이다. "비행기를 정비하느라 비행은 내일로 연기되었다" 고 하였다.

안전 문제 때문에 비행기를 정비해야 한다는데 할 말이 없었다. 대체 비행기를 투입한다던가, 승객들의 숙박을 책임진다던가..  등의 서비스는 물론 없다.  우리는 테모투에서의 운용시간이 하루가 줄어든다는 생각에 아쉬웠지만, 웃으며 받아들였다. 미리 전해들은 대로, 역시 그곳의 비행기 운항은 예측불허였다.

숙소로 돌아간 일행은 챙겼던 짐을 다시 풀고 시내로 나가 늦은 아침식사를 마치고 오후에는 아침의 5인승 픽업을 다시 불러 과달카날섬 북쪽지역을 한바퀴 돌아보았다.

버스가 없기 때문에 이따금 만나는 트럭의 적재함에는 사람이 하나 가득 이다.  적재함이라도 탈 수 있는 것도 그곳이 솔로몬의 수도이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한다. 거의 대부분의 국토에 도로가 없는 까닭에 원주민들은  하루나 이틀 정도를 걸어서 일을 보러 다닌다고 한다. 그것도 맨발, 우리 HAM들의 속어 중에 앰프 없이 무전기의 자체 출력만으로 송신하는 것을 Bare foot(맨발)이라고 한다. HAM들에게나, 솔로몬 원주민들에게나  "Bare foot"은 역시 위대하다. ^^

 

우리는 솔로몬의 정부청사가 있는 고지대로 갔었는데, 호니아라의 바다가 훤히 내려다 보이는 전망이 좋은 곳이었다. 여러 곳에 분산된 청사들 중 일부이고  우리가 방문한 곳은 바로 H44HL, H40HL의 면허를 발급 받은 곳이었다.  그리고 가까운 곳에 솔로몬 의회건물과 미군의 전적비가 세워진 공원이 있었다.

남태평양에 산재한 대부분의 섬나라들의 원주민들은 "비틀넛" 이라는 열매를 즐겨 씹는데,  입안이 온통 빨갛게 물들고 씹을 때 계속 침을 뱉게 된다. 섬의 어디를 가도 길바닥에 뱉어진 흡사 피처럼 보이는 타액들이 길바닥을 장식하고 있다. 우리가 볼 때 조금은 혐오스럽고 건강에도 해로운 환각제(?)라고는 하지만, 우리가 뭐라고 쉽게 말할 수 없는 그들의 문화이다.

나는 그들이 하루종일 씹고 또 씹는 비틀넛이 궁금하여 2차례에 거쳐 비틀넛을 씹어 보았다. 먹는 방법은 비틀넛, 비틀넛 나무의 잎, 그리고 돌에서 추출한 라임이라는 백색 가루를 입안에서 씹으며 혼합하는데,  먼저 딱딱한 섬유질인 비틀넛 열매를 치아를 이용해 반으로 쪼갠다.

그러면 대추알 만한 하얀 과육이 나오는데 그걸 씹어서 잘게 쪼개고, 그 다음에 가늘고 길다랗게 생긴 비틀넛 잎에 라임을 묻혀 가며 씹으면 된다. 비틀넛과 비틀넛의 잎만 씹으면 향긋한 향과 떫은 맛이 난다. 구강 내부의 색깔도 변하지 않고 별다른 환각도 없는데, 라임이 입안에 들어가는 순간, 순식간에 입안은 적색으로 물들며 서있기 힘들게 어지러워 진다. 머리에서 핑 소리가 난다는 표현이 적격일 것이다.

라임을 많이 먹을수록 우리가 말하는 "환각"이 강해지는데,  그들은 비틀넛이 환각제가 아니라고 한다. 그저 단조로운 일상을 달래주는 기호식품이라고 설명하기도 하였다. 나중에 테모투에서 알게 된 사실인데 라임은 구강암을 유발시키며, 장기간 섭취하면 이가 다 빠진다고 한다.  원주민의 남녀노소 대부분이 중독성이 강한 비틀넛을 씹으며, 솔로몬의 모든 상점이 오후 4시면 문을 닫지만, 솔로몬 전역 어디를 가도 쉽게 볼 수 있는 비틀넛을 파는 좌판은 24시간 장사를 한다. 그 구멍가게들은 동네의 사랑방 구실도 하는 것 같았다.

 

솔로몬에서의 3일째는 이렇듯 비행기가 결항되어 아쉬웠지만, 솔로몬을 조금 더 가까이 느껴볼 수 있는 하루였다. 숙소로 돌아온 일행은 이건산업의 직원분들이 마련한 저녁식사 자리에 초대받았다. 다음날 아침 일찍 예정된 비행편이 순조롭기를 기원하며 다시 한번 장비들을 점검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 새벽, 예정된 시간보다 2시간 빠른 오전 6시까지 비행장으로 나오라는 전화 연락이 왔다.

원정팀은 마치 군대의 5분대기조처럼 제대로 씻지도 못하고 비행장으로 달려갔다. 간신히 시간에 맞추어 도착해보니,  공항의 분위기는 느긋하다...  공항직원들이 장비의 무게를 합산해 가며 하나 하나 비행기에 싣기 시작했다. 그런데 160m 안테나용 헬륨가스와 40m 2ele 야기는 못 싣겠다는 것이 아닌가..

우리는 이미 우리 장비들이 솔로몬 에어라인의 안전점검과 본사의 책임자로부터 모든 장비의 운반을 문제없이 해주겠다는 확답을 받았으며 그 대가로 빈 좌석을 4개나 더 구입한 것을 설명하며 비행기에 실어줄 것을 요구했다. 공항직원은 우리의 장비들을 면밀하게 점검하더니, 어디론가 전화를 했다. 잠시 후 원래는 안 되는 것인데 실어주겠단다.

비행기에 비해 엄청난 우리의 장비들은 드디어 비행기에 실리기 시작했는데, 40m 2ele는 비행기 좌석을 모두 젖히고 그 바닥에 깔아야 했다. 다른 승객들이 아직 비행기에 탑승하지 않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우리 일행은 몸무게까지 재가며 탑승수속을 마치고 비행기에 올랐다. 드디어 H40로 간다고 생각하니 그 기분은 가히 날아갈 듯 좋았다.

우기에 접어들어 아침부터 비가 왔다.  비가 온 핸더슨 비행장의 활주로엔 18인승 쌍발 프로펠러 비행기인 하얀색 Twin otters 1대만 비를 맞으며 서있었다.

솔로몬 에어라인 비행기는 계속 정비중이고 우리가 탑승한 비행기는 바누아투 에어라인의 비행기였다.  모든 승객이 탑승을 마치고, 이륙을 기다리는데 조종사가 안 나타났다..  기다리다 기다리다 점심때가 되고...

배도 고프고, 인내심이 한계를 넘기고 나서 조종사가 나타났다.  그리고는 비행기에 문제가 있어서   비행을 취소해야 한다고 말한다..  어이도 없고 기도 차고...  맥이 탁 풀리는 그 기분...

우리는 장비들을 공항에 보관시키고 숙소로 돌아왔다. 이유는 다음 비행기 탑승시 불편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공항 관계자는 다음 비행기에 미리 실어 놓을 테니 걱정 말라고 실의에 빠진 원정팀에게 호의를 보였다.

우리는 다시 숙소를 나와 시내에 있는 솔로몬 에어라인 사무실을 찾아갔다.  다음 비행편이 언제인지 묻는 우리팀에게 담당자는 "이번주 토요일 아침입니다. " 라고 말하는 것 이다. 그날이 일요일인데 돌아오는 토요일 이라니...  아니 그건 우리가 테모투에서 나오기로 한 날이지 않은가 !!!  

테모투로 가는 비행기가 2번이나 취소되고, 2일 동안 새벽마다 분주하게 움직인 노력이 허사가 되자 우리가 받은 스트레스도 적지 않았다.

잠시 휴식을 취한 우리 일행은 다시 항공사 사무실을 찾아가서, 정중하게 항의하고 다음 비행기는 언제냐고 질문했다.  우리의 질문에 대한 항공사의 답변이 놀라웠다.  다음 비행 스케줄은 6일 후 라는 것이 아닌가!!

6일 후이면 우리가 테모투에서 철수하기로 한 날인데,  기가 막힐 노릇이다. 항의하는 우리에게 그들은 그저 눈만 깜빡일 뿐...  항의도 소용이 없었다.

숙소로 돌아온 우리 일행은 테모투로 가는 다른 방법을 모색하기로 했다. 마침 2일 후에 출발하는 여객선이 있었는데, 문제는 항해시간이 테모투까지 36시간 걸린다고 했다. 그렇다면 생각해볼 여지가 없지 않은가...

도착해서 운용을 제대로 하기도 전에 짐 챙겨서 정기편 비행기를 타고 나와야 하는 스케줄이기 때문이었다.

우리 일행은 결국 우리 일행과 별로 친하지 않은 비행기에 의견을 모았다. 비행기를 전세내기로 결정한 것이다.  다음날 아침 일찍 다시 항공사를 찾아간 우리는 테모투행 비행기를 전세 내는데 성공했다.

3시간 편도 비행에 한화로 약 470만원을 지불하였고. 비행은 2일 후에나 가능했다. 그런데 그 비행편은 그날의 정기편을 취소하고 테모투로 가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때문에 그 정기편을 예약한 승객들은 영문도 모르고 결항의 아픔을 겪어야 하지 않는가. 생각하니 정말 어이가 없었다.  하여튼 우리는 테모투에서의 운용이라는 약속을 지킬 수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 매우 다행스럽게 여겼다.

테모투로의 비행시도 3번째...  아침이 밝았다.  매우 화창한 날씨...  비행기는 드디어 날아올랐다.

소형 비행기라서 고도를 낮게 비행했는데, 덕분에 눈 아래 펼쳐지는 솔로몬군도의 장관들을 자세히 감상할 수있었다. 형용할 수 없는 태고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간직한 산호의 바다... 그리고 왕성하게 활동하는 화산섬이

수증기를 내뿜으며 바다에서 하늘로 거대한 구름기둥을 만들고 있었다.

 YJ8CW와의 만남  

테모투로 가는 길은 매우 인상 깊었다. 2번의 결항 그리고 전세비행기...  비행기 바퀴가 떨어져 나갈 것 같은 이 착륙...  비행기의 낮은 고도는 솔로몬 군도의 절경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도록 해 주었다.

비행기는 테모투까지 한번에 비행할 수 가 없었다.  키라키라 라는 곳에 착륙하여 기름을 넣고 다시 이륙해야 했다.  수도인 호니아라의 비행장을 제외한 다른 비행장은 아스팔트 활주로가 아니다.  자갈밭 또는 잔디밭에 착륙하는데.. 울퉁 불퉁 패여 있는 잔디밭에 비행기가 착륙 할 때면... 창밖으로 보이는 비행기 바퀴가 심하게 요동친다.  바퀴가 떨어져 나가지 않는 것이 신기할 정도이니...아마도 DX가 아니면 돈 받고 타래도 안 탈거다. hi

(나중에 테모투에서 호니아라로 돌아올 때의 이야기인데 원정팀이 탑승한 경비행기는 비구름을 뚫고 비행을 해야 했다.  빗방울이 비행기에 부딪치는 소리가 대단해서 바로 옆 사람이 하는 말이 안 들릴 정도였고, 난기류 때문에 속이 울렁거릴 정도로 비행기는 상하좌우로 심하게 요동치며 아무것도 안 보이는 빗속을 비행하는데 우리는 너무나 불안하였다. 마치 영화 "터뷸런스"의 한 장면 같다고 해도 될 것 같았다.

나는 조종석 바로 뒤에 DS2BGV 오엠과 함께 앉아 조종사가 조종하는 것을 지켜보며 불안한 마음을 달래고  있었다.  조종사가 조종하고 있는 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 한쪽 발을 각종 스위치가 달려있는 계기판에  올려놓고 잠을 자고 있지 않은가..  비행기는 오르락 내리락 요동을 치는데 자동 항법장치를 켜놓고 잠을 자는 것이다. 나는 어이도 없고, 재미있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하고... 참.. 난감했다.

속이 울렁거린다며 창밖을 보고 계시던 DS2BGV 오엠께  "오엠님... 조종사가 자는데요.." 말씀드렸더니 "진짜로 자고 있어?" 하며 조종석을 바라보더니 "어 저놈 진짜로 자구 있네 !  미치겠군 정말.." hi

나는 탑승구 옆에 걸려있는 낙하산과 비상탈출 요령을 적어놓은 안내 문구를 다시 한번 바라보았다. ^^

지금 생각하니 그러한 에피소드들이야 말로 우리의 모험을 더욱 흥미진진하게 해주었고 기억에 남게 한 것 같다. )

원정기간동안 어찌 보면 우리는 너무 운이 없었다.  테모투로 가는 길에 키라키라 라는 섬에 착륙하여 비행기가 급유를 받는데 원정팀은 행운의 여신이 보낸 사람을 만나게 된다.  그 사람은 바로...

비행기가 키라키라에 착륙하자 원주민 두 사람이 드럼통을 데굴 데굴 굴리며 비행기로 다가와서는 손으로 빙글 빙글 돌리는 수동식 펌프로 연료를 넣기 시작했다. 우리일행은 비행기에서 내려 키라키라의 경치를 감상하고 있었는데 누군가가  등 뒤에서 "DX페디션 갑니까? " 라고 말하는 것이다.

뒤돌아보니 바로 우리가 탑승한 비행기의 주 조종사 아닌가.. 우리 일행이 입고 있던 DX페디션 기념 티셔츠의 문구를 본 모양이다.  "네 그렇습니다 당신도 햄인가요?  호출부호가 어떻게 되십니까?!!"  태평양의 외딴섬에서 햄을 만나게 되다니...  너무나 반가웠다.

그의 호출부호는 YJ8CW 였으며 바누아투 에어라인 조종사였다. 솔로몬에 파견근무중이란다.  필자가 호출부호가 멋지다며 CW를 좋아 하냐고 물으니 물론 이란다. 그는 비행중에 20m 밴드를 늘 수신하고 있다며 우리 원정팀을 태우고 테모투에 가게 되어 기쁘다고 했다.

그는 DX-Pedition의 의미와 이유를 이해하고 있었으며, DX-Pedition을 위해 전세 낸 비행기를 조종하게 되어서 기쁘다는 말을 하며 우리 원정팀에게 경의를 표하고 있었다.

우리는 솔로몬에서 비행기 때문에 고생한 일들을 설명했고,  특히 안테나가 좌석 밑으로 잘 들어가지 않아서 애먹었다는 얘기를 하며 원정팀이 철수 할 때도 당신을 다시 만났으면 좋겠다고 했더니 그날은 자신이 비행을 하지 않지만 동료 조종사에게 잘 이야기 해 둘 테니 염려 말라고 하였다.

(사실 테모투에는 항공사 직원이 없기 때문에 조종사가 짐을 못 싣겠다면 못 싣는 것이다. 실제로 원정팀이 철수할 때 그의 동료 비행사는 손수 안테나를 비행기에 실어주었으며, 또한  빗속의 비행기를 잠을 자며 조종하는 흥미진진한 묘기도 보여주었다 hi..  YJ8CW는 호니아라 공항에서 원정팀을 기다리고 있다가 원정팀에게 축하의 말을 건네주었다. 햄이라는 이유만으로 우리는 친구가 되어 있었다.)

우리는 여벌의 기념 티셔츠를 꺼내어 각자의 호출부호와 우리의 원정을 위해 비행기를 조종해 주어서 고맙다는 메시지를 적어서 그에게 주었더니 본인에게도 의미 있는 비행이고 기념품이라며 기뻐하였다. 푸근한 인상의 YJ8CW.. ON-AIR에서 언젠가 다시 만나고 싶다

 

원정팀이 H40HL운용을 한곳은 솔로몬의 행정구분상 Temotu Province의 Nendo섬이다.

근처에 Santa-Cruz 섬이 있고 솔로몬 사람들은 Temotu나 Nendo 라는 지명보다, Santa-Cruz 라는 지명을 대부분 사용한다. 원정팀이 도착한 Nendo섬은 OH2BH, VK1AA 등의 햄들에 의해 운용되었던 모든 H40 운용장소와 같은 곳이다. QTH를 정확히 말하자면 Temotu Province의 Nendo섬 Lata인데, 그곳에서만 운용이 이루어지는 까닭은 Lata에만 비행장이 있고 비정기 여객선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Santa-Cruz에서 운용했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QTH는 Lata 인 것이다.

QTH를 정확히 표현하는 것은 우리팀이 원정을 계획하고 준비할 때 조금 혼돈스러웠기 때문이다. 정확하게 분류하여 호칭하는 지명이 아닌데다가, 솔로몬 에어라인의 국내선 공항안내와 비행기 표에도 Temotu Province의 공항이름이 Santa-Cruz로 표기되는데, 실제로는 Lata Air Field 에 착륙하는 것이다.

Nendo 섬은 솔로몬의 지방정부 Temotu Province의 수도이며, 행정관청이 있는 곳이다.

Temotu Province는 솔로몬의 최남단 영토이며 소규모 섬들로 이루어져 있고 섬들 중에는 현재도 활동 중인 화산 Tinakula가 가까이 있다. 화폐는 영국에서 인쇄해준 솔로몬 달러를 사용하며, 빨간 깃털을 화폐로  사용한다는 인터넷등에 소개된 정보는 잘못된 것으로  이미 20여년에 빨간 털은 화폐로서의 기능을 상실했다.

그런데 왜 빨간털이 화폐로 사용되었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그들은 예전에 밀림에서의 수렵이 중요한 생존 수단이었는데, 사냥 시 독을 바른 침을 대나무 관에 넣고 입으로 바람을 불어넣어 화살을 쏘는 기구를 사용했다. 마치 영화에 나오는 장면처럼 말이다.

빨간깃털은 화살을 만드는 중요한 소재이고,  대나무로 만든 슈터 내부의 공기압이 새지 않도록 슈터내부와 화살간의 기밀작용을 하는 것이다. 즉 빨간 깃털이 없으면 사냥을 할 수 없었기에, 빨간 깃털은 물물교환 경제에서 화폐로 사용되었던 것이다.

우리는 원정팀을 찾아온 빨간 깃털 화살을 만들어 파는 테모투의 원주민을 만났으며 위와 같은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섬들로 이루어진 테모투이지만, 산속에 사는 원주민이 의외로 많으며, 산속에 사는 원주민들과 바닷가에 사는 원주민들 사이에 자체적인 경제활동이 형성되어 있는 듯 하다.  

원주민들은 바다에서 흔하게 잡을 수 있는 참치와 고구마등의 근채류, 파인애플, 바나나, 과일 등을 주식으로 하며, 풍요로운 자연혜택 덕분에 그들은 농사를 짓지 않는다. 특히 솔로몬의 파인애플과 메론등의 과일은 세계에서 가장 맛있다고들 하며, 그 중에서도 테모투의 과일은 솔로몬에서도 명품에 속한다고 한다.  

테모투의 자연은 실로 경이롭다. 해변에 널려있는 직경 1미터에 달하는 몇 만 년 전에 만들어진 조개화석들을 쉽게 볼 수 있는데, 크기는 작아졌지만, 화석과 똑같이 생긴 조개가 지금도 그 바다에 함께 살고 있다.

솔로몬의 신비로움은 비단 자연환경에서만 느껴지는 것은 아니다.  그곳의 사람들 역시 자연처럼 그 순수함을 유지하고 있다. TV나 라디오 방송국이 없는 솔로몬, 물론 대부분의 주민들은 전화도 전기도 없이 생활한다.

 Waterfall Waterfall Honiara !

 전화가 없다는 이야기가 나왔으니 그곳 사람들의 통신방법에 대해 잠시 적어본다.

호니아라의 (주)이건퍼시픽 사무실에는 여러 섬에 흩어져있는 조림현장과 업무연락을 하는 무전기가 설치되어있다.  6.080MHz 인근 주파수를 사용하는데, 그 무전기가 설치된 벽에는 작은 창이 하나 나있다.

창에는 "SSB RADIO WINDOW" 라고 씌여져 있다..  무슨 까닭일까 ?

수도인 호니아라로 직업을 찾아 고향을 떠나온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향에 전화가 없기 때문에 연락을 할 방법이 없다. 인편이 아니면 안 되는 것이다. 그곳의 생활이 그렇다..  그래서 (주)이건 산업은 현장이 위치한 섬들이 고향인 사람들이 고향사람들과 연락을 취할 수 있도록 점심시간과 일과 후 무전기를 일반인들에게 개방하고 있으며. 그것은 솔로몬 국민들을 위한 다양한 봉사와 지원활동 중의 하나인 것이다.

점심시간이 되면 창밖에 놓여진 기다란 의자에 사람들이 순서대로 앉기 시작한다.  점심시간이 되면 창이 열리고 원주민 여직원이 무전기로 손님이 원하는 섬을 호출하기 시작한다.  업무용 주파수라서 호출부호 대신 각 섬들의 이건퍼시픽 현장이 위치한 곳의 특색을 살려 만든 기지이름을 부른다.

예를 들면 솔로몬 북쪽의 Choiseul섬 이건퍼시픽 조림기지 근처에는 폭포가 있어서 교신 시 Choiseul섬은 폭포라는 뜻의 Waterfall이라고 부른다. SSB RADIO 담당 여직원이 수차례 Waterfall Waterfall Honiara를 외치면 잠시후 Choiseul섬에서 응답을 해온다.  

무전연결이 되면 통화를 할 사람에게 Handheld Microphone을 넘겨준다. "나는 어디에 살던 아무개인데,  내 동생이 그곳에 찾아가면 다음달에 휴가차 집에 간다고 전해주세요" 식으로 메시지를 남기는 형식의 연락방법이다.  가족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가득담긴 그들의 전파는 매일 매일 끊이지 않는다.  

원정팀은 솔로몬에서 떠나오기 전에 (주)이건퍼시픽의 안테나를 정비했다. (주)이건퍼시픽 직원분들의 호의와 관심에 대한 아주 작은 보답이라도 하고 싶었던 것이다.  기존의 안테나는 호주기술자가 10여년전에 가설한 것인데 RG-58 동축케이블을 사용했고 1:1 바룬에 연결된 반파장 다이폴 이었다.

함석지붕위에 설치된 다이폴은 해체 전 측정한 임피던스가 90옴이 넘었고, SWR은 볼 것도 없었다. 게다가 주로 교신하는 방향과 안테나 방사패턴이 90도 가까이 어긋나게 가설되어 있었기에  신호가 좋을 리가 없었다.

우선 동축케이블 RG-58은 RG-8로 바꾸고 케이스가 삭아버린 바룬도 새것으로 바꾸고, 내친김에 엘레멘트도 교체를 한 뒤, 주로 교신하는 각 섬들의 위치와 방사패턴을 감안하여 함석지붕을 피해 새로이 가설을 했다. 임피던스와 SWR도 아날라이저로 측정해가며 예쁘게 맞추어 드렸다.

이건퍼시픽 직원분께서 안테나 테스트를 위해 여러 곳의 기지들을 호출하여 예전 신호와의 비교를 부탁하자 모두들 신호가 훨씬 좋아졌다고들 했다.

각 기지의 안테나들도 같은 요령으로 정비하면 신호가 훨씬 좋아질 거라며 안테나를 정비하는 몇 가지 내용들을 적어드렸다.  작은 도움에 너무 고마워하시고 기뻐하셔서 우리 일행은 숨을 곳을 찾고 싶었다.

그 안테나는 수많은 사람들의 안부가 오가고, 때로는 사람의 목숨도 구할 수 있는 그곳의 중요한 통신수단이었던 것이다.

 테모투에서의 운용과 원주만들

키라키라에서 재급유를 받고 다시 이륙한 비행기는 1시간 30분 뒤 테모투에 착륙했다. 우리와 같은 햄인 YJ8CW가 조종한다고 생각하니 덜컹거리던 착륙이 더 이상 불안하지 않았다.  비행장에는 조지 나테이의 삼촌인 타우라가 우리를 마중 나와 기다리고 있었고 수많은 원주민들이 구경을 나와 있었다.  

YJ8CW와 간단한 인사를 나누고 우리 일행은 곧바로 테모투 주지사를 찾아갔다.

인사를 나누고 그곳에서의 운용에 있어 협조를 구하기 위함이었다. 주지사는 원정팀이 테모투에 도착하기까지 겪은 불편과 결국 비행기를 전세 내어 도착한 사연을 우리가 묶을 숙소의 주인이며 테모투의 공무원인  Taura에게 전해 들었다며 테모투를 찾아주어서 고맙고 테모투를 전 세계에 널리 알려주길 바라며 불편한 점이 없도록 신경 쓰겠다는 말씀을 하셨다.  

테모투의 전기는 Lata의 극히 일부 지역에만 저녁 8시까지 공급되었는데,  테모투 주정부는 원정팀을 위해 원정기간동안 24시간 발전을 해주는 놀라운 배려를 해주었고, 발전 책임자는 원정팀을 찾아와 테모투의 전기는 240볼트에 50Hz라며 전기적인 트러블이 생기면 도움을 주겠다고 하였다.

우리가 받은 도움은 그것 뿐만이 아니었다. 우리는 안테나를 가설 할 장소가 없었는데, 이유는 울창한 숲이 해안까지 덮고 있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묶은 숙소는 집 주위가 정원으로 예쁘게 가꾸어져 있었고 약간의 공터가 있었다. 그러나  그 한가운데에 커다란 야자나무가 한그루 서있어서 안테나를 가설 할 수가 없었다.  

우리 일행이 답답한 마음에 나무만 바라보고 있는데,  Mr Taura의 큰 아들이 그들의 낫인 부시 나이프를 들고 오더니 나무를 사정없이 베어 자빠트리지 않는가.. !!  우리는 깜짝 놀라며 우리 때문에 나무를 베어서는 안 된다고 말렸지만 그들은 웃으며 기꺼이 그들의 정원수를 베어냈다.

우리는 현지인들의 도움을 받아 안테나를 수월하게 가설 할 수 있었고, 그러한 놀라운 경험들은 우리들의 가슴을 따듯하게 만들었으며 그들의 순수한 마음과 우호는 H40HL운용을 통해 얻은 우리가 본받을 만한 값진 가치이자 교훈일 것이다.

 

우리가 테모투에서 (주)이건 퍼시픽의 직원이며 우리팀을 테모투에서 안내한 조지 나테이의 삼촌뻘 되는 타우라 라는 분의 댁에서 머물렀다. Lata만이 아름답게 펼쳐진 바닷가에 새로이 지어진 그의 집은 아마 테모투에서 가장 좋은 주택이 아니었나 싶다.

3미터 정도의 높이에 지어진 그의 주택은 거실과 3개의 방으로 구성되는데, 주거공간이 지면에서 떨어져 있기 때문에 매우 쾌적했다. 주방이나,  화장실은 집 가까이 별도로 지어져 있으며. 식수나 샤워에 사용되는 물은 빗물을 이용하는데, 집 주위 여러 곳에 지붕의 처마에서 떨어지는 빗물을 받기 위해 커다란 물통을 놓아두었다.  

타우라는 자신의 가족들은 다른 곳에 가서 지낼 테니 자신의 집을 사용하라고 했다. 우리는 우리 일행에게 새로 지은 집을 통째로 내어주며 지내라고 하는 말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일은  경우가 아니라며 몇 번의 사양을 했지만, 끝내 새집은 우리 일행이 머물게 되었다.

2대의 PARAWOO 안테나와 40m 2ele 야기, CV-48 그리고 다이폴 등의 안테나를 가설했는데 다이폴은 높이가 20미터쯤 되는 야자나무를 이용했다. 엘레멘트의 조정을 위해 급전부를 내리고 올릴 필요가 있어서 바룬에 준비해간 로프대용의 바다 낚싯줄을 사용했다.  

절연체이면서 길이에 비해 부피가 작고, 무게가 가벼우면서도  질긴 소재여서 준비했던 것이다. 우리를 도와주기 위해 야자나무 꼭대기에 순식간에 올라갔다 내려온 원주민이 바룬을 묶어둔 낚싯줄을 나중에 버리고 갈 거냐고 물으며 자기에게 주면 고맙겠다고 했다.

우리는 흔쾌히 그러겠다고 했더니 주위에 서있던 원주민들이 낚싯줄을 갖게 된 사람을 매우 부러워하는 것이다. 낚싯줄 하나에 왜들 저러나 궁금하여 나중에 조지 나테이에게 물어보니 그곳에서는 바다 낚싯줄이 없어서 굵은 나일론 로프로 참치를 잡는다는 것이다.  

그때서야 우리는 원주민들이 우리가 가져간 바다 낚싯줄을 얼마나 가지고 싶었을까..  이해가 갔다.  낚싯줄을 갖기로 한 그 원주민은 우리의 원정이 끝나고 안테나를 내릴 때 까지 야자나무 밑을 떠나지 않고 지키고 있었으며, 우리는 나머지 낚싯줄도 여러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원정팀은 티셔츠 30장과 슬리퍼 약 20여족을 가지고 갔었는데, 이유는 그곳의 사람들이 맨발이라는 얘기를 전해 들었었고 슬리퍼는 우리들의 작은 성의를 표하기에 좋은 선물이 될 것 같아서였다.

슬리퍼를 얻을 수 있다는 소문이 돌았는지, 원주민들은 우리의 발만 쳐다보았다.  

그러나 그들은 절대로 우리에게 무엇을 달라고 하지 않았다. 가지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았겠지만 손을 벌리는 행동을 하는 사람을 보질 못했다.  우리 일행은 슬리퍼 몇 짝으로 인심이나 쓰려고 하는듯한 인상을 줄까봐 조심스럽게 행동해야 했다. 그들은 예의와 매너가 뛰어났으며 순수하면서도 높은 자긍심을 가지고 있는 훌륭한 사람들이었다.

테모투에서의 파일업은 대단했다. 안정적인 전기는 우리의 앰프가 그 효율을 100% 발휘할 수 있게 해주었고 우리는 발전기의 소음이나 연료를 보충하는 번거로움이 없이 운용에만 전념할 수 있게 해주었다.

테모투의 노이즈 없는 환경은 최상이었다. 아무리 미약한 신호도 깨끗하게 수신 할 수 있었으며 특히 한국에서 그렇게 안 들리던 카리브의 신호가 매우 FB하게 입감 되었으며 유럽은 예상한대로 비교적 미약하게 입감되었다. 우리는 테모투와의 교신이 비교적 어려운 유럽의 무선국들에게 전파상태가 허락하는 한 많은 서비스를 하기 위해 노력했다. Only EU를 찾을 때 질서를 지켜준 JA 햄들의 매너는 최고였다.

24시간 내내 이어지는 파일업은 H40의 Rare를 반증이라도 해주듯, H44의 파일업과는 비교가 안 될 대단한 파일업이었다. 80, 40m의 파일업이 가장 강력했으며 교신지역이 광범위 했다고 말할 수 있겠다.  160m는 계획했던 헬륨풍선을 테모투에 가져가지 못해 야자나무에 가설한 다이폴로 운용하였으나 엘레멘트가 울창한 나뭇잎에 닿아 있어서 안테나의 정합을 취할 수 가 없었으나,  그런대로 운용은 할 수 있었다.

 160m 5/8파장 버티컬

 160m를 위한 안테나로 우리는 에드벌룬을 이용한 5/8파장 버티컬을 준비했었다.  우리는 가져간 풍선과 헬륨가스를 사용해 솔로몬에서 두번의 160m 운용을 했는데, 한번은 1/4파장 버티컬을 급조하였었고, 한번은 5/8파장 버티컬을 가설했었다.

접지 안테나는 독자들께서 주지하시듯 접지가 관건이다. 버티컬을 가설할 때 보통 그라운드 타입이나 G.P 타입 둘 중의 한 가지 방법을 사용하는데,  당연히 그라운드 타입이 방사패턴 등을 고려할 때 G.P타입보다 FB 하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상식일 것이다. 원정팀은 그라운드 타입의 버티컬을 가설하기 위하여 카운터 포이즈로 사용할 20kg이 넘는 나동선을 동원하여 안테나를 가설하였다.

 1/4파장 버티컬은 별도의 매칭회로를 부가하지 아니하고 직접 급전 하였으며, 5/8파장 버티컬의 임피던스 매칭은 계산기를 이용하여 동축상 정재파가 서는 곳을 계산하여 스텝을 부착하는 방식으로서 동축케이블을 사용한 쇼트스텝매칭 기법을 적용하였다.  

부족한 시간 때문에 1/4파장 레디얼을 단 4개만 가설했었으며 아날라이저로 측정한 임피던스는 70옴이었고,  준비했던 튜너로 강제 동조시켜서 최대 700W 출력으로 운용을 해보았다.  정확한 정합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임에도 그 수신력은 놀라웠으며  집에서 사용하는 30미터 타워에 급전한 슬로퍼와는 비교도 안 되는 멋진 수신력을 보여주었다.  

CQ를 내자마자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응답해오는 탑 밴더들..

그들은 DX계에서 널리 그 호출부호가 알려진 최고의 DX'er들 이었는데, 나는 그들의 경이로운 신호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미 하이밴드에서는 할 만큼 한 DXer들이기 때문에 오직 160m만 노리는 그들은 우리와의 단 한번 교신을 위해 몇 일간을 귀를 쫑긋 세우고 기다리고 있던 것이다.  

들릴 듯 말 듯한 160m에서의 컨트리 헌팅은  그만큼 어려운 것이다.  160m에서는 어지간한 안테나 시스템으로는 동네를 벗어나기가 힘든 것인데,  외국의 DXer들 중에는  160m에서만 300컨트리 이상을 교신한 DXer들이 있고  그들의 노력은 실로 대단한 것이다.  

예전부터 생각만 해오던 5/8파장 버티컬..  평생을 두고 도전해야하는 위대한 160m 밴드를 향한 작은 실험이었다.  길이가 100미터 가까운 안테나 엘레멘트 꼭대기에 매달린 애드벌룬은 아주 약한 바람에도 흔들리고 있었으며 당연히 방사패턴도 움직였던 것 같다. 같은 시간대에 때로는 북미만 들리고 때로는 아시아만 들리는 재미있는 경험도 해보았다.  

이번에 얻은 데이터를 토대로 다시 한번 시도해 보고 싶은 안테나이다.

 QRZ? H40HL Temotu  

 

인근의 바닷가 한번 기웃거리지 않고 교신만 하는 우리 일행을 사람들은 기이하다고 여기는 듯 하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그곳의 바닷가이지만, 우리는 오로지 파일업에만 관심이 있었다.

집주인 타우라는 아침이면 지난밤엔 어떤 나라들과 교신했냐며 물어오기도 하며 관심을 보였다.

원정팀이 사용한 10, 12, 15, 17, 20m 밴드용 PARAWOO 안테나는 소형, 경량이면서도 원정운용에서 제 몫을 충분히 해냈다. 각 밴드가 2ele로 작동하기 때문에 빔 패턴이 넓어 광범위한 수신이 가능했고,  FB한 정재파비는 안테나 세팅시 시간을 절약 할 수 있었다.

밤새도록 이어지는 운용... 교신을 해도 해도 줄지 않는 파일업... 힘은 들고 많이 지쳤지만, 우리는 그 파일업을 찾아 1년을 준비했던 것이다.  

 

(59 QSL? 이라는 그 짧은 교신이 무슨 의미가 있냐고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반문하고 싶다. DX를 아는가...? 언제나 만날 수 있는 나라의 무선국들과의 교신은 DX가 아니다.  DX라 함은 희소성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모처럼 출현한 DX국과 교신하려고 모두들 기다리고 있는데, 내 이름은 아무개고 동네는 어디고, 안테나는 뭔데 잘 들리냐?  라고 떠드는 것은 흡사 길게 줄을 선 공중 전화박스에서 다른 사람들은 기다리던 말 던 수다를 떠는 몰상식한 사람이나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교신의 한계에 도전하는 것이 DX이다. DXer는 몇일을 기다려 단 몇 초의 교신을 하지만, 아무도 불평하지 않는다. 착각하지 말지어다. 대부분의 DX국은 당신의 신상명세에 대해 전혀 궁금해 하지 않는다.

오히려 당신이 자기소개를 시작하면 QRZ? 하며 다른 무선국과의 교신을 시작할 것이다. 그들의 관심사는 오로지 호출부호와 시그널 리포트 즉 전파상태인 것이다.)

 

 

예정보다 절반이하로 줄어든 원정기간을 조금이라도 만회하기 위해, 그리고 보다 교신에 집중하기위해 우리는  우리의 식사를 챙겨줄 현지인 아주머니를 채용했다. 그것은 현지인들을 위한 우리들의 작은 호의이기도 했으며 그들은 떳떳하게 우리의 호의를 받아 주었다.  

2일째 저녁, 무선국 운용을 교대하고 식사를 하려고 바나나 잎으로 지어진 주방에 들어갔더니 집주인인 Mr Taura가 밥을 떠주며 취사기구를 자유롭게 사용할 것을 권했다.

(그들은 대부분 화목을 이용하여 취사를 하는데, 그는 우리를 위해 가스버너를 꺼내어 놓았다. 테모투에는 LPG충전소가 없다. 우리가 부담 없이 사용하는 그런 개념의 가스가 아닌 것이다. 대단한 성의요 배려인 것이다)

DX하느라 제때에 식사를 못한 나를 기다리고 있던 것이 분명했다. 자상한 배려에 정중하게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희미한 꼬마전구 아래 역시 바나나 잎으로 만들어진 멍석에 앉아 식사를 했다.  

너무나 궁금한 게 많던 나의 끊임없는 질문 그리고 그의 대답과 설명이 이어지던 중,  나는 또 한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유는 내 앞에 앉아있는 테모투 원주민 타우라가 1986년도에 한국엘 왔었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선원이었던 그는 배편으로 부산항에 도착했으며, 회사가 제공하는 서울에서의 교육프로그램에 참가하기 위해 비행기를 타고 김포공항엘 내렸었으며, 회사에서는 비행기표만 사주고,  당시 자신은 너무 형편이 어려워 돈이 거의 없었다고 했다.  

주머니에는 미화도 아닌 솔로몬 달러만 가지고 있던 테모투 원주민 타우라는 어찌 할 바를 모르고 공항 앞에 몇 시간을 서 있어야만 해야 했다.

그러던 중 어느 택시기사가 무슨 문제라도 있냐며 말을 걸어오고.. 타우라는 그에게 자신의 처지와 목적을 이야기하자 택시기사는 그를 차에 태워 행선지에 데려다주고, 그의 숙박비까지 대신 계산해 주더라는 것이다.

타우라는 3개월 뒤에 서울에 다시 와서, 그 때 돈을 돌려주겠다고 했던, 그렇게 말 할 수밖에 없었던 이방인을 연락처도 안 묻고 믿어준 서울의 한 택시기사가 베푼 친절을, 그때의 고마웠던 기억을 나에게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때의 고마움을 우리 일행에게 돌려주고 싶다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는 작은 태극기를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

20년전 솔로몬의, 그것도 제일 오지인 테모투 출신의 용기 있는 청년이 어렵게 서울까지 왔던 일.. 그리고 그가 겪은 일들은 그야말로 감동적인 모험담이었다. 아마도 한국을 방문한 솔로몬 국민 중에 그가 처음일지도 모르겠다.  

한 택시기사의 친절이 태평양의 작은 섬나라 솔로몬에 대한민국이란 이름을 아름답게 새긴 것이다. 원정운용이 끝나고 철수할 때 우리일행은 미리 준비한 기념품에 우리들의 고마움을 글로 담았으며, 무전기 옆에 걸어두었던 커다란 태극기를 고이 접어 그에게 전달했다.

타우라... 그는 현재 테모투 주정부의 어업권 담당 공무원으로 부인과 함께 3남2녀의 자녀를 두고 있으며 성공적이고,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

 떠나오던 날...

 

어느덧 H40HL 운용의 마지막 날... 오후가 되자 밖에서는 동료들이 안테나를 철거하기 시작했고 운용순서에 의해 나는 무전기 앞에 앉아 있었다.

운용계획표엔 15, 12, 10m 밴드의 서비스 시간이다. 전날까지 전파상태가 따라주지 않아 서비스를 못했던 12, 10m 밴드를 다시 시도하기로 하고 먼저 12m에서 CW로 CQ 신호를 보냈다.  

기다려도 응답이 없었다.. Phone 밴드로 가서 SSB를 수신하여 보니, JA신호가 미약하지만 또렷하게 입감... 바로 근접 주파수에서 CQ This is H40HL H40HL Temotu...

간신히 공간이 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조금씩 호전되더니 꽤나 많은 무선국과 교신에 성공할 수 있었다.

이내 JA와의 교신. 그리고 DX spot을 보고 응답해 오는 JA들의 파일 업 이따금 북미와 남미에서도 응답을 해온다. 그런데 HL의 신호가 드물다. 공간이 일본 남쪽까지만 열려있던 것이다. 그나마 언제 공간이 닫힐지 모르는 터,  교신에 집중하고 있는데 주파수 한쪽에서 경쾌하고 묵직한 톤의 모오스 부호가 들려온다.

호출부호 HL1AV !  한반도가 열린 것을 알려주는 신호이며, 전파상태가 안 좋으니 CW모드가 어떨까 하는 조언을 해 주시는 듯 하다. SSB를 운용중이던 주파수에서 바로 CW모드로 전환하여 운용을 하기 시작했다.

한번도 뵌 적은 없지만, 파일업이 생길 때면 언제나 들려오는 그 호출부호들 HL1AQ... HL1AV  HL3IB HL5BLI...  노익장을 과시하는 그 분들의 호출부호를 우리들은 원정기간 중 전밴드 전모드에서 들을 수 있었다.  역시 진정한 햄의 모습은 전파 속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다.

나는 12m 밴드의 파일업이 잦아들자 10m 밴드로 QSY했다. SSB와 CW로 모드를 전환하며 최대한 교신하고자 노력했다. 10m 밴드에서 신호가 들리지 않을 때까지 교신을 하고 나니 마음이 조금은 편해지는 것을 느꼈다. 왜냐면 그날 이전까지 12, 10m 밴드의 교신은 전파상태 관계로 불가능했었기 때문이었다.

DX-Pedition은 서비스 교신이다. 그것도 Entity 서비스이다. 그렇기 때문에 수없이 많이 응답해오는 모든 햄들에게 있어 원정팀의 정확한 호출부호 로깅은 매우 중요한 것이라 할 수 있겠다.

당연히 원정팀은 정확한 로깅과 컴퓨터간 로그 데이터의 안전한 취합과 보관을 위해 세심한 신경을 썼다.

전파상태에 따른 적절하고 공평한 교신지역 선택과 친절하고 자상한 교신 역시 우리가 이번 DX-Pedition에서 추구한 것들이다.

(원정팀은 질서를 지키지 않는 무선국은 HL이라고 해도 절대로 응답하지 않았다. 생각해 보라.. 원정팀은 Only EU를 외치고 있고 다른 다라 햄들은 다들 질서를 지키고 있는데, 나라 망신 시키는 HL이 하나 있다고 치자. 원정팀이 만약 그 HL에게 응답한다면 그것은 두 번 망신당하는 것이다. DXer는 DXCC 어워드 한장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DX는 매너이고 양심이며 명예인 것이다.)

 

원정운용의 마지막 밤, 80m 에서의 CW와 SSB운용, 숲속에 세운 버티컬이 미약한 신호 하나 하나에 몸부림을 친다. 밤이 깊어지자 80m 밴드는 유럽의 전역으로 교신이 가능했지만,  통제가 안되는 유럽의 파일업은 역시 힘들다.  

새벽 2시가 넘자 CW운용자인 DS2BGV 오엠과 필자는 계속된 철야 교신에 지쳐 쏟아지는 잠과 싸워야 했는데, 교대를 하고 채 10분을 견디기 힘들었고, 하나의 호출부호를 수신하는 사이에도 눈이 감길 지경이었다. 계속 서로를 부르며 교대를 했으니...  그렇게 졸렸던 기억은 전무한 것 같다.

동이 트자 우리의 운용도 끝났다. 전날부터 부분적으로 철수 준비를 했기 때문에 그다지 바쁘지 않게 짐을 꾸렸다.  타우라씨의 가족들 그리고 동네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사진도 찍고 하며 테모투와의 이별을 준비했다. 비행장으로 가는 길.. 동네사람들이 다 비행장에 모인다.  

테모투 주지사는 같은 비행기로 수도인 호니아라에 회의 차 출장을 간다며 비행장에 나와 있었다.

비행기가 착륙하자 우리는 서둘러 짐을 실었다. 왜냐면 승객들이 탑승하기 전에 좌석 밑에 안테나들을 깔아야  하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안테나를 들고 비행기로 다가가자 조종사가 프로펠러의 RPM을 줄이더니 함께 도와준다. 비행기는 기름을 넣을 때도 한쪽 엔진은 그대로 시동을 걸어두는데, 이유는 간혹 방전이 되어 재시동이 안 걸릴 때가 있기 때문이란다.  길다란 안테나를 실을 때 프로펠러에 위험할까봐 조종사가 직접 도와주었던 것이다.  아마도 YJ8CW가 우리일행을 잘 부탁한다고 얘기한 모양이다.

타우라씨와 그의 가족들, 그리고 얼굴을 익혔던 사람들이 모두 비행장까지 환송을 나왔다.   

기분이 묘하다. 그곳의 사람들은 묘한 마력이 있다. 그 짧은 몇 일 사이 정이 많이 들게 했으니 말이다.  나는 손 한번 흔들고 고개를 돌렸다. 너무 섭섭해서 차라리 얼른 비행기에 타버려야겠다고 생각했다.

비행기에 앉아있는데 DS2BGV 오엠께서 "타우라씨 막내가 섭섭한 모양이네.." 하신다.  원정기간 내내 낮이나 밤이나 나를 따라다녔는데, 매우 총명하여 우리 일행 모두가 놀랐던 소년이다.

나는 비행기에서 다시 내려 원주민들이 있는 곳으로 뛰어갔다. 따듯하게 인사를 했어야 했는데... 너무 후회가 되었던 것이다. 나는 그 소년을 찾아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안 보인다. 그런데 그 순간 수십 명의 원주민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손짓으로 트럭 뒤를 가리킨다. 그들은 내가 누굴 찾고 있는지 다 알고 있는 것이다.

커다란 눈에 눈물이 고여 울기 직전이다.  이렇게 순수하고 아름다운 사람들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

울지마.. 넌 남자야. 다시 돌아 올거야... 악수를 청했더니 고개를 저으며 안 한단다.  머리 한번 쓰다듬고 나는 돌아섰다. 마을 사람들이 미소 지으며 바라보고 있었다.  Good bye everyone !       

 

본 원정기사는 일본의 59 Magazine사의 요청으로 59 Magazine 3월, 4월호 에 연재될 예정입니다.  KDXC 한국DX클럽은 H44HL, H40HL 해외원정운용에 성원하여주신 모든 분들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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